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솔 - 사라오름"
이 곡은 지장보살의 노래다.
지장보살은 지옥의 모든 이가 구원될 때까지 자신 또한 구원을 얻지 않고 지옥에 머무르겠다고 서원한 존재다.
이처럼 지장보살은 지옥의 모든 이의 '살아오름'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옥이란 곳이 따로 있지 않다. 불가에서는 자주 이 현세가 지옥이라고 비유하곤 한다. 물론 천국도 따로 있지 않다. 이 현세가 또한 천국이다. 한 마음에 따라 현세가 어떻게 경험되는가에 대한 묘사다.
그래서 이 곡은 이 현세에서 대체 어떠한 일이 펼쳐지고 있는지를 묘사하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로 이 곡은 시작된다.
태초의 바다와 같은 정경이다. 어쩌면 자궁 속에서 아이가 듣고 있었을 그 소리일까?
그리고 생명은 둥둥 부유하기보다는 중력과 어울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땅으로 올라섰고, 이내 두 발로 일어섰다.
그러나 이것은 중력에 대한 반항이 아니다.
생명은 중력의 힘을 자기의 편으로 삼아 자신의 두 발로 이 세계를 걷고 싶었던 것이다.
중력은 생명의 걸음을 방해하지 않는다. 중력이 없으면 애초 제대로 걷지를 못한다. 생명은 자신의 걸음에 실리는 무게감을 직접 자신의 몸을 통해 '제대로' 느끼고 싶었던 것과도 같다.
그 무게감은 바로 생명 자신의 무게감인 까닭이다.
이 정도로 중하고, 이 정도로 귀한 것이다.
곡은 상승한다.
발걸음들이 중첩되면서 상승작용은 활발해진다.
살아있다는 이 생명의 사실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가를 널리 이 세상 끝까지 전하기 위해 곡은 우아하게 활짝 비약한다.
보았는가?
날개다.
곡은 이제 하늘로 상승한다.
그리고는 축가가 된다.
하늘이 이 생명의 축가로 가득 찬다. 복음을 들은 더 많은 생명을 하늘로 끌어올린다.
중력은 운명이다.
자유는 운명에 반항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는 운명과 하나가 되어 비상한다.
운명이 없는 것은 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부유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날고 있다. 우리는 자유로운 생명이다.
땅의 압력이 운명처럼 오름을 솟아오르게 했다. 삶에서 우리도 모진 운명같은 삶의 고통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압력이 오름을 융기하게 했듯이, 우리가 고통받은 그 순간들이 우리가 날아 오르는 기적을 도왔다.
이 곡은 그처럼 대견하고 또 간절했던 우리 자신이 스스로에게 전하는 축가다.
살아냈다!
그런가?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살아올랐다!
많이 아팠고 힘들었지만 당신이 해냈다.
맨발로 광야를 걸었고, 어둠 속에서 골짜기를 헤맸고, 길을 찾아 끝도 없이 황량한 폐허를 지났다. 그 발걸음 소리들을 우리는 이 음악 속에서 다 들었다. 당신의 날갯짓 소리도 들었다.
그리고 당신의 이름도 알았다.
당신은 지장보살.
물 속의 군생에서 시작해, 뭍으로 올라가, 기어이 하늘을 꿈꾸었던,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결국에는 살아올랐던 생명의 증표인 당신이 바로 지장보살.
우리에게 살아오르는 법을 그 몸으로 가르쳐준 당신.
이 정도로 중하고, 이 정도로 귀한 것을, 광야를 걷고, 골짜기를 헤매며, 폐허를 지나 여기까지 옮겨옴으로써, 정말로 이 정도로 중하고, 이 정도로 귀한 것이라고 몸소 증명해낸 당신.
이 곡은 그러한 당신이 바로 '나'라고 청자에게 직접적으로 전하고 있는 곡이다.
모든 것을 살아오르게 하는 지장보살의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