"안녕하신가영 - 숨비소리"
숨비소리는 해녀들이 물 밖으로 나와 호흡을 위해 내는 소리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 소리에 대해 안녕하신가영은 이렇게 묘사한다.
> 호오이 호오이
> 어떤 울부짖음 같기도
> 호오이 호오이
> 안도하는 한숨 같기도
한 호흡은 긴장의 측면과 이완의 측면에서 함께 묘사된다. 발심하며 동시에 안심한다. 청하면서 동시에 이룬다. '기도'의 속성이 이러하다. 기도는 대상에게 바라는 것 같은 외연으로 보이지만, 실은 스스로 이루고 있는 그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리내는 명상이 기도이고, 소리없는 기도가 명상이라고도 말한다.
그렇다면 누가 기도하고 있는가?
> 고요한 수면 위로 내뿜던
> 어머니의 숨비소리는
> 닿은 적 없는 뭍을 향한
> 아들딸의 이름이었나
바다에 있는 이가 땅에 있는 이를 향해 기도하고 있다. 낳은 이가 낳아진 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무형의 호흡이 유형의 이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기도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그 방향성이 반대다. 바다로 나간 이를 땅에 있는 이가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피조물이 창조주를 향해 바라는 것이 아니며, 이름있는 것이 이름없는 것을 알아주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다.
그래서 이것은 기도다.
실은 언제나 더 큰 것이 더 작은 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고요함의 평형을 깨고서라도 기도하고 있다. 세상에 균열을 내서라도 닿고 싶은 그것을 향해 "너여!"라고 말하며 기도하고 있다.
누가 기도의 주체인지는 분명하다.
어머니로 비유되고 있는 이것은 신성(godhead)이다.
신이 인간을 위해 기도한다. 그 오롯한 장면이 우리의 귀에 들어와 풍경을 형성한다. 이 노래의 진실됨은 거기에서부터 온다.
> 섬을 떠난 많은 소식들을
> 불턱에 둘러앉아
> 짐작한다, 짐작한다, 걱정한다
낙원을 떠난 이들의 심정을 신성은 짐작한다. 두 번이나 짐작한다. 한 번 더 염려한다.
공감이 아니다.
이미 그것이다.
이미 마음은 같이 여행하고 있다.
신성은 육화되어 인간이 되었다. 그렇게 인간의 몸으로 내재되어 함께 인간의 운명을 밟고 있다.
> 이렇게 잠깐 몸을 누일 때면
> 이곳은 아무 일이 없단다, 없단다
> 걱정하지 말아라
그러니 이것은 낙원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신성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곳'이란 어디인가?
인간이 있는 바로 그 자리다.
분주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몸을 쉬어보면, 인간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신성은 말하고 있다. 너의 삶인 '이곳'에는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고 간곡하게 전하고 있다.
바다와 땅이라는 생사의 경계를 넘어, 불가능할 것 같은 그 경계를 넘어, 이렇듯 신성은 인간에게로 날아와 반드시 전해내고야 만다. 인간의 운명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진실로 알려내고야 만다.
"어디에 있든 내가 함께할 것이니 아무 염려말라고" 신성은 숨비소리를 내뿜는다.
살아있는 것을 살아있게 하는 그 호흡을 우리의 귓가에 전한다. 이 노래로.
이것이 기도다.
신성이 이미 우리에게로 와있고, 우리와 늘 함께할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는 이것이 기도다.
이 노래는 그래서 기도다.
"오늘도 안녕하신가영."
이 노래를 들을 때면 그녀의 목소리를 빌어 신성이 우리에게 이처럼 인사를 건네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이제 조금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