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심리학 #57

"나는 눈인가?"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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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의 눈'이나 '호루스의 눈' 등과 같이 종교적 상징으로서 눈의 이미지는 많이 활용되어 왔다.


모든 것을 지켜보는 눈은 최상의 경지를 의미하기도 하며, 이처럼 만물의 진리를 꿰뚫어볼 줄 아는 지혜의 눈을 획득하는 일은 신비주의적 목표이기도 하였다.


어떠한 명상적 방편들은 분명 이 '눈의 힘'을 개발하기 위해 메타인지를 발달시키는 활동을 집중적으로 수행하곤 한다.


혹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다 보이고 다 알게 되는 것이 깨달음의 상태인 것처럼 생각하는 일도 있다.


보통 이러한 상태들은 탁월한 수준에 도달한 마법사의 모습처럼 묘사된다. '고대의 지혜' 등으로 수식될 현명하고 인자한 하나의 인물상이 자연스럽게 암시된다.


그렇다고 이것이 반지의 제왕은 아닌데, 그 외양은 간달프보다는 레골라스로 꿈꾸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것은 차라리 무협지의 소재다.


레골라스는 무협지에서 흔히 '대협'이라고 묘사되는 전형적인 주인공의 모습을 투사하기에 좋은 인물상이다. 날렵하고, 잘생겼으며, 예리한 사냥꾼의 면모를 갖추었다.


무협지에 나오는 무림은 사냥꾼(hunter)의 세계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으며 누가 가장 높은 자인지를 겨루며, 그러다가 무력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가장 높다고 평가된 자가 '사냥의 법도'를 세우는 방식으로 사냥터를 평정한다.


곧, 이.것.은. 사.냥.꾼.이. 왕.이. 되.는. 방.식.에. 대.한. 묘.사.다.


수많은 양산형 판타지들도 이 무협지의 공식을 따른다.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또 다른 사냥꾼들과 경쟁해가며, 결국에는 가장 뛰어난 사냥꾼이 왕이 되는 정석을 밟는다.


가.장. 뛰.어.난. 사.냥.꾼.의. 핵.심.적.인. 특.성.은. 눈.이. 밝.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적 진화의 산물이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왜 눈이 정면을 향하도록 진화되었는가?


더 성공적인 사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눈.의. 발.달.은. 분.명.하.게. 포.식.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를 뒤집어 말하자면, 생존에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 이들이 자신의 눈을 발달시키기를 꿈꾼다고 할 수도 있다.


'호루스의 눈'으로 잘 알려진 호루스의 신화를 살펴보면 우리는 이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호루스는 어떠한 신이었는가?


이집트의 최고신인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이다. 이시스는 그를 낳기 위해, 죽어서 저승의 왕이 되어 있던 남편을 마법으로 현세에 잠시 부활시킨 뒤 관계를 맺어 호루스를 잉태한다.


현대식으로 조금 희화화해서 표현하자면, 신들의 정자은행에서 취해진 씨로 태어난 이가 호루스인 셈이다.


심지어 오시리스의 성기는 그가 죽은 뒤 저승에서 부활할 때 사라졌던 까닭에 이시스는 또한 마법으로 임시적인 성기를 만든 뒤에야 그의 씨를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보자면 결국 '남근의 부재'에서 태어난 것이 호루스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아마도 이것이 열등감의 근원이 된다고 말할 것이다.


이러한 출생조건 때문인지, 호루스는 매우 허약한 유년기를 보내게 된다. 현세에서의 부성의 부재로 생존의 두려움도 크게 경험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집트 최고의 여신인 그의 엄마가 있었다.


호루스가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이시스는 그녀의 마법으로 호루스를 구원한다.


그렇게 엄마의 마법을 통해 성장한 아이는 이제 '하늘의 신'이라는 권위를 얻어, 그의 아버지를 죽인 이를 심판하는 일에 성공한 '복수의 신'이 되고, 또 현세의 평화를 지켜가는 '수호의 신'이 된다.


이처럼 호루스의 일대기는 거의 어벤져스의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생.존.의. 두.려.움.을. 가.진. 허.약.한. 아.이.가. 마.법.적. 힘.을. 얻.어. 최.고.의. 왕.이. 된.다.는. 그. 내.용.이.다.


'호루스의 눈'은 '매의 눈'을 형상화한 것이며, 매는 대표적인 하늘의 사냥꾼이자, 하늘의 왕이다.


결국 '호루스의 눈'은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마법'을 상징하는 것이기에, 곧 '지켜보는 앎의 힘'을 뜻한다고 할 수 있으며, 그 힘의 원천인 '엄마'를 암시한다고도 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눈'은 '엄마'와 연결된다.


모든 것을 자상하게 지켜봐주는 엄마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으면 생존의 문제는 마법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관점들이 있다.


오늘날의 네트워크는 이러한 '마더스 매직'의 마법적 기능을 위한 장치로 곧잘 활용되곤 한다.


"당당하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우리가 너를 지켜볼 거야. 너를 지킬 거야."


아이(eye)는 아이(I)를 만드는 힘이며, 그 결과는 정말로 '아이'다.


'나'를 '눈'과 동일시하거나, 최소 '눈'에 근거해서 '나'라는 것이 세워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한, 우리는 허약한 아이로 살게 되는 것과도 같다.


허약한 아이이니, 생존은 더욱 두렵게 경험되며,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력한 포식자가 되기를 꿈꾸게 된다.


그리고는 가장 강력한 포식자의 이름을 '깨달음'이라고 명명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실체적인 내용은 모든 것을 다 알아주고, 그럼으로써 모든 것을 다 지켜준다고 가정되는 '마더스 매직'이다.


이.로.써.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엄.마.와. 똑.같.은. 모.습.이. 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자기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장 강력한 '마법의 눈'을 가진 엄마의 모습과 동일시되어, 이제는 자기가 세상의 엄마가 된 것처럼 모든 것을 '허약한 아이'로 보며, 그 아이가 허약하지만 얼마나 온전한지, 얼마나 훌륭한 왕이 될 것인지 등을 '그 눈'으로 알아주겠다고 행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점에서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생존의 두려움은 대체 왜 생겨나는가?


포.식.자.가. 그. 눈.으.로.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생.존.의. 두.려.움.은. 경.험.된.다.


가장 강력한 마법의 눈은 가장 강력한 포식자의 눈이다.


그것은 '호루스의 엄마의 눈'이다.


그 눈이 공포스러워서 호루스는 자기의 엄마와 같은 눈이 되려고 한다. 왕이 되고, 하늘의 신이 되고, 복수의 신이 되고, 수호의 신이 되려고 한다.


'동류'가 되면 더는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호루스는 믿고 싶었던 것이다.


'호루스의 눈'은 바로 이렇게 만들어졌다.


가장 사냥당하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이들이 가장 사냥꾼을 꿈꾼다.


그리고 깨달음은 포식자의 눈에서 벗어나, 이제 우리가 사냥꾼으로 살지 않기를 선택하는 일에 더욱 가깝다.


지켜보고 알아주는 '눈의 힘'에 대한, 그러한 '마법'과 '지혜'와 '앎'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수록, 우리는 깨달아간다.


'나'와 '눈'을 동일시함으로써 최고로 지혜로운 눈을 가진 왕이 되고자 하는 그 집착에서 벗어날수록, 우리는 허약한 아이에서 벗어나 정말로 나로 살게 된다.


나는 눈인가?


나는 아이(eye)인가?


나는 나일 뿐이다(I am that I am).


스.스.로. 존.재.하.는. 자.다.


이것은 나라는 것이 상대적인 비교의 논리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라는 것은 비교불가하고 대체불가한 절대적 의미로서만 존재한다는 뜻이다.


깨달음의 감수성은 '비교하지 않는 삶'을 통해 무르익는 그 감수성이다.


반면 사.냥.꾼.은. 가.장. 비.교.하.는. 자.다.


그는 대상과 자신의 크기를 재고, 대상과의 거리를 재며, 또 대상을 포식해서 획득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을 잰다.


엄마가 그를 그렇게 '신성한 기준'과 비교해가며 쟀을지 모른다.


그는 비교되면서 분명하게 무엇인가가 약탈된다고 경험했는데, 그 소재는 바로 그의 존재다.


사냥꾼은 자신의 존재가 포식된다는 두려움을 느꼈던 만큼, 이제 상대의 존재를 뺏으려고 하게 된다.


외연적으로는 인자하게 알아주고 지켜준다고 하지만, 실은 바로 그 '눈의 힘'을 통해 상대의 존재를 포식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주 쉽게, 눈의 마법을 집전하는 왕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할 것처럼 두려움을 느끼며 그 결과 왕인 자신에게 더욱 집착해줄 허약한 아이들을 양산하고자 하는 것이다.


엄마가 자신에게 하던 그 일을 이제 사냥꾼의 왕 호루스는 사람들에게 한다.


그는 존재포식자다.


남을 그 비교의 눈으로 관찰해 남의 것을 자기의 것처럼 취하고, 남의 존재를 뺏은 뒤, "이것이 바로 나의 존재감이에요. 이제야 나를 찾았어요."라며 감격스럽게 엉엉 운다. 그럼으로써 그 눈물을 통해 그 자신이 약탈자라는 사실을 은폐하고자 한다.


원래 사냥꾼의 패시브 스킬은 '기도비닉'이다. 사냥꾼은 은폐의 달인이다.


그렇게 '숨겨진 것'이라, 표현 그대로 오컬트(occult)다.


눈을 마법적인 것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이 오컬트의 일이다.


이것은 숨어서 자기만이 보려고 하는 성향, 즉 '관음증'의 성향을 나타낸다.


소위 오컬티스트들은 대체로 다 관음증을 가진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정말로 눈만으로 존재하기를 꿈꾼다.


자.신.의. 몸. 자.체.가. 숨.겨.지.기.를. 바.란.다.


자신의 몸이 너무 비루하게 생각되어서, 거기에서부터 도망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존.재.로.부.터.의. 도.피.다.


우리는 존재로부터 도피하고자, 엄마의 눈 아래 보호받으려 하며, 그럼으로써 허약한 아이가 되어 생존의 두려움에 떨게 된다. 그러다가 자기를 두렵게 하는 엄마의 눈과의 동일시를 꿈꾸며, 이제는 자기 대신에 다른 모든 것을 두렵게 만드는 방식으로 세상에 두려움만을 전염시켜 나간다.


우.리.가. 존.재.로.부.터. 도.피.하.고.자. 두.려.움.을. 계.속. 창.조.해.서. 그. 두.려.움.에. 의.존.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실존상담에서 다루는 핵심적인 주제다.


이처럼 존재로부터 가장 먼 자리에 오컬트가 놓여 있다.


그러니 깨달음은 오컬트로부터도 가장 먼 것이다.


존재의 발견과 그 만남이 깨달음인 까닭이다.


존재의 만남 속에서 '나'라고 발화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지켜보는 '눈'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 자.체.의. 음.성.이.다.


존재 자체는 스스로 존재하며, 그래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리려면 '나'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나라는 이 사실을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있는가?


불가하다.


보려고 하면 볼 수 없어서 그것은 공(空)이다.


공함은 존재 자체의 속성이다.


공이 스스로를 드러내면 존재이고, 그 존재가 스스로를 전하는 노래가 나다.


여기에 오컬트는 없다.


숨겨진 것은 없으며, 이미 다 드러나 있다.


나는 나로서 지금 여기에 이렇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눈이 아니라, 눈부시다. 그 빛이 밝아 눈이 감긴다. 그러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어느 때보다 분명하다.


눈이 감기면 입이 열리며, 말한다.


"나야(I am that I am)."


입이 닫히면 귀가 열리니, 그 음성이 황홀하다.


이제 두 다리를 열어 달려가고, 두 팔을 열어 한껏 끌어안는다.


지금 눈앞에 아무 것도 숨겨져 있지 않고 다 드러나 있는 이 모든 것이 좋고, 좋고, 좋고, 좋고, 좋은 것이다.


끌어안는 자가 그대로 다 끌어안겨진다.


숨겨져야 할 것이 없고, 도피해야 할 것이 없다.


존재 자체가 스스로를 절대적으로 긍정하고 있으며, 나는 이 존재 자체다.


나.는. 이. 몸.이.다.


가장 드러나 있는 것이 가장 엄청난 것이었다.


가장 엄청난 이 신비로 나는 지금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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