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죽고 싶다면"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런 날이 있을 수 있다.
외롭다? 슬프다?
아니 그보다는 서럽다.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설움이 북받친다.
자신이 살아온 그 모든 것에 다 회의가 들고 그 모든 일이 다 쓰잘데기 없게 느껴진다. 모든 것은 부정되며 자기 자신까지도 가장 강한 부정의 소용돌이에 사로잡힌다.
무의미해지고 공허해지며 이내 냉담해진다.
이러한 때 심리상담은 도움이 될까? 그렇지 않다. 이 느낌을 가만히 느껴보면 아하, 하며 무슨 대단한 해결의 프로세스가 일어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나누거나 느껴야 할 것이 없다.
텅.비.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떤 상태인지를 정말로 이해해보자.
당신은 지금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면이 텅비었고, 동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마음은 힘이다. 이 말은 마음은 에너지라는 뜻이다.
당신은 지금 거의 전적으로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다. 그래서 마음이 텅빈 상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아마도 당신이 잘못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 에.너.지. 뱀.파.이.어.들.이. 많.아.서.다.
에너지 뱀파이어는 관심종자의 다른 이름이다. 이들은 끝없이 한 자리에 버티고 앉아, 고집을 부리며, 어그로를 끈다. 그러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자기에게만 집중되게 해서 에너지를 뽑아 먹는다.
오늘날에는 한 집 건너 이 에너지 뱀파이어들이 살고 있지 않다. 바로 옆집에 살고 있다.
미디어의 어떤 채널을 돌려도 에너지 뱀파이어들이 당신의 에너지를 빼먹기 위해 싱그러운 웃음을 짓고 있다. 활기찬 목소리와 밝은 표정을 연기하며, 또 당신에게 무척이나 예의바른 태도를 연출하며, 빨대처럼 송곳니를 꽂을 준비를 한다.
당신이 잘못해서라기보다는 당신이 잘하고 있었기에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먹이감으로 보였을 수 있다.
당신이 잘한 것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것, 사람을 선하게 보고자 한 것, 또 사람을 배신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이와 같은 당신의 '인간됨'의 품성에 달라붙어 에너지 흡혈귀들은 당신을 남용하고 착취한다.
에.너.지. 뱀.파.이.어.는. 포.르.노.적. 존.재.방.식.을. 갖.고. 있.다.
이들은 자기를 선정적으로 전시하는 일에 능하다.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해서 그 자극자인 자신에게로 모든 관심을 수렴시키는 일이 이들의 주된 사업이다.
동정심은 특히나 아주 큰 욕망이다. 이들은 자신을 힘없고 불쌍한 강아지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동정심을 자극하곤 한다. 그렇게 동정어린 시선의 스포트라이트를 모아 자신이 무대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다.
그리고 그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제공한 사람들은 재능있는 또는 선량한 타인이 더는 슬프지 않게끔 힘써 열심히 도운 감각을 경험하지만, 다음날 일어나면 죽고 싶다.
뽑힐 대로 뽑혔을 뿐, 그렇게 거대한 에너지를 쓴 자신들에게 다시 회수된 에너지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당거래이며, 표면적으로 의식하진 못할지라도 우리의 몸은 알고 있다.
자신은 남을 돕기 위해 힘썼지만, 그 결과 자신의 마음은 텅비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돕는 남은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 지구의 중심부가 요동치듯이 거대한 진동으로 밀려나오는 것이 바로 서러움이다.
이 우주에서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그 감각이다.
에너지 뱀파이어에게 관심이 착취된 그 에너지의 정도만큼 이 감각은 정확하게 경험된다.
죽고 싶다고 느껴질 정도로, 에너지 뱀파이어들은 사람을 죽을 때까지 착취하고 있던 셈이다.
더 힘든 예도 있다.
자신이 에너지 뱀파이어에게 도움을 제공한다는 의도가 아니라, 그 반대로 에너지 뱀파이어들에게서 자신이 좋은 것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것은 에너지 뱀파이어들이 현실에게 매우 자주 '심리학좆문가'로 활동하고 있기에 생겨나는 일이다. 이러한 이들은 마법과도 같이 '놀라운 정보'를 자신이 알려줄 수 있다며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오늘날 '정보취약자'가 되는 일은 생존에 커다란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 같기에, 더 많은 '정보자본'을 획득하고자 하는 욕망은 사람들 사이에서 팽배해있다. 그리고 에너지 뱀파이어들은 바로 이러한 지점을 공략한다. 자신이 가장 좋은 정보들만을 선별적으로 통합해 요리해낸 '최고의 정보'만 얻으면 쉽게 정보취약자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식이다.
이 선전에 포섭된 이들에게 이제 에너지 뱀파이어는 일종의 '스승'과 같은 입지를 얻게 된다. 에너지도 빨아 먹으면서, 존경심에 입각한 권위도 함께 얻는다.
에너지 뱀파이어에게 최후의 영혼 한 조각까지도 탈탈 털리는 상황과 같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이들은 실은 매일 아침 일어나 죽고 싶으면서도, 자신은 다른 이들이 갖지 못한 '놀라운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며 자기정당화를 시도하곤 한다. 분열이 생겨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몸은 알고 있다.
몸에서는 계속 화가 난다.
그러나 화가 나는 실제의 이유를 굴절시켰으니, 도대체 왜 화가 나는지를 모르게 된다. 그러니 주변에서 보이는 모든 것을 다 화의 이유로 귀착시키곤 한다. 부모에서부터 배우자, 애인, 직장상사, 나아가 정치에까지, 모든 것은 자기와 자기의 '스승'을 제외하고는 다 똑바로 살지 못하는 것들로만 보인다.
진실은, 에너지 뱀파이어들에게 뿌리까지 착취되어 정말로 텅텅 비었기에 에너지가 동원되지 않는 것이고, 때문에 무엇을 하기에 힘이 드는 것이며, 그 결과 자꾸만 화가 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를 '존재취약자'의 상태라고 말한다.
'정보취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존재취약자'가 되어버린 이 현실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서러운 것이다.
'존재취약자'가 되는 것을 염려하기보다 오히려 '정보취약자'가 되는 것을 염려하는 일은, 마치 건강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건강에 대한 것을 망각하게 해줄 마약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과도 같다.
어떤 에너지 뱀파이어들은 언어, 이야기, 글 등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존재감을 보충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한다.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이들은 에너지를 약탈할 기회를 또 한 번 마련하고자 한다.
정보를 통해 존재를 보충할 수 있는가?
이 말은, 우리가 더 많은 앎을 소유하면 죽지 않게 된다는 말과도 같다.
더 본래적인 유치함의 형태로는, 우리가 똑똑하면 죽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아동이 소비하는 판타지의 대표적인 내용이다.
부모가 어떻게 하면 자기를 위해 움직일지를 파악해서, 그 소재로 성공적인 어그로를 끌어 부모를 부르는 데 성공한 아동은 자기가 똑똑한 머리를 통해 성공적인 생존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이제 동일한 기제로 머리를 굴려 더 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자기에게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려는 일에 매진하게 된다. 에너지 뱀파이어는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출현한다.
불건강한 하나의 존재취약자가 욕망을 성취하게 해줄 소재처럼 간주되는 '정보'를 미끼로 사람들의 에너지를 약탈하여 사람들을 대신 존재취약자로 만들고, 자신은 사람들에게 뺏은 그 힘으로 '존재하는 척'하려는 이 일이 곧 에너지 뱀파이어가 하는 일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에너지 뱀파이어에게 당한 이는 아침이 괴로울 수밖에 없다.
태.양.이. 너.무.나. 뜨.겁.기. 때.문.이.다.
에너지 뱀파이어 대신에 태양 아래 당당히 설 수 없는 저주받은 존재가 되었기에 우리는 고통스럽다.
태양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면서, 더는 태양을 마주할 수 없게 되었기에 서럽다.
그러나 태양이 떠있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에너지 뱀파이어들이 말하던 내용을 다시 기억해보자.
"정보를 통해 당신을 존재하게 하세요."
이는 결국 다음의 의미와 같다.
"앎을 통해 당신 자신이 당신의 존재를 책임지세요."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장 빠르게 존재취약자로 추락하게 되었던 그 길이다. 최고의 망상과 최대치의 사기극으로 조성된 거짓의 길이다.
자.기.가. 자.기.의. 존.재.를. 책.임.지.는. 일.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은 어떠한가?
존재가 스스로를 책임진다. 그러니 존.재.의. 일.은. 다.만. 존.재.에.게. 맡.겨.야. 한.다.
지구에 살고 있는 이들이 태양을 책임지고 있는가?
그 반대다. 태양이 태양에 속한 우리를 책임지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존재하고 싶은 우리가 할 일은 다만 태양 아래 서는 것이다.
남에게 다 주게 되어서 에너지가 텅비었는데 그 사실을 아무도 몰라 서러움이 북받친다면, 그래서 죽고 싶다면, 우리가 할 일은 홀로 태양빛 아래 나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다. 또는 태양빛을 쬐며 가볍게 걷는 것이다.
그.러.면. 에.너.지.가. 충.전.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면 우리는 대체 어떤 것을 기억해야 하는가?
우.리.가. 홀.로. 있.을. 때. 존.재.가. 자.신.의. 일.을.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뱀파이어들이 모기처럼 남기고 간 저주는 태양빛 아래 스르르 녹아 사라진다. 우리는 이제 존재취약자가 아니며, 더는 아닐 것이다.
존재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다. 태양빛과 같은 존재의 사실이다.
그리고 이 눈부신 존재의 사실 아래 은총으로 존재하고 있는 이에게 뱀파이어들은 끼어들 수 있는 일말의 여지가 없다.
존재의 빛은 우리를 죽고 싶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단호하게 우리를 지켜낸다.
매일 아침 태양이 뜨는 그 의미를 우리는 정말로 모르던가?
"염려말고 또 살아. 내가 힘이 될게."
우리는 매일 아침 존재로부터 그러한 언약의 말을 듣고 있는 것과도 같다.
우리가 자신의 존재를 똑바로 책임지지 못해 우리는 존재취약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책.임.질. 수. 있.다.고. 착.각.하.며. 존.재.에.게. 다. 맡.기.지. 않.아. 존.재.취.약.자.가. 된.다.
태양에게 맡기지 않고 사는 지구에서의 생활은 몹시나 힘겨운 법이다. 정보조각들을 비벼대고 언어들을 마찰시키면 빛과 열이 창조될 것이라고 믿으며 사는 삶은, 또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이 태양[주인공]인 것처럼 행세하려는 약탈자들에게 에너지를 제공하며 사는 삶은 그 텅빈 끝에서 한참 서럽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홀로라서 서러워진 것이 아니라, 홀로이면 안되고 늘 주인공들에게 관심을 줘야 한다며 우리가 홀로일 시간을 빼앗겼기에 서러워진 것이다.
우리가 홀로일 수 있는 시간은, 우리가 실은 태양과 오붓하게 함께할 수 있는 시간, 태양으로부터 사랑받을 그 시간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사랑을 잃어 훌쩍이던 이에게도 아직 태양이 비추고 있다.
잃지 않았고, 아직 하늘을 보지 않았을 뿐이다.
죽어도 죽어도 죽지 않고, 매일 아침 영원히 되살아나는 것은 태양만이 아니다.
우리를 책임지고 있던 태양을 만난 우리의 가슴이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