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사귀기"
심리학을 인생이라는 게임을 잘 풀어가기 위한 메뉴얼이라고 생각했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심리학은 상대에게서 중요한 정보를 알아내는 마법의 기술도 아니고, 또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황금 같은 정보를 자기 안에서 발굴해내는 보물찾기의 활동도 아니다.
모든 것을 게임처럼 보는 인식이 이러한 오해를 만들어낸다.
게임을 하는 이들이여, 정직하다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왜 게임을 하게 되었는지를.
친구가 없어서거나,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다.
이처럼 게임은 친구의 대체재이거나, 친구를 획득할 도구재다.
심리학은 이 지점에서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친구라면, 게임을 경유하지 말고 바로 친구에게 가자는 모든 선언이다.
정말로 이런 식으로 말해도 된다.
심리학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 만들어진 분야다.
비단 심리학뿐만이 아니라 현대의 거의 모든 학문분과는 친구를 사귀는 법에 대해 말한다. 단적인 예로, 현대철학은 왜 '타자'와 '대화'라는 개념을 그토록 강조하는가? 바로 그것이 친구를 사귀는 일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거시적인 역사와 미시적인 개인사간에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정보의 가치를 예찬하는 이들이 친구를 잘 못사귄다. 이들은 친구를 사귄다는 것이 친구에게 더 나은 앎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친구를 계몽하는 일이라고 곧잘 착각하곤 한다.
이 착각은 근대에 만연했다. 보편적 이성을 통한 최고의 정보를 획득한 뒤 그 정보를 더 많은 이에게 보급하는 일이 세상을 좋게 만드는 일이라고 인간은 믿었다. 모든 이를 자기와 똑같은 얼굴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것이 전체주의다.
전체주의가 친구를 만들고자 움직일 때 이는 제국주의가 된다. 식민지로 돌입한 이들은 더 좋은 앎을 나누어줌으로써 자신들이 토착민들에게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자기를 상냥한 친구로 여겨줄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이 행위를 아주 쉽게 말해 '스승질'이라고 한다.
친구를 못사귀는 대표적인 경우는 친구에게 이 스승질을 하는 경우다.
물론 스승질을 하는 이는 절실하다. 그는 자기가 친구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어 친구에게 유능한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게임의 고인물 논리와 같다. 고인물은 뉴비들에게 친절하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친밀감을 얻고자 한다. 자기는 이제 게임에서 할 거 다해서 심심하던 차에, 겜린이들의 유입은 이들에게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이 구조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자기가 아쉬운 내색을 비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자기를 청하는 현실처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에게는 유용한 정보자원이 있으니 굳이 자기가 먼저 "우리 친구할래?"라고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기 곁에 붙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게임에서라면 그러한 일들이 분명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사회에서도 이러한 게임감각으로 사는 이는 그래서 돈을 많이 벌려고 한다. 또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정보를 자기가 알고 있는 척한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줄 수 있는 자신을 선전해 사람들을 자기 곁에 두고 싶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러한 시도들을 하던 장면들을 떠올려보면 모든 것이 분명하다.
술자리에서 자기가 가장 마지막으로 남아 동기들을 다 택시에 태워보낸다든가, 자기 집에 방문한 이들을 자기가 늘 역까지 데려다준다든가, 회식자리에서 꼭 자기가 다 냅킨을 깔고 수저를 세팅하는 식으로, 우리는 서비스맨을 자처했다. 외적으로는 서비스맨이면서, 내적으로는 우리가 사람들보다 조금은 더 높은 존재라고 가정했다.
마치 사람들은 자기를 잘 챙기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처럼 간주한 뒤, 조금 더 성숙한 자기가 이러한 서비스를 집행하는 상위의 주체인 것처럼 굴곤 했다.
이러한 주체는 꼭 상대에게 집착하게 된다. 상대를 전적으로 소유하고 통제하려 하며, 상대가 자기 외에 다른 이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 자기가 친구를 만들기 위해 투여한 노력의 대가가 다른 이에게 가게 되는 것 같은 일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다가 결국 나오게 되는 얘기는 "배은망덕하다."이다.
사람들이 자기의 고마움도 모르고 자기를 착취하려 든다는 생각이 반드시 여기에서는 생겨난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놈들이라며 직접적으로 꾸짖는 경우도 있다.
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는 이들도 있다. 자기는 상대들에게 늘 잘해줬는데 상대는 그 고마움도 모른 채 더 많은 것을 자기에게 요구하기만 한다는 내용은 전형적이다.
그러나 비싼 상담비를 쓰지 말고, 잠시라도 앉아 정직하게 생각이라는 것을 해본다면 알 수 있다.
자기가 '갑'의 입장에서 '을'로 만든 상대와 친구가 된다는 일은 원래 성립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친구사귀기에 있어 필패의 길이다.
늘 사람들이 더욱 꼴보기 싫어지면서도, 그러한 사람들 곁에 그래도 어떻게든 다가가려 하는 자신의 비굴한 모습에 계속 화만 나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매우매우 외로워질 것이다.
물론 이런 끔찍한 예가 아니라, 조금 더 보편적인 예도 우리는 들 수 있다.
소위 '인싸'라고 불리는 이들은 그렇다면 친구를 잘 사귀는 이들인가?
그렇지 않고, 인싸들은 다만 게임을 잘 하는 이들일 뿐이다.
이들이 함께 어울리고 있는 것은 '친구'라기보다는 '동료'다. 동료라고 하는 것은 같은 목적을 공유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의 필요를 주거니받거니 하는 식으로 채워간다.
훌륭한 상거래다.
공정거래가 몸에 배어있는 모습을 가리켜 우리는 '사회화'가 잘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싸들이 있어 분명 사회는 건강하게 기능한다.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실현하고 있는 아름다운 이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체로 우리가 통상적인 차원에서 '친구'라고 부르는 것은 이 '동료'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의무교육과정 기간을 거쳐 대학교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하면서 현재까지 우리가 맺어온 것은 이 동료관계다.
우리의 인생은 아마도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의 필요가 있을 때는 최대한 그 필요를 배려하여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이 동료관계가 많은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있다.
친구를 사귀고 싶어 스승질도 해보고, 서비스맨도 되어보고, 또 정당하게 서로의 필요를 교류하는 동료관계도 맺으려고 해보았으나, 또 어떤 경우들에는 분명 성공적이었으나, 아직도 뭔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다며, 여전히 불만족스럽다며, 그러나 더는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며, 방에서 혼자 훌쩍이고 있는 당신이 여기에 있지 않은가.
그러한 당신에게 필요하던 것이 바로 심리학이다.
그러나 게임공략본처럼 정보를 말하던 구시대의 심리학이 아니다. 곧, 마법같은 앎을 통해 친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던 사이비심리학이 결코 아니다.
가장 근본있는 것이자 가장 최신의 심리학이란 무엇인가?
돌아가지 않고, 당신이 정말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그 길을 직접적으로 밝히는 심리학이다.
이렇게까지 말해보자.
당신이 그동안 해온 모든 것은 오직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친구를 사귀고자 하는 그 소망만으로 당신은 그 모든 것을 했다.
이것은 너무나 유치하며 찐따같다고 여겨 당신이 기어이 부정하고 싶을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근본있는 가장 최신의 심리학은 당신이 이 귀한 소망을 반드시 자각하기를 권한다.
이 세상에서 그토록 친구를 갖고 싶어하던 이는 누구인가?
바로 당신이다.
당신밖에는 없다.
친구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눈치채고 있던 이는 진실로 이 세상에서 당신밖에는 없다.
당신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어떤 것을 꿈꾸고 있었는지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해할 것만 같다.
'내 마음을 알아보는 이'
당신이 살아가며 대체 왜 그랬는지 그 진심을 정확하게 알아본 이가 있다면, 당신은 분명 그를 위해 목숨까지도 걸 수 있었을지 모른다.
당신에게 이것은 진실이며, 우리에게도 분명한 진실이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보는 이가 있다면, 우리는 모든 세상과도 싸울 수 있다.
계속 해나갈 수 있다.
더 걸어갈 수 있다.
언제라도 다시 또 살아날 수 있다.
당신은 바로 이러한 '친구'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반드시 알아볼 것이다. 이것이 진심이라는 사실을 당신은 모를 수가 없다.
그렇다면 당신이여, 우리가 함께 동의한 이 진실에 우리가 안착하지 말아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없다.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
꼬츄에 털이 나는 것이 성숙함의 증거이듯, 친구를 사귀고 싶은 당신의 마음도 무척이나 성숙해있다.
너보다 더 나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부모의 말 같은 것은 무시해라. 언제나 자기 이득에 따라 배신만 하는 친구가 아니라, 진정 믿을 것은 가족밖에 없다는 말도 무시해라.
당신은 그런 정도의 조잡한 차원에서 친구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당신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는 가장 귀한 존재로서의 친구를 영접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바로 그러한 친구를 소망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장 놀라운 인간됨의 일이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왜 불가능하겠는가?
해보자.
진실해보자.
당신의 마음에 진실해보자.
가장 근본있는 가장 최신의 심리학은 당신이 먼저 게임에서 빠져나오기를 청한다. 스마트폰 밖으로 시선을 돌리기를 권한다.
봐야 할 것은 당신이 게임을 하고 있는 가상공간이 아니라, 당신이 사실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당신의 실존공간이다.
거기에는 무엇이 있는가?
당신의 '진짜 마음'이 있다.
당신의 '진짜 마음'은 당신의 눈앞에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늘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그곳에 가닿기 위해 마음은 어떠한 형상을 취하며 소리를 내고 있다. 그 형상이 보이는가? 또는 그 목소리가 들리는가?
당신이 친해야 할 것은 오직 이것뿐이다.
반드시 어떠한 지향성을 가진 당신의 '진짜 마음'을 가까이에서 정직하게 보고 듣는 이 일이 곧 친교의 일이다.
심리학은 언제나 이 말만을 해왔다.
"자신의 마음과 친해지는 일이 곧 사람들과 친해지는 일이다."
당신은 왜 그동안 친구를 사귀지 못했는가?
자신의 마음과 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과 친해질 수 있다는 현실이 당신에게는 완전히 인식 밖의 것이었던 까닭이다.
어쩌면 당신은 아주 촌스러운 심리학 아닌 심리학들로부터, 마음을 내면의 아이로 보며 그 욕구를 잘 알아주어야 한다는 등의 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또는 모든 마음을 친구로 만나자면서 자기 몸을 손가락으로 막 두드리는 일이 친구와 진정으로 친해지는 길이라는 아주 이상한 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실제 사람에게 하면 안될 것 같은 일은 마음에게도 하면 안된다.
새학기가 되어 옆자리에 앉은 이를 자꾸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그래 네가 이렇게 슬펐구나. 이제 내가 알아줄게. ㅠㅠ" 육갑을 떨면 그 이가 아주 싫어한다. 친구를 사귀는 길은 영원히 요원해진다.
그렇다면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은 아주 간명할 뿐이다.
당신이 언젠가 만나게 되리라고 꿈꾸었던 그 멋진 친구에게 드리고 싶었던 그 모든 것을, 지금 당신의 눈앞에 있는 마음에게 다 드려라.
그 마음은 이미 그렇게 몸보다 마음이 먼저 와있던 당신의 그 멋진 친구다.
당신의 마음에게 한 일이 당신의 가장 귀한 친구에게 한 그 일이라고, 예수도 비슷하게 말했다.
그리고 당신들은 언젠가 반드시 만날 것이다.
서로를 만나기도 전부터 얼마나 당신들이 서로를 귀하게 여겨왔는지를 나누며, 당신들의 시간은 더욱 애틋하게 무르익어갈 것이다.
이런 것을 인생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은가?
친구사귀기만이 인간의 모든 행복이다.
우리는 마음을 통해 친구의 존재를 감지하고, 또 마음을 따라 친구와 만나는 역사를 이루어간다.
심리학은 게임이 아니며, 게임보다 훨씬 우리를 행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로 친구사귀기의 심리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