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는 깨달음"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다.
그리고 금은보화보다 더 럭셔리한 것을 꿈꾸는 이들은 대화를 한다.
우리에게 대화란 어느 정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인가?
사람마다 그가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고, 그가 가진 세계관에 따라 지각하는 현실이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 사.이.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대.화.가. 가.능.해.서.다.
평행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각자가 다 자신만의 평행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대화를 통해 상대의 평행세계로 이동할 수 있는 워프게이트를 마련한다.
그.러.면. 마.음.이. 이.동.한.다.
감동이 생겨난다.
상대와의 깊은 대화 끝에 거의 반드시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은 감동이다. 분명하다.
흐르는 것이 그 본성인 마음이 흐르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이상심리라고 부른다. 자신의 세계에 틀어박혀 대화가 단절되면 우리는 조금 이상해진다. 정신병은 대화가 단절되고, 나아가 불가능해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세계들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언제나 그 끝에는 전쟁뿐이다. 고독이 만들어낸 두려움으로 가득차 선빵을 날리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은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것이 이상심리의 대표적인 증세다.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이들은 자신의 세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기에 대화를 차단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자신의 세계가 너무 못났고 엉망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들은 누군가가 워프게이트를 열어 자신의 세계로 놀러오기를 원하지 않게 된다. 아무리 좋아하는 이가 있어도 우리집에 고양이 있다고, 라면먹고 가라고 말할 용기를 차마 내지 못한다. 잘못 밟으면 상처를 낼 잡동사니들이 가득 널려 있어서다.
그것은 이미 '깨어진 세계'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세계도 유리와 같아서 한 번 깨어진 것은 다시 그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될 수 없다.
그.러.나. 새.롭.게. 만.들.어.질. 수.는. 있.다!
더 멋진 모습으로 세계가 새로이 펼쳐지는 일은 언제나 가능한 일이다.
마음이 그 일을 한다.
워프게이트를 통해 마음의 순환작용이 생겨나면, 낡은 세계에는 새로운 공기가 유입되며, 그것은 바람이 되어 갖은 잡동사니들을 자연스럽게 청소해주게 된다. 자신이 그동안 치우려고 의지를 잠깐 내봤어도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했던 것들이 아주 쉽게 일소된다.
나아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에 활용할 수 있는 소재 또한 마음이다. 우리의 방이 비워졌을 때를 떠올려보면 분명하다. 방이 비워진만큼 거기에는 마음이 가득 찬다. 그리고 그 마음의 그림을 따라 새로운 것들이 하나둘 그 방에 놓이게 된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어느덧 새롭다. 자기 자신도 조금 더 예뻐 보인다.
엄청나게 큰 힘을 동원하지 않아도 대화를 통해 마음을 흐르게 하다 보면 늘상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대.화.는. 이. 변.화.의. 힘.이.다.
어떤 때 우리는 진정으로 변화하는가?
이해하면 유익하다.
잘. 놀.고. 있.을. 때. 우.리.는. 가.장. 최.대.치.로. 변.화.한.다.
대화란 '놀이의 원형'과도 같다. 모든 놀이는 상호적으로 주고 받는 대화의 형식을 갖는다.
그러니 '잘 대화한다는 것'은 '잘 논다는 것'과의 동의어다.
우리가 어릴 때 친구네 집에 놀러가는 일은 늘 즐거운 일이었다. 타인의 세계에 워프게이트를 연다는 것은 이러한 감수성이다.
세계는 교류함으로써 서로 무럭무럭 자라났고, 또 기쁨이 가득했다.
우리가 세계를 교류하는 이 즐거움을 잃게 되면서, 우리는 정신병에 빠져드는 일이 잦아졌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우리의 세계를 일종의 사유재산처럼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은 한없이 레고와 같은 장난감에 가까운 것이, 치열하게 사수해야 할 금은보화처럼 되었다.
침묵도 웅변도 이에 따라 '적'과 싸우기 위한 전략적 방어기제가 되었다. 그것들의 원래 의미는 '경청'과 '자기표현'이었을 것이다. 대화의 두 요소다. '소외'와 '무시'로 굴절된 지금은 대화를 가장 방해하는 두 요소다.
그러나 레고로 만든 하나의 모형을 이렇게 필사적으로 지켜보라.
먼지만 쌓인 채 방치되며, 나중에는 스스로를 다치게 만드는 요인을 제공하는 성가신 신주단지가 된다. 알다시피 레고블럭을 저도 모르게 밟았을 때의 그 파괴력은 원자폭탄만큼이다.
자신의 세계를 타인이 해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는, 실.은. 자.신.에.게.도. 이.미. 그. 세.계.가. 소.중.하.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자신이 직접 자신의 세계를 무너뜨리기에는 그동안 지켜온 시간 때문에 발생한 심정적인 망설임이 있기에 타인의 위협을 가정하여 누군가가 대신 그 세계를 무너뜨려주기를 바라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상담자들은 이러한 '세계해체놀이'의 달인들이다.
내담자에게 충분한 허락과 동의를 얻은 후 상담자는 신나게 세계를 무너뜨린다. 철옹성처럼 견고하던 성채가 무너져갈 때마다 토해지는 것은 그러나 한숨이 아니라 웃음이다.
상담자는 세계해체놀이를 아주 즐겁게 시연함으로써 내담자에게 또 다른 '놀이방식'을 효과적으로 전한다. 어느덧 내담자도 그 놀이에 동참하게 되며 상담소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다. 상담은 거의 언제나 이 놀이의 활동이다.
이 세계해체놀이는 당연하게도 대화로 이루어진다.
원래 대화라는 것이 쌓고 무너뜨리는 가운데 마음이 흐르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즐기는 놀이와 같다.
대화를 시도하는 이는 워프게이트를 통해 타인의 세계를 습격하려는 침략자가 아니며, 자신의 것을 갖고 들어가 타인의 세계를 자신의 세계와 똑같은 모습으로 뒤바꾸려는 전체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다만 함께 놀려고 하는 자다.
니체는 어떻게 말하는가?
심연을 들여다보는 이는 심연 또한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워.프.게.이.트.는. 언.제.나. 쌍.방.으.로. 열.린.다.
상대의 세계를 해체하는 그만큼 정확히 자신의 것도 해체된다.
상담자는 내담자를 변화시키는 이들이 아니라, 내.담.자.와. 함.께. 변.화.되.겠.다.고. 선택한 이들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대화의 열쇠다.
대화는 언제나 서로에게 있어 매순간이 자신의 세계를 새로이 만들 수 있는 기회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상.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대.화.를. 하.는. 것.이.다.
때문에 한 개인에게 있어 전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깨달음은 대화적인 것이다.
대.화. 속.에.만. 깨.달.음.이. 있.다.
기도를 하는 이들도, 명상을 하는 이들도, 또 마음공부를 하는 이들도, 실은 다 대화 속에 있다. 대화의 감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그들은 그 모든 일을 한다.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지만, 대화는 금은보화보다 더 럭셔리한 깨달음이다.
자신과 다른 세계에 워프게이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분명 이 깨달음의 감각을 갖고 있다.
그는 가장 즐거운 일을 하려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무엇인가?
사.랑.스.러.운. 것.과. 사.랑.하.는. 일.이.다.
다시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깨.달.음.은. 좋.아.하.는. 것.과. 조.화.하.는. 일.이.다.
친구네 집에 놀러간 우리는 같이 잘 논다. 우린 서로 제법 잘 어울린다.
나와 다른 너와 친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해봤는데, 그 모든 생각의 한계를 넘어, 너와 어울리는 일이 참 좋다.
이렇게 우리는 '더 좋아할 수 있는' 자신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어 간다.
우리의 세계는 점점 더 사랑의 공기로 가득차 더욱 크고 멋진 사랑의 그림으로 나날이 그려져 간다.
이렇게 놀라고 개인에게는 각자의 세계가 있으며, 이렇게 놀라라고 그 세계들은 오늘도 큰웃음 가득하게 대화중이다.
세계는 바야흐로 깨달음 속에 있다.
당신의 세계가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