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밖에서 온 심리학 #9

"앞서 사는 이들이 느끼는 것"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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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사는 이들은 반드시 이것을 느낀다.


자신의 삶을 가장 재미있게 살고 있는 최고의 모험가들은 반드시 이것을 느낀다.


당신도 분명히 이것을 느낀다.


이것은 '존재의 기척'이다.


존재하는 것에는 기척이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기척이 없다.


가상현실의 게임 속에는 기척이 없다. 말을 서로 섞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서 그것이 기척을 나누는 대화인 것은 아니다. 자신과 파티를 이뤄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주 정교한 챗봇이라고 해도 우리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대화라는 것은 언어적 소통보다 더 깊은 것이다.


대화는 실은 서로의 존재를 나누는 일이다.


기척의 교류라고 말할 수도 있다.


또는 대화는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고도 말한다. 정확한 표현이다.


'존재의 기척'이 바로 마음인 까닭이다.


어떠한 마음을 경험할 때 우리는 거기에서 반드시 존재의 기척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단지 단편적이고 표면적인 감정으로 드러나는 개별적인 마음작용들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그것들이 펼쳐지며 아주 섬세하게 알리고 있는 '큰 흐름'에 대한 것이다.


각각의 마음작용들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그 흐름 속에는 우리를 향한 존재의 뜻이 담겨 있다. 우리를 우리에게 가장 정당하고 온전한 자리로 이끌고자 하는 그 뜻이다. 이 뜻을 눈치채라고 개별적인 마음작용들은 우리에게 경험된다.


이러한 존재의 뜻이 향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미래다. 때문에 우리가 마음작용들 속에 담긴 어떠한 큰 의지를 직감할 때면, 그렇게 존재의 기척을 감지할 때면, 우리는 미래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존재의 기척을 느끼며 사는 이 일을 '존재를 따라 사는 일'이라고도 말한다.


이렇게 살면 가장 빠르게 살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분주하거나, 할 일이 많아 바빠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마치 자신이 현명한 선택의 주체인 척하며, 또는 자기가 자기를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의 무게에 눌려, 다만 질질 유예시키기만 하는 의사결정의 시간이 매우 단축된다는 의미다.


글을 쓸 때도 이렇게 쓰면, 글감이 넘쳐나고, 진도는 팍팍 나가게 된다.


그는 지금 존재와 일치해서, 존재를 향해 말해야 할 바를 말하는, 존재의 일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쉽게 말해, 존재가 그를 통해 쓰고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예술가들은 영감을 받았다고도 묘사해왔다. 이 영감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아이디어의 창발만이 아니다. 1%의 영감은 단지 영감만이 아니라 99%의 노력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커다란 에너지원이 되기까지 한다.


99%의 노력을 하면 어지간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감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99%의 노력을 실제로 집행할 수가 없다.


영감은 사실 100%의 모든 것이다.


존재의 기척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에 있어서 100%의 것이다.


게임메뉴얼과 같은 인생의 공식들을 모방해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느껴지는 존재의 기척, 즉 '자신의 마음'을 따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떠한 자기계발강사가 자기는 이 방법으로 성공했다며 우리에게 제시하는 그 방법론을 따랐다가 실패하면 그 책임은 어떻게 질 수 있는가?


다 자신이 져야 하겠지만, 그것은 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원망만 된다. 자신이 너무나 어리석었다는 자책감 속에서 미래는 닫히며, 우리는 한없이 우울하다.


그러나 존재의 기척을 따르는 일은 순조롭다. 존재가 책임지고 미래로 연결해준다.


결국 우리가 아직까지도 불신하고 있는 것은, 쉽게 믿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다.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이 '존재의 기척'이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우리는 아무 능력도 없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이라는 소재에서 비롯한 것을 믿기가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은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실증적이다. 확인해보라.


"아, 이런 마음 느껴야지."하며 우리는 마음을 경험하는가?


그렇지 않다. 어디선가 돌연히 우리에게 찾아들어 경험된다.


마음은 타자다.


존재라는 타자의 기척이다.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크고 강한 힘을 가진, 그러나 그 거대한 힘을 바로 우리를 위해 집행하려고 하는, 가장 신뢰하고픈 타자다.


우리 자신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이가 만든 1억을 벌 수 있다는 조잡한 메뉴얼보다, 100조를 가진 절대적인 우리편이 원래 더 신뢰할 수 있는 법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바다에서는 파도를 타고, 사막에서는 낙타를 타야 한다.


그러면 가장 빨리 갈 수 있다. 또 가장 안전하고, 정확하게 갈 수 있다.


파도는 바다길을 알고, 낙타는 사막길을 아는 까닭이다.


이제 내가 진정한 나의 길을 간다고 하는 식의 얘기들은, 비도 오고 우리가 괜히 울적한 날에 코미디의 소재로 소비하면 좋다.


우리는 나의 길을 가지 않고, 나의 미래로 간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횡단하여.


낙타에게 다 맡겼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낙타 위에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나 보며 꾸벅꾸벅 조는 지루한 현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척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이해해보자.


기척은 잠을 깨운다.


기척이 느껴질 때 잠들어 있던 이는 눈을 뜬다.


그래서 기척이 없는 가상공간 속에서 우리는 눈을 뜨고 신나는 척을 하고 있어도 실은 잠들어 있는 것이다.


섬세하게 자신의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거대한 삶의 흐름을, 곧 존재의 기척을 눈치채는 이들은 깨어나 있다.


깨어나 있으니 이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 선명하다. 새롭고, 생기있으며, 탐구심이 무럭무럭 피어난다.


그러니 낙타 위에 타고 있는 이들은 여행의 과정이 재미있다.


재미 또한 미래를 향해 열려 있을 때 경험되는 대표적인 소재다.


열린 미래의 문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자유라고 부르며, 재미는 우리가 이 자유의 바람에 휘감겨 있을 때 경험하는 감각이다.


이처럼 존재의 기척을 느끼며 존재를 따라 사는 이들이 가장 앞서 살며, 심지어 가장 재미있게 살기까지 한다.


그들은 깨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이렇게 사는 방식을 당신에게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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