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밖에서 온 심리학 #12

"마이너스의 담요"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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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허구로 사는 방식은 무엇일까?


묘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자기 빼고는 다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NPC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 자기만이 이 오픈월드의 주인공이며, 또한 자기만이 이것이 오픈월드라는 것을 알고 있는 깨어난 자다.


이러한 이들은 어떠한 NPC가 멋있고 유능해보이는 움직임을 보이면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취하려 한다. 그 방법은 해당 NPC를 작동시키는 각본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각본에 따라 자기도 동일하게 행위하면 해당의 NPC가 갖고 있던 그 장점들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간 생각도 있다.


이것은 이제 자기가 오픈월드를 주관하는 '각본가'가 되려는 생각이다.


이러한 이들은 자기가 가진 자칭 천재적인 글쓰기의 능력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모습의 각본을 직접 쓰면, 이 세상 모든 좋은 것을 자기가 원하는대로 다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소위 이들은 자신이 마이더스와 같은 연금술사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마이더스의 펜'이다. 자기가 글을 쓰면 황금이 만들어진다는 생각이다.


어렸을 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무협지나 읽고 게임이나 하며 침대 안에서 망상에 빠져 자란 이들이, 학력이나 기술 등의 자원을 갖지 못한 채 나이를 먹어 사회적으로 도태되었을 때, 그 끝에서 자주 하게 되는 대표적인 생각이다.


이들은 자신을 숨은 고수라고 생각한다. 무협지나 만화책에서 주워본 잡다한 정보지식의 보유량에 근거해, 자기가 세상을 꿰뚫어보고 있는 현자라고 스스로를 믿고 싶어한다.


물론 이들의 정보량이란 진짜 '덕후들' 사이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의 수준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아주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이들보다 조금 더 '이상한 것'을 안다는 이유로, 실제 그 수준이 깊지도 않으면서 자기 자신을 마치 대단한 전문가인 것처럼 자임하고 있는 것이다.


락음악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많은 경험도 없으면서, 서태지 솔로 1집을 듣고는 자기가 아주 대단한 락매니아인 것처럼 행세하려는 모습과도 같다.


자기는 유치한 헐리우드 영화는 보지 않고, 대중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봉준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의 영화만을 보는 시네필이라고, 삼거리포차에 앉아 여자들 앞에서 신나게 자칭하는 일과도 똑같은 것이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총체적으로 굴절된 일이다.


존나 쪽팔린 일이다.


우리의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이들은 현재 자신을 쪽팔리게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도 쪽팔림 속에 빠트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허구로 살아갈 때 반드시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조금 야한 예를 들어보자.


굉장히 섹시한 속옷이 골목 끝 담벼락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지나가다 그것을 눈치챈 우리는 일종의 흥분상태에 빠져들며,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서서히 그쪽으로 다가간다. 관심이 없는 척 점잖음을 위장한 채, 최대한 신속하게 그 속옷을 손에 넣을 생각으로 우리의 온몸이 긴장하며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앞까지 다가가게 되었을 때, 우리는 속옷으로 보였던 그것이 비닐봉지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엄청나게 쪽팔려진다.


허구가 야기한 욕망에 빠져 있던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 수치심은 찾아든다. 그래서 수치심을 영적 현상이라고도 말한다.


옛날 옛적 싸이월드에 썼던 일기를 보게 될 때의 상태도 이와 같다. 어떠한 허구의 환상에 취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마치 멋진 영화장면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그 도취의 심정을 써내려갔다. 환상이 깨진 자리에서 다시 발견되었을 때, 그것들은 다 이불킥의 소재일 뿐이다.


예전에 썼던 글들을 보면, 또는 예전에 썼던 논문이나 책을 보면, 우리는 대단히 부끄러워진다. 이것은 정상적인 반응이다. 우리가 그때보다 한참이나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꿈에 지금은 취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예전에 썼던 글을 예찬하며, 자기는 예전에도 최고의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쪽팔린 것을 모르는 이들이다.


쪽팔린 것을 모르면 성장할 수 없다. 늘 그 자리다.


이러한 이들의 상태는 대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무협지나 읽고 있던 그 침대의 담요 속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담요를 안고 사는 라이너스는 자기가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라이너스는 정직하기에 사랑을 받는다.


이들은 '라이너스'라기보다는 '마이너스'다.


또한 '마이더스'일 수도 없고, 단지 '마이너스'일 뿐이다.


자기와 자기를 스승처럼 보며 따르는 팬덤 말고는 다 NPC로 보며, 자기를 위대한 각본가처럼, 또 대단한 수준을 가진 권위자처럼 행세하려는 방식은, 정확하게 이 마이너스의 방식이다.


'마이너스의 담요'로 이 세상을 다 덮으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왜인가?


세상이 무서워서다.


그래서 자기가 믿고 싶은 허구의 담요로 세상의 실상을 은폐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세상의 실상이란 무엇인가?


매일 해가 지고 뜬다. 또 별이 지고 뜬다.


다시 가능하며, 아직 아무 것도 늦지 않았다.


허구에서 나와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이에게 세상은 자신을 열어 환대한다. 정말로 아직 아무 것도 늦지 않았다며, 그의 자리를 마련해준다.


심지어는 담요를 옆에 둘 바스켓도 라이너스를 위해 마련되어 있다. 라이너스도 얼마든지 담요를 갖고 와도 된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누구도 NPC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의 머릿속 세상에서 나와, 그 두터운 마이너스의 장막에서 빠져나와, 세상의 공기를 들이마시려고 하는 이에게, 세상은 라이너스의 편이다.


자신이 황금을 창조한다고 믿는 '각본가'의 모습, 이것이야말로 실은 가장 NPC적인 것이다.


이것은 단순하게 그냥 '욕망의 노예'인 까닭이다. 욕망에 끌려다니면서, 자기가 욕망의 주체인 척하는 모습이다.


누구보다 NPC이면서, 아니 세상에서 유일하게 NPC이면서, 그러한 자기가 NPC인 줄도 모르는 상태다.


이것이 가장 허구로 사는 상태다.


존재하지 않는 NPC로 우리가 전락하게 되는 유일한 방식이다.


진실로 마이너스의 방식이다.


덮을수록 오히려 더 춥고 무서워지는 마이너스의 담요다.


엄마한테 등짝을 맞고 정신을 차리는 일이 언제나 가장 좋지만, 그러면 몸도 따뜻해지지만, 요즘에는 이러면 엄마가 얼마나 자신을 착취했는지, 엄마가 준 그 고통을 그동안 얼마나 자신이 사랑으로 착각했는지를 상담소에서 눈물로 호소하며, 또 다른 마이너스들인 가짜상담자들만이 돈을 버는 일이 될 뿐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결코 부정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외로움이다.


마이너스의 담요를 덮고 있으면 외로움이 사무친다.


그래서 마이너스들은 언제나 소울메이트, 도반, 마음의 온전함을 함께 나눌 파트너 등의 이름으로, 자기와 똑닮은 마이너스를 찾으려고 한다. 자기처럼 NPC가 아니고 깨어있는 '각본가'를 만나기를 꿈꾼다. 둘이서 함께 담요 속에 있으면 외롭지 않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이너스에 마이너스를 더해봐도 그 값은 마이너스다. 더 큰 값의 마이너스다.


마이너스와 마이너스의 관계에서 플러스로 전환되는 길은 덧셈이 아니라 곱셈이다.


이것은 상쇄다. 자신이 황금이라 생각했던 순간을 전부 다 쪽팔림으로 다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면 플러스로서의 삶만이 남는다.


여기에서 마이너스를 다시 반복하면 그 모든 것은 다시 마이너스가 된다. 그러니 쪽팔린 것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으면 된다.


이제 '쪽팔림의 담요'가 된 것을 우리는 더는 덮고 싶지 않아질 것이다. 담요 밖으로 당장이라도 뛰쳐 나오게 될 것이다. 햇살이 비추는 세상 안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러한 당신을 우리는 아주 많이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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