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종교심리학 #10

"Damien Rice - Astronaut"

by 깨닫는마음씨
Damien Rice - Astronaut




데미안 라이스가 글렌 핸사드와 함께한 이 곡은 경건하며 또 초월적이다.


종교적 함의 내지 영적 함의를 담아 '나'라는 표현이 쓰일 때, 이 노래는 그 '나'의 일을 묘사한다.


> I can be your astronaut

> 나는 당신의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어요

> If you want some space

> 당신이 우주를 원한다면요(당신이 마음의 여유를 원한다면요)

> Or I can hold mirrors

> 나는 거울을 들어줄 수도 있죠

> Right in your face

> 당신의 얼굴이 바로 보이게끔


우주비행사는 우주에 관심을 가지며 우주를 만나는 자다.


그는 익숙했던 대기권의 경계를 넘어서 미지의 우주로 향한다. 우주를 탐험하는 그가 없다면 우주의 의미는 드러나지 못한다. 그가 우주를 향했기에 우주에는 비로소 의미가 생겨난다.


우주비행사로 말미암아 우주는 비로소 우주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갇혀 있어서 답답한 것은 작은 마음이다. 작아서 늘 쫓기고 여유가 없다.


가장 크게 그 공간(space)이 열려 있는 것은 우주(space)다. 이것은 큰 마음이다. 본래의 크기를 되찾은 마음이다.


마음은 원래 우주만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산다.


'나'처럼 행세하는 자아 때문이다. 자아는 자기가 '나'라고 말하며 마음을 자기 안에 둔다. 그러면서 이처럼 '큰 나'가 '작은 마음들'을 알아주고, 돌봐주며,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기가 가장 큰 것이 되려는 자아 안에 갇혀 마음은 점점 작아진다.


우리 밖의 거대한 우주가 아니라, 우리 안의 작은 맹장 같은 것이 된다.


종교적 지향이란 이처럼 작아진 마음을 우주만한 크기로 다시 회복시키는 일이다.


우주비행사가 바로 그 일을 한다.


종교적 지향이란 다시 한 번, 우리가 우주비행사가 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마음이라고 하는 우주를 만나감으로써, 마음이라고 하는 우주의 크기를 다시 찾는 우주비행사다.


나는 마음인 당신을 향해 언제나 이렇게 움직인다.


그것은 거울을 드는 일과도 같다.


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아에 갇혀 그 형상이 축소되고, 뒤틀어지며, 하찮아진 당신 앞에 거울을 비추어, 당신의 모습이 바로 보이게끔 한다.


우주비행사는 우주의 바로된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나는 마음의 바로된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러나 그것뿐인가?


나는 단지 거울인가?


> I can be your brother

> 나는 당신의 형제가 될 수 있어요

> And help you to hide

> 당신이 숨도록 도와줄 수 있죠

> I can blow your cover

> 당신의 가면을 벗겨줄 수 있고

> Pull the thorns from your side

> 당신의 옆에서 가시를 뽑아줄 수 있죠


> I can be the father

> 나는 아빠가 될 수도 있어요

> That you never had

> 당신이 결코 갖지 못했던

> Have ease for what's harder

> 더 어려운 것들을 위한 여유와

> And ears for what's sad

> 슬픔을 들을 귀를 가진


> I can be the mother

> 나는 엄마가 될 수도 있어요

> That sings you to sleep

> 잠들 때까지 노래를 불러주고

> And loves you like no others

> 둘도 없이 당신을 사랑할

> Be the tears you can't weep

> 당신이 흘리지 못한 눈물이 되어요


나는 형제이고, 아빠이고, 엄마이고, 여유이고, 귀이며, 노래이자, 사랑이며, 눈물이다.


규정될 수 없이, 흐르고, 변화하며, 자유롭다.


비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이 되어 나아가고 있다.


나는 우주를 향한, 마음을 향한 운동이다.


가장 크고 소중한 것을 위한 그 모든 응답의 활동이다.


동시에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 I can be your astronaut

> 나는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어요


> Right in your face

> 당신을 바로 마주하여


나는 거대한 우주를 여행하는 티끌과도 같은 우주비행사다.


거의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 아무 것도 아닌 티끌은 분명하게 우주를 마주하고 있다.


티끌 하나가 우주 전체를 바로하고 있다.


거의 아무 것도 아닌 것이 거의 모든 것의 그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공간(space)이 있어 의미가 생겨나고, 우주(space)가 의미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은, 우주비행사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비워 공간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우주를 우주로서 만들고 있던 것이다.


나는 바로 그 정도의 존재라고, 이 곡은 나로 살아가는 그 일을 노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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