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밖에서 온 심리학 #4

"있어서 좋다"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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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귀여워서 좋은가? 섹시해서 좋은가? 똑똑해서 좋은가?


그렇지 않다.


그게 있어서 좋은 것이다.


스마트폰 밖에 있는 것은 존재이며, 이것은 존재의 심리학이다.


존재는 '귀여운' '섹시한' '똑똑한' 등의 속성이 아니다. 존재는 다만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실이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것이다.


모든 좋은 것은 있어서 좋은 것이다.


가상공간에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는가?


'있어 보이는 척'을 한다. 어떻든 간에 '있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있어 보이는 척'의 일은 근본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일은 사회적으로 선망되는 모종의 '속성들'을 통해 있음을 가장하려는 일이기 때문이다. 몸이 좋고, 예쁘고, 돈이 많고 등등의 속성들로 존재를 가장해봤자, 존재는 속성이 아닌 까닭에 거기에는 실은 아무 것도 없다.


속성을 더욱 부여한다고 해서 존재가 증가되지는 않는다. 반대로 속성이 부여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가 감소되는 것 또한 아니다.


그래서 존재가, 곧 '있다는 사실'이 좋은 것이다.


이 사실은 상대적인 조건들에 영향받지 않는다.


무조건적이다.


그래서 절대적이다.


존재 그 자체로 온전하다는 말,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말은 이러한 의미를 드러내기 위한 대표적인 표현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복된 말은 당연하게도 "있어서 좋다."라는 이 말이다. 우리의 삶에서 더 많이 발화할수록 우리에게는 가득가득 복이 찾아든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는 삶을 정확하게 사는 이는 복된 이다.


가장 고되게 사는 이들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또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사는 이들이다.


전자는 이야기로 만들어낸 허구의 정체성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대신하려는 일로 곧잘 드러나며, 후자는 실제로 지금 존재하고 있는 마음을 마치 없는 것처럼 무시하거나 우회하는 일로 드러난다.


물론 '있는 것'을 '다르게 있게' 하려는 일 또한 하나의 기만책이다. 있다는 것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를 무시하고 마음을 마치 '돌봐야 할 아이 같은 것으로' 굴절시켜 보려고 하는 관점들이 있다.


이렇게 살면 힘들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아이가 아닌 것을 아이처럼 억지로 놓고 돌보려고 하는 일은 원래 엄청 힘든 일이다.


존재한다는 말이 피보호자인 아이와 같다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물론 예수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비유했다. 그러나 이것은 피보호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치성(authenticity)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직성 또는 진정성이라고도 말해진다.


존재는 분열되어 어떠한 '척'을 하지 않으며, 존재 그 자체로 겉과 속이 일치된 진짜다.


'진짜'라는 말은 오늘날 자주 조리돌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전기신호를 가하면 뇌는 실제의 음식을 먹는 것과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면서, 더는 허구와 사실 사이의 경계가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멋대로 떠들어도 좋지만, 이러한 말을 하는 이들은 반드시 사실적으로 죽는다.


전기신호를 통해 죽은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죽는다.


또는 뇌를 속임으로써, 죽었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허구와 사실 사이의 경계는 절대로 모호하지 않다.


우리는 죽은 척할 수 없으며, 더 중요한 것은, 또한 우리는 산 척할 수도 없다.


가상현실의 본질적인 허망함은 그것이 우리의 죽음에 대해 아무 것도 응답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응답하지 못하는 것은 삶에 대해서도 응답할 수 없다.


자주 쓰이는 종교적 비유들 속에서는 이 삶을 '꿈'으로 묘사하곤 한다. 그렇다면 가상현실은 '꿈속의 꿈'이다. 아마도 이러한 꿈은 무한히 연쇄될 수 있다. 꿈속에서 또 꿈을 꾸고, 그 안에서 또 꿈을 꾸면, 그것이 삶의 증진인가?


그렇지 않고, 이는 삶의 회피다.


삶을 회피하는 대표적인 증세가 바로 '있어 보이는 척'이다. 진짜로 있지 않으니 자꾸 '척'만 하는 것이다.


삶의 증진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그 의미의 더욱 큰 실감은,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이해로부터 온다.


있다는 것은 왜 이렇게 좋은가?


있다는 것은 언제나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존재는 함께 존재한다.


이것은 존재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다. 서로 관계를 잘 맺음으로써 상부상조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다.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지금 이 모든 것이 분리될 수 없이 그 자체로서 통째로 존재하는 사태라는 의미다.


인간에만 국한해서 말한다면, 우리는 인간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공동의 존재다. 너는 내 운명이며, 나는 네 운명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이 있어서 좋다고 느낀다면, 그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가 공동의 운명을 함께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그것이 이 삶의 순간을 함께 호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의 지평 너머로 우리가 함께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마음이다.


스마트폰 안에서는 마음이라는 것을 일종의 인지도식이나 언어패턴 같은 것으로 정의할는지는 모르겠으나, 스마트폰 밖에서 온 존재의 심리학은 마음을 이렇게 정의한다.


'함께 있는 느낌'이 마음이라고.


우리가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사랑했을 때, 그렇게 우리가 진짜로 살았을 때, 우리를 떠나간 것들은 실은 이 느낌이 되어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도, 지금은 소식조차 모르는 옛동네의 동무들도, 이 마음속에 늘 함께 있다.


이러할 때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아버지와, 고양이와, 또 옛동네의 동무들과 함께 매일의 순간을 걸어나간다는 것이다.


내가 발걸음을 옮기지만, 존재의 차원에서는 내가 사랑한 그 모두가 함께 동행하고 있다.


내가 걷는 길 위에 모두가 정다웁다.


삶이 이렇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살고 싶어 하게 될지를 짐작할 수 있겠는가?


삶이라는 것이 소중해서 견딜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 시작하는 매일의 시간은 사랑하는 것들을 보고 또 보며, 자꾸 보게 되는 그 시간이 된다.


살아서 좋다.


있어서 좋다.


내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 대체 얼마만큼의 기적이고 축복인지를 우리는 실감한다.


있어서 좋다는 것은 언제나 함께 있어서 좋다는 것이며, 마음은 이 함께 있음의 사실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느낌이다.


내 가슴은 이 사실과 일치하여 늘 그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것들이 영원히 함께인 천국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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