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과 생존

"내가 인간인 것을 그만두게 할 수 없다"

by 깨닫는마음씨



실존이라는 표현을 마치 철학자의 추상적인 관념놀이처럼 착각하는 이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실존보다는 생존이지."

"밥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지, 그깟 현학적 개념이 중요한가?"

"전 그런 어려운 거 몰라도 됩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잘 사는 게 우선이죠."


결국 이 말들의 의미는 이와 같을 것이다.


'실존과 관계없이 잘 살기만 하면 된다.'


무식은 경우에 따라 자기의 위악을 즐기는 방식이지만, 그것이 당연한 정답인 것은 아니다.


핵심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실존과 관계없이 잘 사는 일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실존이 바로 '잘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주 단순하게, 생존과 실존을 이해해볼 수 있다.


생존(生存)은 '살아 있음'이고, 실존(實存)은 '진짜로 있음'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진짜로'라는 표현이 뜻하는 것은 열매 실(實)자가 함축하듯이 '충만하게'의 의미다.


단지 살아 있는 정도가 아니다. 충만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즉, 잘 살아 있는 것이다. 그것이 실존이다.


이처럼 실존은 우리가 잘 사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먼 하늘에 대한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실존은 생존을 포함한다. '잘 산다'라고 하는 표현 속에 이미 '산다'라는 표현이 담겨 있는 것과 같다. 실존은 생존과 다른 별개의 논리가 아니라, 생존 위에서 더 확장되어 펼쳐지는 삶의 실천론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 실존하고 있다. 실존이라는 것 자체가 동물과는 다른 인간의 고유한 존재방식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물은 그저 생존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존할 뿐만 아니라 실존하기까지 한다. 그냥 사는 문제가 아니라, 잘 사는 문제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것은 인간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오히려 인간은 표현 그대로의 생존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생존이라는 말로 실존의 의미를 대체하여, 실제로는 실존에만 관심을 쏟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정말로 단지 목숨을 영위하는 일이 문제라면, 인간은 무료급식소에서 배급되는 라면 하나에도 감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가능한 생존의 현실에 감사하기보다는 오히려 불만을 갖는다. 그렇게 사는 것은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고 말한다. 최소한 남들만큼은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좋은 집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항변한다.


당연하다. 인간이 잘 살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단지 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잘 살고 싶어한다. 이처럼 인간은 분명하게 실존의 현실 위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잘 사는 것'이, 특히 '잘'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바로 여기에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실제로는 실존의 현실 위에 놓여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표현을 생존이라는 말로 대체해왔기에, 곧 자신이 영위하고 있는 존재방식을 착각해왔기에, '잘'이라고 하는 의미에 대해서도 굴절되게 이해해왔다는 것이다.


생존이라는 것은 언제나 환경과의 투쟁이다. 이러한 논리 속에서 '잘'은 얼마나 더 환경에 대해 우위를 점하는가의 문제를 의미하게 된다. 환경이라는 말을 조건으로 바꿔서 이해하면 더 명확해진다. 생존의 논리 속에서, 생존은 자기를 둘러싼 조건에 달린 것이며, 그 조건을 얼마나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때문에 이러한 논리로 '잘 사는 것'을 추구하게 되면, 더 많은 조건, 더 좋은 조건, 더 항구적인 조건을 획득하는 일이 중요해지는 현실이 출현한다. 그리고 이내 '잘 사는(live) 것'은 곧 '잘 사는(buy) 것'으로 그 의미가 변질된다. 투쟁에서 승리할 유리한 조건을 획득할 수 있는 유능한 구매력을 갖추는 것이 '잘 사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금수저가 예찬되는 방식이다. 자신이 실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외시하고 생존이라는 언어로만 자신을 설명하는 가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감히 '잘 사는 것'을 추구하고 있을 때 생겨나는 현실이다. 즉, 자신의 존재방식에 대한 이해가 혼란스러울 때, 그 혼란의 귀결은 금수저에 대한 추구가 된다.


이처럼,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금수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즉 좋은 조건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금수저를 동경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금수저를 원망하게 될 때, 결국 자신의 모든 삶은 금수저를 중심으로 한 금수저 천동설의 이야기 속에 갇히게 된다. 그렇게 금수저의 세력만을 강화시키게 되는 것이며, 그로 인해 스스로의 삶은 더 척박해진다.


그러나 실존의 현실은 이러한 조건의 우위권을 점하는 금수저에 대한 것이 결코 아니다.


실존은 단지 환경에 대한 투쟁만이 아닌 까닭이다. 실존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다. 상호작용이라는 것은, 늘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거니받거니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존은 악착같은 고집이 아니라, 배려할 수 있는 여유다.


이처럼, 실존은 일방적인 조건의 성취에 대한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조건의 소통에 대한 것이다. 모든 조건에 대한 모든 조건이 가능한 것이다. 그 어떤 조건으로도 가능한 것이다. 이 말은, 곧 무조건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실존의 논리에서의 '잘'은 무조건에 대한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잘나도 인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아무리 못나도 인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이라는 실존은 무조건적인 것이다. 인간이 획일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이 획일적인 형상으로 조건화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분명 인간은 환경과의 상호적인 관계 속에서 다양한 형상으로 그 자신을 변화시켜가며 소통해가는 존재다.


때문에 이 무조건이라는 표현은 조건을 무시하거나, 조건과 무관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조건'이라는 표현 속에는 이미 '조건'이라는 표현이 들어있다. 즉, 무조건의 실제적인 의미는, 조건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아주 쉽게 이야기하면, 실존의 논리는 인간이 그 어떤 조건 속에서도 '잘' 인간일 수 있는 현실을 출현시킨다는 것이다. 그 어떤 조건을 밟고서도 그 자리에서 '잘' 인간할 수 있는 현실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존의 논리에서는 '잘'이 지시하는 것은 조건이지만, 실존의 논리에서는 '잘'이 지시하는 것은 무조건이다.


그리고 그 무조건이 향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의 무조건성이다.


그리고 이 무조건성은, 좋은 조건을 갖추어야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금수저 천동설을 붕괴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코페르니쿠스의 선언과도 같다.


왕궁의 중심에 위치한 옥좌에 금수저를 앉히고서, 좌와 우로 나뉘어 서로 자기들이 진정한 금수저의 옥좌에 앉을 수 있는 진정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다투는 왕궁 안에서, 그 왕궁 자체가 그저 이 우주의 초라한 변두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전하고서는 그 왕궁 밖을 향해 성큼 걸어나가는 인간의 경쾌한 발걸음이 여기에 있다.


정의도 적폐도, 서초동도 광화문도, 금수저도 흙수저도, 이 세상의 그 어떤 조건들도, 내 자신이 인간인 것에 단 1mg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어느 한쪽의 조건을 획득해야 더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일방적으로 말하는 독재의 현실은 성립되지 못한다.


이와 관련하여, 인간에 대한 심도있는 통찰을 담고 있는 걸작만화인 『창천항로』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인공 조조의 선언이 묘사된다.





이것이 바로 실존의 무조건성이다.


그 어떤 조건과도 관계없이, 즉 그 어떤 조건을 통해서도, 나는 인간이다. 우리 자신은 인간이다. 이것은 무조건적이다.


나는 정의로도 인간이고, 적폐로도 인간이다. 나는 서초동으로도 인간이고, 광화문으로도 인간이다. 나는 금수저로도 인간이고, 흙수저로도 인간이다.


그 어떤 조건으로도 나는 인간이다. 인간은 조건에 매이지 않는다. 곧, 인간은 자유롭다.


이처럼 무조건성은 바로 자유인 것이다.


인간이 무조건적인 인간으로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래서 '잘'의 정확한 의미는 자유다. '잘' 인간이라는 것은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것이다. '잘 사는 것'은 바로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다.


인간이 노래하는 것은 언제나 이 자유다. 오직 자유뿐이다.


어떠한 조건 속에서도, 어떠한 모습으로도, 그 자신이 인간이라고, 이 인간임을 그 누구도 그만두게 할 수 없다고, 오직 한 목소리로 노래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실존보다는 생존이지."

"밥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지, 그깟 현학적 개념이 중요한가?"

"전 그런 어려운 거 몰라도 됩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잘 사는 게 우선이죠."


이처럼 인간의 삶을 임의적으로 규정하며, 그 당위적 단순성을 주장하고 있는 이 위악의 방식이 바로 독재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을 획일적인 가치 속에 가두어, 특정한 조건을 취득한 인간의 모습만을 인간이라고 중심화하는 이 천동설의 방식이 바로 폭력이다.


이것은 물론 순수한 의미 그대로의 생존의 논리도 아니다. 선뜻 진중하고 심각한 현실을 상기시키는 이 생존이라는 언어를 통해, 독재와 폭력의 의도가 정당화될 수 있는 불가피한 당위성의 무게를 얹기 위해 펼쳐내는 기만의 논리일 뿐이다. 이른바, 생존이라는 무거운 언어를 들이밀고, 이를 통해 천동설의 지지자들이 원하는 임의적인 현실을 성취하기 위한 협박의 논리일 뿐이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말했다.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인간이여?


"그래도 나는 인간이다."


그 어떤 기만과 협박으로도, 그 어떤 금수저의 달콤한 향기로도, 인간에게서 이 또한 인간일 자유를 강탈할 수는 없다.


나는 이미 살고 있고, 잘 살기를 꿈꾼다. 그렇게 생존 위에서 실존의 자유를 누린다.


나는 실존한다. 나는 자유롭다.


그 누구도 인간이라고 하는 이렇게 멋진 것을 그만두게 할 수 없다.


내가 인간인 것을 그만두게 할 수 없다.






Pearl Jam - Given to Fly
He could've tuned in, tuned in
그저 세상의 상식에 따라 살 수도 있었지
But he tuned out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을 택했어
A bad time, nothing could save him
힘든 시간 속, 누구도 그를 구원해주지 않았어
Alone in a corridor, waiting, locked out
긴 복도에 홀로 앉아, 그저 기다리며, 갇혀 있었지
He got up outta there, ran for hundreds of miles
그러다가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수백마일을 달려갔어
He made it to the ocean, had a smoke in a tree
그는 바다에 도착했고, 나무에 기대 담배를 한대 태웠어
The wind rose up, set him down on his knee
순간 강한 바람이 불어와, 그 자신을 겸허히 내려놓게 했지
A wave came crashing like a fist to the jaw
커다란 파도가 몰려와 날아오는 주먹처럼 부딪쳤고
Delivered him wings, "Hey, look at me now!"
그의 날개를 해방시켰어 "이것 봐, 나를 좀 보라고!"
Arms wide open with the sea as his floor...
바다 위에서 두 팔을 힘껏 펼친 채로
Oh, power, oh
오, 이럴수가
He's... flying
그가 날고 있어
Whole...
온전하게
High... wide... oh
높게, 자유롭게
He floated back down 'cause he wanted to share
그는 자신이 배운 것을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돌아왔어
His key to the locks on the chains he saw everywhere
이 세상 모든 곳에 걸려 있는 족쇄들을 풀 열쇠를 갖고 말야
But first he was stripped and then he was stabbed
하지만 그는 벌거벗겨져 모욕당하고 짓밟혔어
By faceless men, well, fuckers
진실을 원하지 않는 대중에 의해
He still stands
그러나 그는 묵묵히 거기에 서있어
And he still gives his love, he just gives it away
그는 여전히 사랑을 주고 있어, 대가 없이 그저 주는 사랑을
The love he receives is the love that is saved
그가 받는 사랑은, 그렇게 줌으로써 우리 모두를 구원하는 그런 사랑이야
And sometimes is seen as strange spot in the sky
가끔씩 하늘을 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보일지도 몰라
A human being that was given to fly
그건 바로 그야, 자유로운 인간존재
High... flying
그가 높게 날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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