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무적함대 VS 다국적연합군

뿌엔떼 라 레이나 - 에스떼야

by 외투



"안녕, 상한"

뤼노의 아침인사. 그리고 이어지는

"배드 필그림"

에이~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네. 재미없어.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고 핀잔을 준다. 오늘은 8시가 넘어 일어났다.

알베르게에서는 대개 밤 10시를 전후로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거의 10시간을 잔 셈이다.

늦게 일어나기는 했지만 잠에서 깨어난 시각은 훨씬 전이다.

눈을 뜬 채로 누운 채로 주위를 살펴보면 먼저 일어난 몇몇 순례자들이 다른 이들이 깰까 봐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세면을 하고 소리 죽여 배낭을 꾸린다. 그러면 나는 '일어날까 말까' 고민하면서 뜸을 들였다.

사람들 사이에 암묵적인 '기상'이 합의되고 용기 있는 누군가가 숙소의 불을 켜면 본격적인 '아침'이 시작되는데 나는 거기서 좀 더 침낭 속에서 뭉기적거렸다. 주도하기보다 편승하는 편이다.


그런데 사실 뤼노의 핀잔은 재미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뜩이나 몸도 피곤한 데다 정신도 감정도 덜 깨어 많이 가라앉게 되었지만, 가벼운 농담으로 금방 기분이 환기된다.

날씨부터 살피러 밖으로 나갔다.

비가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지만 그냥 아침에 일어나면 살폈다.

가랑비.

침낭을 개고 배낭을 꾸린 후 알베르게를 나왔다.


알래시오도 짐을 모두 꾸리고 나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수레를 한번 끌어보았더니 25kg 은 만만치 않은 무게였고 외발이라 중심잡기도 쉽지 않았다.

이걸 끌고 산도 넘었을 텐데.

알래시오는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길이었으므로 우리와는 반대방향으로 출발했다.

남은 일정도 무사히 마치기를....

"부엔 까미노!"

"차오!"

'차오'는 이탈리아 말로 '안녕'이다.



멀어져 가는 알레시오의 모습이 꿋꿋해 보이는 한편으로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혼자서 그 먼길을 걷는 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수많은 날들을 길 위에서 보냈을 테지만 혼자라는 것에 익숙해 보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자꾸만 가까이 다가오는 고향을 멀리 밀어 두고 길 위의 나날들을 연장시키고 싶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지나가는 자동차들 때문에 두리번거리며 수레를 끌고 가는 알레시오의 모습이, 이제 겨우 걷기 시작한 지 5일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 섣불리 그렇게 추측하게 만들었다.

내게 남은 40여 일이 짧게 느껴졌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문을 연 바르에 뤼노와 들어갔다.

어제는 보이지 않던 마을 사람들이 아침을 먹으며 신문을 보고 있었다.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 점심을 위한 빵을 사서 나누었다.


'왕비의 다리(뿌엔떼 라 레이나)'는 마을을 벗어나기 전 나타났다.



다리는 남성적으로 보였다.

'공주 다리' 아닌 게 그나마 다행(사실은 왕비가 하사한 다리란다).

돌로 지어져 그런지 대개의 오래된 다리들이 차가 지나갈 정도로 지금껏 튼튼했다.

다리를 건너서 뤼노는 '먼저 갈게, 부엔 까미노' 하며 앞서갔다.


호젓한 시골길을 걸었다.

음악을 들으며 선선한 바람에 가랑비가 흩날리는 호젓한 시골길을 걷고 있노라니 기분이 상쾌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 앞날에 대한 걱정이 슬그머니 끼어들었지만 그 순간이 아까웠다.



인적 없는 작은 마을의 쉼터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쉬었다.

집집마다 창문들의 셔터가 내려져있는 마을이 고즈넉하다 못해 적막했다.


적당히 흐린 하늘과 선명한 시야... 가끔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만 아니라면, 어쩜 그렇게 인적이 없는지 약간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영화 '인셉션'에서의 텅 빈 도시처럼, 텅 빈 마을이 꿈같았다.

꿈이지, 내가 유럽에 와있다니...

그렇게 한참을 쉬는데 꼬마가 지나갔다.

대여섯 살쯤 되었을까, 남자아이 혼자 걸어가는 게 정적과 고요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배낭을 내려놓는 것에도 약간의 작심이 필요하다.

내려놓기도 여간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신발도 벗어놓고 맨발로 서성거렸다.

가벼운 몸으로 걸으니 단단한 돌로 만들어진 바닥의 느낌이 신선했다.



길은 작은 골목을 돌아가더니 '집안' 같은 통로로 이어졌다.

살짝 남의 집 마당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었다.

골목을 따라 걷기도 재미있다.



사람이 많은 여름엔 한낮의 더위와 알베르게의 침대 쟁탈전 때문에 새벽부터 걷기 시작한다지만 늦가을의 까미노에서는 원하는 곳에서 머물 수 있었고 마음에 드는 침대를 골라 잡을 수도 있었다.

비를 싫어한다면 모를까 종종 내리는 비도 상쾌했다.

몇 번을 제외하곤, 많은 비가 아니라 보슬보슬 봄비나 추적추적 가을비가 상쾌함을 더했다.

하지만 매년 그때그때 다르다고 한다.

어떤 이는 비 한번 안 왔다고 하기도 하고 , 어떤 이는 걷는 내내 비가 왔다고도 했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심심할 수도 있겠지만 마을에 열린 한두 개의 알베르게에 가면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있다.



교회가 있어 들어가 보려다 잠긴 것 같아 겉만 둘러보고 걸었다.

마을마다 있는 교회는 모두 돌로 지어진 오래된 것들이다.

어디 교회뿐인가. 건물과 마을 자체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유적급들이다.


어디 있다가 튀어나왔는지 뒤에서 뤼노가 불렀다.

"안녕 상한-"

좀 전의 그 교회에서 머물렀단다. 닫혔는 줄 알았는데.

아침부터 뤼노는 한참 앞서갔었던 터라, 교회에서 꽤 오래 머물렀겠다.


걷다가 길이 조금 헷갈렸는데 마침 순례자로 보이는 이가 있어 뤼노가 길을 물어보았다.

그 사람은 몇 년째 이 길을 왔다 갔다 하는 중이라고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보니 텐트가 있었다.

개 한 마리와 함께 까미노를 몇 년째 걷는 중이란다.

뤼노와 노숙자.. 아니 순례자와의 대화는 순전히 스페인어로 이루어졌으므로 나중에 뤼노가 내게 설명해준 내용이었다.

뤼노는 이해가 안 된다며 '미쳤지(크레이지)....' 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까미노를 여러 번 찾는다며 '너도 다시 오게 될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일단 한번 걸어보고....


뤼노는 싼티아고까지 가본 적은 없다고 했다.

나야 머나먼 이곳 유럽까지 왔으니 기필코 산티아고까지 갈 작정이었지만 뤼노는 이번 까미노도 언제, 어디까지 갈지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깊게 얘기하지 않았지만 여자 친구와 문제가 있다고 했다.

내 휴대폰을 빌려가 확인하는 것도 여자 친구로부터의 메일이었다.

그 문제가 해결되면 까미노를 끝내고 돌아갈 것이란다.


에스떼야에 전날 비가 많이 왔는지 불어난 강물이 거세게 흘렀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문 앞에 반가운 개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은근히 다가와 아는 척도 한다.

"올라, 깨딸? (안녕, 어때?)"

"부엔"

바로 스페인 커플이었는데 개 때문에 이곳에 묵을 수 없어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고민 중이란다.

그때 멀리서 걸어오던 한 아주머니가 개를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을 쳤다. 개를 감싸 안으며 괜찮다고 하자 아줌마는 조심조심 경계태세를 풀지 않고 피해갔다.

결국 스페인 커플은 다음 마을까지 가보기로 하고 떠났다.

스페인 커플은 한국인(개를 먹는)인 내 곁에 개가 있어도 전혀 염려하지 않았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게 느릿느릿 다가와 킁킁거리며 내 주위를 밍기적거리던 그 느낌이 무척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에스떼야의 무니시팔 알베르게는, 들어가서 왼편으로 몇 계단을 넘어가면 주방이 있고

오른편 계단으로 2층을 오르면 도미토리룸이 있었다.

오늘도 내 자리는 뤼노의 2층. 침실은 침대가 좀 붙어있어 좁은듯한 인상을 주었지만 주방이 아늑해서 그런지 알베르게가 포근한 느낌이었다.



스페인 무적함대 vs 다국적 연합군


오늘은 까미노를 시작한 뒤로 처음으로 스페인 사람들이 많았다.

'올라, 깨딸?' 하며 인사를 나눴다.

스페인 그룹에는 '베아'라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생긴 것만큼이나 쌀쌀맞았다.

프랑스 사람인데다가 스페인어까지 잘하는 뤼노에게는 거의 '오올라아앙~'수준이었는데, 내게는 '올라' 도 아닌 그저 '올ㄹ...' 하고 만다.

이런 싸가지가.. 차별도 어느 정도껏 해야지 '오올라아앙'과 '올ㄹ' 이라니..

한국인에게 무슨 안 좋은 감정이 있는지, 스페인어를 몰라서였는지, 아니면 한국인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있는 데다 스페인어를 몰라서였는지 너무 노골적인 차별이었다.


베아를 제외하면 모두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아랫입술에 고리를 낀 남자애도 있네. 이름은 요한이다.

그 외에도 '후안호'가 둘 있고.. 모두 여섯이었는데 이름이 헷갈렸다.

베아와 요한은 20대 중반 정도, 그리고 30대 1명, 50대 3명이었다.

이름을 알려줬더니 나더러 '산후안' 이란다.

이제 '상한'이 '산후안'이 되었다.


사무엘과 독일 부부도 먼저 와 있었는데 독일 아줌마는 침대 매트리스를 바닥에 깔고 누워 쉬고 있었다.

이제야 독일 부부와 정식 인사를 나눴다.

씨그릿 부인과 오바츠 아저씨.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이번에는 부르고스까지 걷고, 다음에 다시 부르고스부터 걸을 계획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사진을 보니 피레네부터 계속 마주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뤼노가 '밥'얘기를 꺼냈고 사무엘이나 독일 부부에게 아시아식 '쌀밥'은 색다른 별미라 메뉴 정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토마토참치 덮밥'.

어째 한국에서보다 밥을 더 먹는 것 같았다.

덕분에 밥 짓는 실력만 나날이 늘고 있었다. 집에서도 안 하던 밥인데.. 엄마 미안.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았지만 다행히 열린 가게가 하나 있었다.

사무엘은 와인을 골랐다.

'no vino, no camino.'

약간 혀 짧은 소리로 리드미컬하게, 장난스럽게 말하는 게 재미있나 보다. '노비노 노까미노~'

'와인 빠진 까미노는 까미노가 아니야'

'스파게티 소스' 가 아닌 토마토만 갈아 만든 것으로 보이는, 팩에 든 것을 담았다.

독일 아저씨 오바츠는 맥주를 골랐고,

나는 마늘이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집어 들었다.


이곳 스페인에서는 대부분이 우리와 다르게 가스레인지가 아닌 전기레인지를 사용했다.

화재위험은 적을 것 같은데 전기세는 많이 나오겠다.

소스는 씨그릿이 만들었다.

토마토 팩을 뜯어 냄비에 넣어 데우고 참치캔은 미리 따서 기름을 뺐다.

'토마토소스에 마늘을 넣을까요?' 했더니 씨그릿이 좋단다. 단, 요리가 끝나고 불 끄기 바로 전에.

그래야 마늘향을 살릴 수 있단다.

마늘을 다졌다.

'음 마늘냄새 좋아- 음 스맬-' 씨그릿이 좋아했다.

생각보다 많은 유럽인들은 마늘을 좋아했다.

내가 쌀을 냄비에 넣고 물을 넣어 레인지 위에 올리는 것을 씨그릿이 유심히 보더니 '밥에 소금을 넣을까?' 하길래 '노'라고 했다.


씨그릿표 토마토 참치 소스는 그야말로 '판타스틱' 했고 밥도 제대로 지어졌다.

'그레이트', '퍼펙트'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뤼노도 그렇고 사무엘과 씨그릿도 소금을 자주 뿌려 먹었다.

사무엘이 그랬다.

유럽의 음식에는 나트륨이 부족하다고. 그러면서 동양 음식은 나트륨이 풍부하다나..

그런가? 나는 금시초문인걸, 나트륨 과다 섭취는 알겠는데.

마늘을 얇게 저며 밥 위에 얹어 먹어보았다. 그 맛도 좋았는데 뤼노도 따라서 잘 먹었다.

시원한 맥주와 와인도 좋다.

옆자리의 스페인 그룹도 한상 거나하게 차려 먹고 있었다.

우리를 보며 "부엔 쁘로배쵸!" 했다.

뤼노가 '맛있게 드세요'라는 스페인 인사라고.

독일 아줌마 씨그릿이 '쵸' 발음을 잘 못하자 후안호가 일어나 '차차차'를 추면서 "차차차 쵸쵸쵸" 하며 발음을 알려주었다.

유쾌했다.

뤼노가 '스페인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수다 떠는 걸 좋아한다'며 잘 보라고 했다.

과연 우리네의 식탁과 비슷하게 시끌벅쩍했다.

한 스페인 아저씨가 가죽 주머니에 담긴 와인을, 마치 입에 대고 물총을 쏘듯이 와인을 마셨다.

'죠셉'이라고 했는데 참 순박하게 생긴 아저씨다.

커다란 식탁을 반으로 나눠 한쪽은 6명의 '스페인 무적함대' 가, 다른 한쪽은 프랑스 용병, 스위스 아미, 독일병정들과 한국 방위로 구성된 '다국적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서로 대치.. 하지는 않고 서로 음식을 나눴다.

.. 따.. 또.. 깨.. 뽀.. 하는 스페인말이 귀엽게 들렸다.


방명록에는 한글이 많이 보였는데 꼭 하루 이틀 차이로 나와 떨어져 있었다.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는 씨그릿을 보니 한국 생각이 조금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