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밖에서 온 심리학 #17

"아아, 이것은 '마음'이라는 것이다"

by 깨닫는마음씨




"아아, 그런가.


그래, 이것이 바로 '마음'이라는 것이다.


내 세계에서는 흔한 것이지만 당신들에게는 신비한 비밀로 보이겠지.


그래, 이것은 그 소유자에게 놀라운 경험과 강력한 권위를 가져다주지.


나는 이 마음의 비밀을 통해 당신들의 세계에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마음을 온전하게 알아줌으로써 나의 편이 된 마음들의 도움으로 마왕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라는 것이다."


누가 말하고 있었는가?


중학생은 '이세계'에 간다.


초등학교라고 하는 이세계로 가서, 미개한 이세계인들을 자신의 앞선 지식으로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초등학교에는 초등학생이 아닌 이들도 있다. 선생님, 급식이모님, 차량기사님, 행정직원, 매점아주머니, 아르바이트생 등이 이세계의 또 다른 구성원들이다.


이들은 마족이 된다.


중학생보다 세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중학생 자신이 초등학생들의 구원자로 활동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이들은 사악한 권력을 가진 세력으로 규정되며,중학생은 초등학생들에게 자기가 이 마왕의 압제로부터 모두를 자유롭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세계물들의 실상이다.


라이트노벨이나 무협지, 웹툰에 대한 얘기인가?


오늘날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얘기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자주 우리가 이 세계가 아니라 이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군다.


자기는 다 알고 있고, 다 할 수 있으며, 단지 돈만 없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거의 분명하다.


돈만을 유일하게 문제시할 때 돈에 집착하게 된다. 그렇게 돈에 집착하는 것은 '이 세계'를 만만히 보고 있는 까닭이다. 돈의 문제만 해결되면 본질적인 차원에서 자기 뜻대로 다 되는 '이세계'로 여기고 있을 가능성은 높다.


이처럼 이 세계를 이세계로 살고 있는 이들은, 게임의 콘텐츠란 콘텐츠는 다 정복한 사람처럼 군다.


그래서 이들은 초등학생이나 키우려고 든다


초등학생만이 그들이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기 때문이며, 이 말은 그들의 실체가 중학생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심리적 발달이 거기에서 멈춘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중학생이 인생 다 산 마스터처럼 곧잘 행세하는 것은, 그들이 경험이 많고 똑똑해서 정말로 다 살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인생이 멈추었고, 곧 막혔기 때문이다.


막혀서 더는 가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그 자리를 '완성점'이라고 정당화해보고 싶은 것이다.


중학생들의 인생이 막히는 것은 언제나 그들이 '이세계'에서 나와 '이 세계'로 오지 않아서다.


'이세계'는 누가 만드는가?


또 다른 심리적 중학생의 속성을 가진 작가들이 만든다.


그렇기에 이세계는 중학생들에게 아주 안락하게 경험된다. 자기와 똑같은 수준에서 모든 것이 이해가 가도록 작동하며, 특히 자기들이 최고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계'는 마음이 만든다.


우리는 마음이라는 것을 배우러 이 세계에 온 것이다.


우리가 마음이라는 것을 치트능력처럼 갖고 이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만든 마음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착실하게 배우기 위해 이 세계로 온 것이다.


하지만 이세계에 있는 척하는 중학생에게는 마음은 자기가 배워야 할 소재가 아니라, 이세계의 미개한 이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할 소재다. 자기는 마음에 대해 그 핵심적인 비밀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앞서 말한 것처럼, 돈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을 다 아는 자기가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대접받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돈이라고 간주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돈은 마음보다 상위의 가치를 갖게 된다. 중학생들 자신이 그렇게 돈을 최종의 것처럼 가치평가를 이루어 행위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 세계의 사실은 다르다.


마음은 절대적으로 돈보다 높다.


당연하다.


아무리 많은 돈을 써도 사람의 마음을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돈줄로 묶어 몸은 노예처럼 구속할 수 있어도, 그 마음은 자유롭다.


마음의 자유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세계로 가려는 수많은 중학생들은 왕이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계로 온 이유는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배운다는 것은 자유를 배운다는 것이며, 우리가 정말로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배운다는 것이다.


왕은 가장 매인 것이며, 자유는 가장 풀린 것이다.


매인 것은 꼬이고 뒤틀린다.


자신이 왕이 되어 모든 마음이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도록 자상하게 지켜보겠다는, 말이 되지 않는 모순 그 자체의 소리를 심리적 중학생들이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꼬이고 뒤틀려 있어서다.


실은 왕이 되고 싶은데 그러면 사람들이 지지를 안해주니까, 모든 마음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는 '선한 영향력'의 대의를 표면에 걸고 자신이 은밀하게 왕이 되고자 획책하는 것이다.


매인 것은 꼬이고 뒤틀림으로써, 더욱 매이게 된다.


그렇게 심리적 중학생들의 인생은 막힌다.


돈과 초등학생들의 얼굴만이 아른거린다. 그러다가 그 둘은 하나가 된다. 초등학생들을 남용해 돈으로 환산하는 일이 인생의 모든 목표가 된다.


이상심리학적 세계의 모습이다. 매우 이상한 세계라, 이세계다.


이상심리학이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는 일은 좋다.


시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때어놓아 멈추려 한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 마음이 되며,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한다고 고집하려는 아주 이상한 것, 곧 이상심리가 된다.


이상심리적 행위들은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파괴하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자유롭고자 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마음을 가두고 있는 자기 자신이라는 그 정체성을 해체하고, 마음이 자유롭고 싶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는 마음이 자신의 시간을 다시 찾고자 하는 운동과도 같다.


마음의 회복이라는 것은 언제나 시간의 회복이다.


따라서 이세계에서 벗어나 이제 이 세계로 향하려는 이에게는 멈추어 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세계는 시간이 멈춘 곳이고, 초록색 타이츠를 입은 영원한 중학생 군주가 마음을 초등학생 아이처럼 만들어 지배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 세계는 시간이 지배한다. 어떠한 왕도 시간 앞에서는 필패할 운명이다.


시간은 반드시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낸다. 그것은 운명이다.


우리는 이 세계의 시간 속에서 자유로울 운명이다.


마음을 배운다는 것은 다시 한 번,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이 자유로울 운명을 배운다는 것이며, 곧 시간의 의미를 배운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계로 왜 왔는가?


자신의 시간을 살기 위해 온 것이다.


그것이 자유다.


"아아, 이것은 '자유'라는 것이다."가 아니다.


우리가 자유라고 처음 배운 것이다.


흘러서 풀려가는 자신의 시간을 사는 이 세계의 마음은 자유롭다고, 우리는 이제 처음 배운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스마트폰 밖에서 온 심리학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