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연기생활"
가상공간이 일종의 연극무대와 같다는 생각을 우리는 자주 해본다.
그 허구의 영토에서는 현생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전시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위할 수도 있다.
이처럼 허구를 중심으로 한 생활양식이 발달하면서 함께 발달하게 된 것은 연기생활이다.
이 연기생활은 온라인에서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지배적인 양식으로 펼쳐진다.
SNS를 통해 전파되는 밈(meme)의 유행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밈을 소비하면서 현재 주목되고 있는 모종의 인물상을 연기하고 있는 것과도 같다.
어떠한 이들은 만화책이나 영화를 보고는 거기에서 나오는 인물의 흉내를 낸다. 예를 들어, 한 영화에서 아버지가 실수를 저지른 아들에게 "임마, 넌 내 아들이잖아."라고 말하는 장면을 인상적으로 본 어떤 이는, 일부러 그런 상황을 만들어 실제의 자기 아버지에게서 어떻게든 "임마, 넌 내 아들이잖아."라는 대사를 끌어내려고 시도한다.
이것은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었던 이가, 자기의 연기를 통해 아버지를 조종함으로써 그 소망을 이루고자 발달된 방식이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수도 없이 남들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연극판에 강제적으로 끌어들여지곤 한다.
이 일은 아주 피곤하며 힘든 일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일이 불쾌한 이유는, 이 연극판을 펼친 이는 매우 단시간 안에 이제는 싫증났다는 듯이 자기가 연극판에 끌어들인 이들을 공허한 무대 위에 남겨둔 채, 순결한 피해자 내지 희생양의 모습을 위장하여 자기만이 연극판에서의 탈출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금 사람들을 심심풀이로 희롱하고 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욕망을 이루어줄 도구적 대상으로만 얕잡아보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들은 사람들을 연극판에 끌어들인 뒤, 사람들에게 배역을 강제할 뿐만 아니라, 관객이 되기를 또한 강제한다.
하나의 연극판이 펼쳐진다는 것은, 현재 이들이 흉내내고 싶은 하나의 인물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인물을 연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자기 주변의 사람들이 지켜보라고 관심을 착취하기 위해 연극은 펼쳐진다.
이들이 특정한 인물을 따라하는 연기를 시도하려는 이유는, 모방을 통해 그 인물의 중요한 자원과 특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이들이 연극판을 벗어나려고 하게 될 때는, 이들이 충분히 그 인물의 자원과 특성을 자신이 얻었다고 판단할 때다.
"훗. 나도 이거 할 수 있구나. 이제 이것도 정복했네."
그렇게 그는 자기의 연극판에 끌어들여진 배우들이자 관객들을 얕잡아볼 뿐만 아니라, 자기가 연기하고 있던 인물도 얕잡아보는 일에 성공한다.
이 연기생활의 주체는 모든 것을 이러한 방식으로 한다.
커피내리는 인물을 따라 연기한 뒤, "훗, 나도 커피 똑같이 잘 내리네. 이제 커피계에서 중상급은 되었구나."라고 생각하거나, 상담하는 인물을 따라 연기한 뒤, "훗, 나도 동일한 수준으로 상담할 수 있네. 난 상담전문가다 이제."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거의 반드시 이 연기인들은 자신을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라고 간주한다.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천재적인 머리로 그 핵심을 파악해서 더 쉬운 방식으로 연기해낼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학벌이 되었든 지적 성과가 되었든, 자신의 지성이 정말로 유능한지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들은 늘 슬금슬금 뒤로 빠져 도망을 간다.
이들은 그저 똑똑한 남들에게서 주워들은 말을 앵무새처럼 재생하며, 그것을 자신의 말인 것처럼 행위하고 있었을 뿐이다.
즉, 이들은 똑똑한 것이 아니라, 똑똑한 인물의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와 같다.
이들은 인생을 통째로 연기로 산다.
그렇게 공허한 연기처럼 산다.
이들이 어떤 분야에서 잘하는 척을 하지만, 아니 거의 모든 분야에서 노련한 마스터인 것처럼 굴지만, 그 실체를 살펴보면 언제나 깊이와 역량이 없는 이유다. 그것을 실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는 연기를 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결국 연기의 전문가인가?
그렇지도 않다.
이들은 삼류연기자들이다.
연기를 한다면 일급의 연기를 할 수도 있다.
일류연기자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
자신이 연기하고자 하는 인물에 아주 깊은 관심을 갖고, 그 인물에 대한 사랑으로 연기를 한다.
그럼으로써 관객들에게 자신이 아닌 그 인물이 사랑받을 수 있도록, 인물과 관객 사이를 중개한다.
그러니 그는 자신이 연기한 그 인물을 배신하는 법이 없다. 그에게 인물이란 "훗, 이런 인물의 자원과 특성도 내가 얻었다."의 도구적 소재가 아니라, 자신이 평생을 들여 더 깊이 연기해내고자 하는 갸륵한 소재다.
삼류연기자들은 자기를 위해 인물이 있다고 믿으며, 그렇게 인물을 끊임없이 얕잡아보며 조롱한다.
일류연기자들은 자기 위에 인물을 둔다. 인물을 위해 그가 있다. 인물에게 그 자신을 다 바친다. 그 인물을 연기할 수 있어 그는 감사할 뿐이다.
'인물'이라는 말을 이제 '인간'이라고 바꾸어보자.
이것은 인간을 조롱하는가, 아니면 인간을 사랑하는가, 그 두 개의 태도를 시사한다.
삼류연기를 통해 몇 번 따라하면 그 인간의 핵심을 다 얻었다는 태도는 인간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조롱의 방식이다. 여기에서 인간은 최대치로 비루한 존재가 된다.
그의 눈물이 만든 삶을, 자신의 심심풀이를 위한 일회용 자위기구로 쓰는 일과 같은 것이다.
이처럼 언제나 자신의 영광을 위해 남을 흉내내 남의 것을 취하려는 일은, 실은 인간에 대한 거대한 조롱이다. 인간의 삶을 가장 얕잡아보는 태도다.
이러한 삼류의 연기생활은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연기를 한다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연기를 해야 한다. 그것이 일류의 연기자다.
이것은 관객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만이 아니다. 삼류연기자들은 어찌 되었든 간에 자신의 관객들은 자신의 연기에 만족해한다는 것을 자신에 대한 보호장치로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일류의 연기자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에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그가 인물에 쏟아부은 사랑이 관객의 눈에도 비쳐, 사람들은 그 인물에 찬사를 보내게 된다.
그 인물은 배우 자신이 아니다. 자신이 영광을 얻기 위해 남에게서 가져와 자신인 것처럼 하고 있는 그 소재가 전혀 아니다.
인물은 배우에게 있어 전적인 타자다.
일류의 연기자는 이 전적인 타인을 빛내고, 그 타인의 존재가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일류의 연기자는 전하고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을.
당신이 연기를 좋아한다면, 당신의 연기생활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가장 멋진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일, 이것이 인간에게는 언제나 가장 멋진 일이다.
당신이 하라고 태어난 일이다.
가장 멋진 이 일을 당신이 독차지하라고 당신은 인생이라는 무대를 얻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