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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투 Dec 26. 2020

12월의 대만 #5

언제나 몇 번이라도..?


'예스진지'라고, 대만 여행을 검색하면 꼭 나오는 관광지가 있다.

예류 지질공원, 스펀, 진과스, 지우펀 이렇게 네 곳.

유명한 관광지의 머릿글자만 따온 것인데 보통 하루에 둘러보는 버스투어나 택시투어를 이용한단다.

후기들을 보면 하루에 전부 둘러보는 일정이 빠듯해서 피곤한 투어였다는 게 대부분이었다.

마음에 드는 장소에서 더 머무를 수도 또, 내키지 않는 장소를 건너뛸 수도 없는 패키지보다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여유 있게 가능한 곳만 방문하기로 했다.


지우펀이 일 순위였다.

너무나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으로 알려진 곳이다.

사람들로 가득해 '지옥펀'으로도 불린다지만 '북적거림'은 애니메이션과 잘 어우러진다.

한적한 지우펀도 좋겠지만 시끌벅적한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지우펀으로 가려면 타이베이 메인 역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아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지우펀에서 내리면 아래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산동네.



본격적으로 지우펀 속으로 들어가면 냄새가 진해진다.



조린 간장에 향수를 섞은 듯한 냄새가 진득하게 온몸에 스며든다.

가뜩이나 좁은 골목에, 밀집해 있는 음식점에서 흘러나온 냄새가 공간을 채우고 사람 물결을 타고 부유했다.



정말 '센과 치히로...'에 영감을 준 공간인지, 아니면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홍보효과인지 모르겠지만

대만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거의 거쳐가는 필수코스 중 하나일 것 같다.

휴가철이나 여행 성수기라면 바로 지옥펀이다.


대만 여행을 오기 전날부터 시작된 배탈 후유증으로 함부로 음식을 사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토마토 소고기 국수와 동파육 덮밥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었다.

골목에는 많은 음식점과 먹을 것들이 있었지만, 그래서 파인애플 주스만 홀짝일 수밖에 없었다.


좁고 북적이는 골목, 조금 허한 속으로 걷고 있으려니

센과 치히로의 주제곡 '언제나 몇 번이라도'가 오카리나 소리로 들려왔다.

그래, 여기에서는 아무거나 먹었다가는 돼지로 변할 수도 있겠다.


골목 속으로 들어갈수록 연주 소리는 선명해졌고 그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오카리나 소리는 당연하게도 오카리나 가게에서 흘러나왔다. 

게다가 라이브.

오카리나 연주를 하다가 가게를 열게 되었는지,

오카리나를 팔다가 연주를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약간 기계적이었고 그렇다고 마냥 인간미가 없지는 않은 톤으로, 일을 하는 중간중간 귀에 익은 곡들을 불고 있었다.

작디작은 오카리나에서 나오는 소리가 영롱했다.


열심히 연습한다고 해도 쉽지 않아 보였고, 그래서 그의 오카리나는 '특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가 불고 있는 오카리나도 가게에 진열된 여느 것들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카들 것으로 두 개를 고심해서 골랐다.

'센과 치히로...'에서 나오지도 않는 오카리나(대만 정통 악기도 아닌)를 구입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지우펀에서 오카리나를 사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지우펀엔 홍등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골목과 계단이 뒤섞인 공간에 주렁주렁 걸려있는 홍등이 이 곳의 분위기를 가라앉지 않게 해 주었다.

'센과 치히로...'에서는 커다란 온천 여관이었으나 이곳은 찻집.

홍등으로 장식된 커다란 찻집.

예약까지 해서 차를 마신다는 곳이었지만 사람도 많았고 차를 마시고 싶지도 않아 밖에서 구경만 했다.

비슷하다는 느낌이 어렴풋하게 있기는 한데 뭔가 '딸깍'하고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정말 미야자키 하야오가 영감을 받아 간 곳일까?



지우펀이란 공간은 일상이 이루어지는 마을인지 아니면 작은 테마파크인지 헷갈린다.

거주민은 없고 상점과 관광객들만 가득한 특이한 곳이다.


불과 1년 전인데, 과연 저렇게 복잡한 곳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자유롭게 부대낄 수 있는 그날이 돌아오기나 할까.

돌아온다면 언제나 몇 번이라도 대환영. 

언제나 몇 번이라도..?.. 아니.. 한 번 정도...

홍등이 불 밝히는 밤이라면 한번 가보고 싶다.




지우펀이 북적거리기만 하는 건 아니다.

패키지에 합류했으면 몰라도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조용한 골목길이 나온다.

적당히 오래된 집들 사이로 나있는 깨끗한 골목길.

산동네라 길을 잘못 들면 카페나 주택의 옥상에 발걸음이 멈춰지기도.

넓지 않은 곳이라 냉탕과 열탕을 오가듯 선명한 온도차를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비 온다더니 안 오네.

우산 한번 써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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