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마이 게스트

만실라 데 라스 뮬라스 - 레온

by 외투



여전히 베드벅에 물린 상처는 가렵기를 반복했고, 어제보다 더 늘어난 것 같았다.


헤수스가 한 사람씩 안아주고 먼저 출발했다.

안는 게 쑥스럽기는 한데 나쁘지는 않았다.

덩치 큰 헤수스가 조금 위축되어 보였다.

그렇게 분위기도 잘 띄우고 맛있는 요리도 해주었었는데..

"살루트"

건강하기를..

한 사람씩 빠져나갈 때마다 그만큼씩 허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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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티쳐 헤럴드가 아침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곳 만실라의 지명에 붙어 있는 '뮬라스' 가 '호오스'와 '동키'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란다.

노새.

잘하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노새도, 늑대처럼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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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앉아 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죠셉의 발목이 완전히 회복되었나 보다.

오늘부터는 호세가 없으니 헤럴드도 다시 혼자.

헤수스의 걱정해주는 전화도 없는데.. 그래도 잘 걷겠지. 내 갈길이나 열심히 가자.


얼마 더 가니 작은 쉼터가 나왔다.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쉬자.

의외로 배낭 내려놓기가 귀찮다.

그냥 배낭을 멘 채로 쉴 때가 많아 일부러 배낭을 내려놓는 습관을 들여야 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스트레칭도 하고 팔 굽혀 펴기도 하면서 몸을 풀었다.

물집은 없어지거나 굳은살로 변했는데 어깨는 나아지지 않는다.

자주 풀어주는 수밖에.

어제 알베르게에서 눈인사만 주고받았던 코넬이 지나가길래 통성명을 했다.

코넬은 스위스인.

스위스?!

'너도 (누구처럼) 스위스부터 걸어온 거야?' 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크레이지!

툭하면 집에서부터 시작이네.

스위스에서는 '집부터 까미노' 가 유행이라도 되는 건가.

그럼 사무엘도 알아? 밥도둑 사무엘.

안다고 했으며 같이 걷기도 했단다.

코넬도 사무엘이 '로꼬 뻬레그리노(미친 순례자)' 라는데 동의한다.

사무엘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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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렌떼마을을 지나 멀리 로버트(미국)가 보였다.

엘 부르고 라네로에서 처음 만난 로버트는 아침에 나보다 한참 먼저 출발했는데 금세 따라 잡혔다.

그렇다고 내 속도가 그렇게 빠른 건 아니다.

시속 3~4k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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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가 크다.. 기 보다는 비만인 로버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아주 느리게 걸었다.

'그 걸음으로 어떻게, 얼마나 걸려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버트의 파란만장한 결혼사는 우리들을 모두 놀라게 했는데,

까미노에서 만난 여자 친구와 약혼을 했다가 다시 파혼을 하고, 13년 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결국 싼티아고의 작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단다.

그리고 지금은 아내를 두고 혼자 다시 까미노에 왔단다.

까미노에 다시 보내준 아내를 둬서 정말 좋겠다고 하니

지금쯤 아내가 더 좋아하고 있을 것이라고.

철부지 남편으로부터 해방되었으니..


가볍게 로버트를 추월해서 30분쯤 더 걸으니 레온이 보였다.

상당히 큰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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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초입의 투표소에 사람들이 보인다.

겨우 몇몇 보이는 정도.

우리와는 다르게 일요일이 투표일이다.

하긴, 토요일 일요일 쉬고 투표일도 임시공휴일로 하면 언제 일할까.

또 일요일에 투표를 하니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겠다.(아닌가? 다 놀러 가려나..)

우리는 임시공휴일로 지정했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 투표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투표를 하고 출근해야 했었다.


다시 D와 만났다.

레온에 들어서며 우리는 알베르게를 찾기 시작했다.

무니시팔 알베르게는 도시의 초입에 있다고 D의 책자에 나와 있었다.

D가 없었다면 무니시팔 알베르게를 지나쳐 대성당까지 갔을 것이다.

다행히 많이 헤매지 않고 찾았다.

꽤 큰, 관공서 건물 같았고 방도 많았다.

들어서니 마당에서 뤼노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가 길어져 D와 먼저 올라갔다.



맛있는 식사~


레온에 왔다.

건조기가 있는 알베르게가 있는 레온에.

베드벅, 니넨 이제 죽었다.

베드벅소탕작전도 식후경이라고 허기부터 채우려 주방으로 갔다.(더 가려워봐야..)

이곳엔 전자레인지 밖에 없다.

D와 간단하게 간식을 먹었다.

곧 도착한 홀리안과 죠셉도 옆자리에 앉아 간식을 먹는데

나도 모르게 '부엔 쁘로배쵸-!'라는 말이 나왔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런 말이 나와서 나도 놀랬지만 죠셉이 더 놀랬다.

스페인에서는 타인이 식사를 하면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이렇게 인사를 건네는데,

이들과 어울려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훈련이 되었나 보다.

'식사를 하는 사람을 보면'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면 '부엔 쁘로배쵸 라고 할 것'이라는 조건반사 훈련.

죠셉과 홀리안이 나의 너무나 자연스런 스페인식 인사에 놀라며 물었다.

'산후안, 아주 잘하는데, 고마워. 한국말로 부엔 쁘로배쵸가 뭐야?'

'음.. 맛있는 식사?'

발음이 어렵다면서도 애써 '맛있는 식사! '라고 했다.

간식을 맛있게 먹었다.


드디어 베드벅을 때려잡을, 아니 말려 잡을 시간이 되었다.

배낭을 꾸릴 때 김장비닐로 한번 감쌌기에 배낭은 그냥 잘 털기로 하고

나와 D의 모든 옷가지 및 침낭을 두 번에 나누어 건조시키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건조기로 기어들어가고 싶었지만..

먼저 갈아입을 옷과 침낭을 넣고 건조기를 돌렸다.

건조기에서 막 꺼낸 따끈하고 바싹 마른 옷을 가지고 샤워실로 갔다.

몸을 건조시킬수는 없었지만 샤워는 실컷 할 수 있었다.

넓은 샤워실을 통째로 전세 내어 그야말로 뜨거운 물을 물쓰듯하며 온몸을 살균하듯 닦았다.

샤워 후에 건조기로 말린 옷으로 갈아입은 후 샤워 전에 벗은 옷과 나머지를 건조기에 넣었다.

벼룩 하나 잡으려고 초가산간을 다 태운다더니, 이런 내가 완전 그 꼴이다.

아직 상처는 가렵기를 반복했지만 마음이 안정되었다.

기분까지 볕에 말린 듯 상쾌하고 뽀송뽀송한 느낌이다.

그런데 그만 싸구려 비니루몸빼가 고온에서 탔는지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냄새가 심했는데도 D는 불평은커녕 티도 내지 않았다.

정말 민폐도 여러 가지 한다.

베드벅을 옮기더니(확실하지는 않지만), 옷가지에 고약한 냄새까지 옮겼다.

그래도 53,000년 묵은 체증이 싹 날아간 느낌이었다.

'노 모아 베드벅'을 바라며 베드에 누웠다.

어제 만실라에서 베드벅을 건조기로 박멸할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바로 차를 타고 이곳 레온으로 왔으면 하루 덜 고생하는 건데..

채 20km도 안 되는 거리니까 30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였는데,

그걸 굳이 가려움을 참아가며 꾸역꾸역 걸어서 왔다.

참 미련하기도 하지.


뒤늦게 올라온 뤼노가 까미노를 오늘로 끝내야 할 것 단다.

더 이상 여자 친구를 혼자 둘 수는 없다며

내일 여자 친구가 있는 바르셀로나로 돌아가겠단다.

갑작스럽다.

중간에 돌아갈 걸 알기는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함께 걷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었는데..

'그래? 결정 잘했어.

후회하더라도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아?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미련만 남을 거야.'

남 얘기라고 막 한다. 지는 그렇게 못하면서.

뤼노도 말로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지만 여전히 자신 없어하는 모습이다.

여자 친구와의 결혼을 결정하지는 못했지만 돌아가기로 했다.

이제 내일이면 뤼노도 떠난다.

첫날 바욘부터 함께했던 뤼노.

나의 길동무이자 가이드였던 뤼노. 덕분에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걸을 수 있었다.

다른 외국인들과도 뤼노 덕분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길거리에서의 식사도 떳떳할 수 있었다.

가끔 개인적인 행동과 짠돌이 짓에 짜증도 났지만,

뤼노가 짜증냈을 법한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다툼 없이 18일간 함께한 나의 호스트, 나의 게스트, 나의 친구.

이제 메뉴 델 디아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나는 뤼노에게 어떤 길동무였을까.

D, 뤼노와 함께 성당으로 향했다.

뤼노와의 마지막 저녁이니 신세도 갚아야겠다는 마음에 '오늘은 내가 쏘리라' 마음먹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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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성당까지는 10~20분이 걸렸다.

길은 몰랐지만 조금씩 보이는 성당의 첨탑을 좇아 레온의 골목길을 걸었다.

레온 성당은 웅장했다.

부르고스 대성당이 '넓은' 느낌이라면 레온 대성당은 '높은' 느낌이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거리도 사람들로 넘쳐났다.

성당을 둘러보고 미사에 참석했다.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자리가 꽉 찼고 단상이 보이지 않는 신도들을 위해 대형 모니터까지 설치해 놓았다.

미사를 핑계로 관광하는 구경꾼이었지만 잠깐 뤼노를 위해 기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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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아 마이 게스트


뤼노가 미사를 마치고 죠셉과 홀리안, 그리고 로버트를 만나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한다.

조촐한 저녁을 먹고 싶었는데, 뤼노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하긴 나만의 '뤼노'가 아니다.

홀리안이 앞장섰다.

과연 홀리안이다.

큰소리와는 다르게 30분 가까이 레온 시내를 헤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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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안뒤를 따라다니기를 30여분쯤 되었을까,

일행은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냥 아무 데나 가서 먹지..'

결국 원위치로 돌아와 성당 근처의 케밥집에 들어갔다.

D에 따르면 케밥도 괜찮단다. 한국사람 입맛에 잘 맞고.

같은 메뉴의 케밥을 취향에 따라 플라토(접시)나 햄버거처럼 빵 사이에 넣어 먹는

'도너'식으로 시킬 수 있었는데 모두 '도너'로 주문했다.

처음 먹어보는 케밥은 정말 맛있었다.

따뜻한 빵 사이에 잘게 썬 닭고기와 채소, 그리고 소스를 넣어 먹는 케밥이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곁들인 감자튀김과 콜라가 환상의 조합을 이룬다.

콜라는 또 얼마만인가. 온몸이 빨아들이는 느낌이다.

유럽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케밥이 왜 한국에선 눈에 띄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날부터 마땅히 만만하게 먹을 게 없을 때 케밥집이 눈에 띄면 찾아 들어갔고

나중엔 케밥을 부러 찾을 정도가 되었다.

맛있게 먹고 계산을 하려 모두들 지갑을 뒤적인다.

뤼노도 지갑을 열길래 내가 내겠다고 하니까 왜 그러냐고 한다.

작은 소리로

"유아 마이 게스트"

그제야 웃는다.

두배로 갚아주지 못해 미안했다.

케밥집을 나와서 바르로 갔다.

발 디딜 틈 없는 바르에서 맥주 한잔.


알베르게로 돌아오는 길에 홀리안이 담배를 말았다.

담배종이를 펴고 그위에 담뱃잎을 적당히 깔고 끝에 필터를 놓고 말아서 침을 발라 마무리.

흥미 있게 바라보니 홀리안이 '한대 펴볼래' 한다.

담배는 못 피우지만 받아 들고 입담배를 뻐끔거렸다.

홀리안이 좋아한다.

담배 맛은 쓰다.

마지막으로 뤼노와 함께 사진 한방.

카메라 없이 온 뤼노였기에 나에게 메일로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그걸 부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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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에 도착하니 10시가 막 넘었다.

문 닫는 시간이 10시지만 이곳 알베르게는 초인종을 누르면 24시간 언제든지 문을 열어 준다.

베드벅과의 전쟁으로 침낭은 더없이 포근했지만 심란하다.

뤼노가 없는 까미노..

또 다른 까미노를 앞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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