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밖에서 온 심리학 #20

"허허실실의 놀이"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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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삼국지나 은하영웅전설 같은 소설(초기의 제목이 '은하삼국지'였다) 등을 감명깊게 본 이들은 백성들을 부당한 독재에서 해방시켜주고 자유로운 민주주의로 이끌어가는 '천재책사'에 대한 꿈을 자주 꾸곤 한다.


물론 이러한 이들에게 민주주의라는 것이 다만 모든 백성을 자유롭게 해주는 가장 자상한 왕이 다스리는 현실에 대한 빈약한 인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차치하기로 하자. 이들에게도 민주주의 같은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만 자신이 천재책사로 보이기만 하면 된다.


우주가 자기의 손바닥 위에 펼쳐진 장기판인 것처럼, 그래서 자신이 이 세상을 생각대로 주무를 수 있는 최고의 지성인 것처럼 연기하고 싶어하는 것이 이들의 욕망이다.


쉽게 말해, 꾀돌이 제갈량 흉내를 내고 싶어하는 것이다.


오늘날 소비되는 미디어의 주인공들은 다소간에 이 천재책사의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이것이 기본이다.


- 머리가 제일 좋음(그러나 유치한 학교공부는 안함. 아마 하기만 하면 최소 하버드일걸?)


위와 같은 속성은 가장 먼저 부여되며, 그에 더해 잡다한 세부속성들이 부여된다.


일진만화에서도 주인공은 싸움을 잘하고 잘생긴 것 이전에 먼저 머리가 좋다. 그가 싸움을 못하고 외모가 별로일 때도 자기 주변의 인물들을 분석하고 통찰해낼 수 있는 지적 우월성은 항시 묘사되곤 한다.


이러한 캐릭터들이 지배적으로 소비되는 이유는 당연히 이것이 현재의 지배적인 자아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아는 욕망으로 만들어지며, 남들보다 더 빠르게 최신의 정보를 획득한 뒤 그 정보들을 요리해서 자신의 부와 명예, 그리고 권위로 교환할 수 있는 자원으로 삼고자 하는 일은 오늘날의 대표적인 욕망이다.


이처럼 책사로 기능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정보의 문제였다.


책사는 정보를 편집하고, 조작하며, 운용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책사들은 전통적으로 더 많은 정보들을 자신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동시에 상대에게 정보의 혼란을 줄 수 있는 첩자들을 무수하게 수족으로 부려왔다. 첩자들이 없으면 책사는 책사로 기능할 수 없게 되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오늘날 정보통신망의 발달은 책사 혼자서 첩보의 일까지 겸임하는 일까지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이제는 자신이 직접 남들에게서 정보를 훔치고, 훔친 정보를 요리저리 둘리처럼 가공하고 편집한 다음, 자신이 쓴 그 '소설들'을 사람들에게 직접 뿌릴 수 있기까지 하게 되었다.


이로써 누구나 자기의 말 한 마디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우주가 개벽하고, 세상이 전율하며, 사람들이 우르르 움직이고, 전황이 뒤집어지는 천재책사 놀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놀이의 가장 단순한 초기의 형태로는, 아무 것도 몰라 무지한 부모님들이 대기업 컴퓨터를 사려고 할 때 자기의 놀라운 정보운용력을 발휘하여 부품들을 사모아 조립하는 현실을 안내한 뒤 자기를 삼국지의 제갈량처럼 느낀다든가, 또는 공과금을 스마트폰으로 납부하는 놀라운 현대의 생활양식을 미개하고 어리석은 자취생 친구에게 알려준 뒤 자기를 은하영웅전설의 양웬리처럼 경험하는 일 등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천채책사들이 노는 순수하고 귀여운 놀이의 방식이다.


더 심화된 놀이로 진입하면 이제는 귀엽지 않다.


제갈량이나 양웬리 같은 인물들이 소설 속의 다른 이들에게 지칭되는 이름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사기꾼이다.


천재책사 놀이는 반드시 이 사기의 영역에까지 발을 들이게 된다.


왜일까?


가장 고위의 책사들이 가장 잘 활용하는 전법이 바로 '허허실실'이기 때문이다. 이 전법을 쓸 줄 알아야 그는 비로소 '천재책사'로 대접받게 된다.


허허실실이란 쉽게 말해, 허구와 실제를 뒤섞어 흐리는 것이다.


자신에게 그것이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냈다."라는 말로 비유되듯이, 제갈량은 이 허허실실의 달인이었던 것으로 곧잘 묘사된다. 빈 성에서 일부러 태연한 척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었더니 공격하던 사마의가 오히려 도망갔다는 소설 속 장면은 대표적이다. 이러한 제갈량에서 모티프를 얻었음이 분명한 양웬리라는 인물 또한 이 허허실실의 전법을 즐긴다.


허허실실이 상대에게 통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상대도 일정 이상의 지성을 보유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 천채책사 워너비들이 허허실실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다.


허허실실은 상대가 자기 꾀에 스스로 넘어가게 유도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꾀를 부릴 줄 아는 정도로 똑똑한 상대가 천재책사 자신이 의도한 허허실실의 전략에 당했다는 것은, 결국 똑똑한 그 상대보다도 자신이 분명하게 더 똑똑하다는 현실을 뜻하게 된다.


똑똑함들의 전쟁에서 승리해서 가장 똑똑한 이처럼 보이는 일, 이것이 천재책사들이 얻고자 하는 최고의 이득이다.


그런데 이 놀이의 주체는 똑똑함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똑똑함에 쫓기고 있는 것이다.


사기를 통해서라도 얻어야 할 정도가 되어 있는 소재는 쫓기고 있기에 강박적으로 집착되고 있는 그 소재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욕망은 실상 그것을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쫓기기에 집착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집착의 끝에 있는 것은 반드시 갈등이다.


내부에 타오르는 뜨거운 화는 옮겨 붙을 곳이 있어야만 편해지기 때문이다.


천채책사들은 언제나 우주전쟁을 꿈꾼다.


전쟁 속에서 천재책사들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천채책사를 꿈꾸는 이가 전쟁을 만드는 것이다.


전쟁터는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곳이다. 그리고 허허실실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 욕망들의 경쟁상태가 필요하다. 허허실실은 본질적으로 상대의 욕망을 더욱 자극함으로써 판단을 그르치게 만드는 전법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이들의 욕망에 불을 붙이고, 그럼으로써 개인이라는 각 우주와 우주 사이의 우주전쟁을 촉발하며, 그렇게 그 모두를 마치 자기 생각대로 조종한 것만 같은 지적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상태가 결국 이 허허실실 놀이의 최종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천재책사들은 자신이 천재여야 한다는 그 압박감과 싸우고 있는 것이며, 싸움판을 더 크게 만들어 더 많은 이가 자신들이 천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우주전쟁에 동참할 수 있도록 선동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 갈등의 양상은 분명 허구에서 비롯했다.


허구에서 태어난 것이 허구에 집착하며 허구의 전법에 능숙해진다.


무엇이 허구인가?


자신이 천재라는 그 믿음이다. 그것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이기에 계속 현실로 증명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경험하는 것이다.


집착의 소재는 언제나 자신에게 그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는 소재다.


다른 것은 갖지 못한 이가 그래도 똑똑한 지성만은 갖고 있다고 생각할 때, 똑똑함에 대한 집착은 생겨난다.


이 지점이 바로 허구가 발생한 지점이다.


그는 다른 것은 갖지 못했으니 자신에게는 지성이 있다고 다만 믿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러나 다른 것이 없다고 그 대신에 그가 자동적으로 지성을 갖고 있다는 이 믿음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가 똑똑한 지성에 집착하고 있는 현실은 다른 것뿐만 아니라 지성 또한 그 자신이 갖지 못했음을 오히려 방증해준다.


그렇게 대단히 잘생기기도 못했고, 그렇게 대단히 예쁘지도 않고, 그렇게 대단히 많은 돈도 없고, 그렇게 대단한 몸도 아니고, 거울을 보면 그렇데 대단히 혼란스럽기만 하고, 머리도 그렇게 대단히 좋지 않다.


이것은 누구인가?


그냥 인간이다.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아무리 실제적으로 가진 것이 많은 이라 하더라도, 언제나 상대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렇게 경험한다.


자신이 이렇다는 것을 이해하는 이는 그 자리에서 인간을 발견한다. 인간의 자리는 평화롭다. 민주주의를 만들어줄 자상한 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런 것이 없이 다만 인간이라서 평화롭다.


그 모든 것이 다 없으니 나에게는 대신 똑똑한 지성이 있겠구나, 하는 이는 천재책사가 되어 우주전쟁을 꿈꾼다.


'불치병에 걸렸으니 대신 예쁘겠구나.'

'성적이 나쁘니 대신 성격이 좋겠구나.'

'나이가 많으니 대신 현명하겠구나.'


이것은 자신을 '캐릭터 작법'에 맞춰 생각하는 일이 만들어낸 동일한 종류의 착각들이다. 우리가 자신의 핵심적인 특성이라고 여기는 것에 늘 쫓기며 집착하게 되는 그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이 인간임을 잊었을 때 집착이 생겨난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이해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없는데 자꾸 있는 척하려는 것'이 집착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없어져서, 정보를 운용하는 천재책사 캐릭터를 인간인 척 대신 그 자리에 앉히려고 고집하는 모습은, 분명 정보화사회가 낳은 역기능이다. 정보의 주체가 되는 일이 마치 인간조건인 것처럼 형상화된 것이다.


그러나 인간조건은 오히려 그 모든 것이 다 없다는 데에 있으며, 다시 말하면 그 모든 것이 다 아니라는 데에 있다.


정보의 주체인 천재책사여서 인간인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이 아니어서 인간이다.


그러한 것이 아니어도 인간이다.


우리가 인간에 대해 규정하려고 시도하는 그 모든 것이 다 아니고자, 인간이 매우 적극적으로 보이는 태도가 또한 '허허실실'이라는 점은 의미깊다. 물론 그 뜻이 다르다.


"없는데도 허구로 있을 수 있으며, 그렇게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이런 하나의 규정이 이루어지면 그 자리에서 인간은 '허허' 웃으며 뒤로 '실실' 빠진다.


위대한 은하함대들이 펼치는 우주삼국지의 장기판 위에서 빠지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은 천재책사다!"


이런 말을 들으면 인간은 이렇게 응답한다.


"그냥 바보일랜다."


누군가가 "인간은 바보이니 그 대신에 미지를 볼 수 있는 진짜 지혜가 있겠구나."라며 캐릭터 작법에 근거한 통합을 시도한다면 인간은 또 허허실실한다.


"인간인 너는 근데 왜 나를 미지로 안 봐?"


인간은 이처럼 '허허'하며 뒤로 '실실' 빠지는 이 존재방식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방식의 허허실실의 놀이를 즐긴다.


이 놀이의 이름은 전통적으로 '자유'라고 불린다.


자유는 집착하고 있지 않은 모습이며, 욕망에 쫓기고 있지 않은 상태의 감각이다.


무엇인가 핵심적인 것을 자신이 갖고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집착하며, 실은 아무 것도 갖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자유롭다.


그리고 이 자유의 사실을 누리는 이가 있다면 분명 이러한 말을 할 수 있다.


"인간은 규정될 수 없다면서 왜 나를 천재책사라고 규정해?"


그러한 이는 천재책사의 뒤로 '허허실실' 빠질 것이다. 허허실실의 전법을 쓰는 천재책사가 아니라, 천재책사로부터 자유롭도록 허허실실의 본성이 쓰일 것이다.


당신이 이겼고, 우리도 같이 이겼다.


은하함대들이 다 침몰해 우주는 이제 평화롭고, 한없이 자유롭다.


이것이 아무 것도 갖지 않은 인간이 모든 것이 있는 우주에서 언제나 해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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