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날 부를때

포르토마린 - 까사노바

by 외투



일어나 침대에 앉아 있는데 건너편 침대 밑으로 노리꼬가 고개를 내밀고 인사를 한다.

"산후안, 부에노스 디아스?"

상쾌한 아침이다.

2층 침대에서 내려오니 아래층의 에이먼(아일랜드)도 인사를 건넸다.

에이먼은 벌써 배낭을 메고 있었는데 대충

'굿모닝, 나는 에이먼이라고 하는데 만나서 반가워.'

이런 인사였다.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에이먼의 인사는 달랐다.

50대 후반 정도의 백발인 에이먼은 아주 온화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초면인 내게 다가왔다.

낯선 곳에서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큰 힘이 된다.


알베르게에는 아가도 있었다.




어쩜 그렇게 투정도 부리지 않고 잘 잤는지 간밤에 아기가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바로 어제 사리아에서 보았던 자전거 여행 가족의 그 아기이다.

하루 종일 울퉁불퉁한 길을 자전거 캐리어에 실려 달렸으니 낮잠은 꿈도 꾸지 못했을 테고,

밤에 투정 부릴 새도 없이 단잠에 빠질 수밖에.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아이를 데리고 하는 자전거 여행.

아이를 정말 강하게 막 키우는구나.

홀랜드, 홀랜드 하길래 어딘가 했더니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단다.

나의 자전거 여행은 휴전선 때문에 국경을 넘지 못했었지만 이들에게 국경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언젠간 연천에서 멈췄던 자전거 여행을 다시 이어갈 날이 오겠지.

녀석의 이름은 '요리스'

아빠가 짐을 챙기는 동안 엄마는 음식을 잘라 요리스에게 내밀며 '냠!' 한다.

그러면 요리스는 '냠' 하며 받아먹었다.

'냠' 은 세대와 국경을 초월한 만국만세대공통어이다.

나도 노리꼬와 까를로스, 프란시스코와 아침을 '냠'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요리스의 엄마가 식탁을 손바닥으로 쓸어 담는다.

우리가 먹다 일어난 자리의 빵부스러기며 과자 부스러기를 손바닥으로 싹싹 깨끗이 쓸어 담았다.

'우리가 치우려고 했는데..'

그리고 요리스에게 가더니 '냠'

'냠'이라니!

먹다 흘린 부스러기를 쓸어 담아 '냠' 이라니!?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는 요리스는 '냠' 하며 맛있게 받아먹었다.

그 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은 나뿐이었다.

모두들 그 '냠' 이 당연하다는 듯 신경 쓰기는커녕 귀엽게 바라본다.

내가 이상한 건가?

아~ 문화충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짓이다.

혹은 우리가 아이들을 너무 온실에 가둬두는 것은 아닌지.


오늘은 왠지 혼자 걷고 싶어 먼저 알베르게를 나왔다.

아침 먹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던 기분이 이상하게 꿀꿀해지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싫어졌다.


포르토마린의 성당


성당 근처 가게에 들어가 빵과 과일 등을 사서 배낭에 넣고 출발.


다리건너 멀리 노리꼬,까를로스,프란시스코





먼저 출발해서 나름 빨리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금방 까를로스가 따라왔다.

오늘은 어째 빠른가 했더니 자전거 수리공구세트를 자전거 부부에게 주었는지 알베르게에 기부했는지..

하여간 누군가에게 주었단다.

어제 개고생을 시켰던 쇳덩이 공구들.

그러게 필요 없는 공구를 뭐하러 지고 다녔는지..

하지만 내가 까를로스였다면 자전거가 망가졌다 해도 수리공구를 남에게 주어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혹시 알아? 하늘에서 자전거가 뚝 떨어지거거나, 수리공구가 망가져 자전거를 버리는 사람이 있을는지..'하면서.

그런데 프란시스코나 까를로스(조금 늦었지만)는 그냥 기부해버렸다.

반면에 나는 '비니루몸빼'를 부득부득 싸들고 다녔다. 입지도 않을 거면서.

내게 소용없는 물건이지만 기부를 하거나 남 주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까를로스도 돈이 있겠다... 다시 혼자 걷기 시작했다.

멀리 은발의 에이먼이 보였다.




느릿느릿 유유자적 걷는 에이먼과 인사를 나누고 이내 앞질렀다.

에이먼이라면 '성자처럼 온화한 사람'으로 까미노에서 소문이 파다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작은 교회와 쉼터가 나오길래 배낭을 내려놓고 간식을 먹었다.

잠시 후 에이먼이 탁자의 맞은편에 와서 앉는다.

조금 지쳐 보이길래 따뜻한 차를 따라 권했더니 고맙단다.

아침에 건넨 그의 따뜻한 인사에 비할까마는, 이렇게 권할 때 받아주면 주는 내가 더 고맙다.

마음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내게 오늘이 그런 날이었던 가 보다.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진다.

그나마 차분한 음성과 따뜻한 눈길의 에이먼과 차를 나누며 그런 기분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에이먼은 '신부'였다.

신부라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온몸에서 풍기는 온화함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에이먼은 내게 '가장 따뜻했던 인사'로 기억에 남아있다.

멀리서 까를로스와 노리꼬가 다가왔다.

괜히 까를로스와 노리꼬 둘이 히히덕거리며 걸어오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 출발.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커플이 보인다.

염장이다.



사진을 찍는 내가, 나는 싫었다.

감정에 솔직해져 보자고, 쫌!

사진을 찍고는 계속 앞에 두고 보기가 싫어서 서둘러 앞서갔다.




오늘은 어디까지 갈까, 어디서 묵을까 하며 걷는데 타냐가 지나간다.

정말 씩씩하게 걷는 게 오버페이스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자기는 오늘 컨디션이 너무 좋다며, 풀파워로 충전이 되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어제 포르토마린 9km 전 페레이로스에서 묵었던 그녀가 벌써 나를 추월해가고 있는 것이다.

인사를 나누고 타냐는 씩씩하게, 카메라가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앞서갔다. 



팔라스 델 레이에서 빵집에 들어가 빠나데를 사서 콜라와 함께 먹고 근처의 알베르게에 들어가 보았다.

왠지 너무 이른 것 같기도 해서 물어보았더니 호스피딸레라아줌마가 다음 마을의 알베르게도 열려있다고 했다.

아마도 노리꼬와 까를로스는 이곳에 머물 것 같은데... 나는 그냥 다음 마을로 출발했다.

아침에 출발하며 오늘은 고기를 실컷 먹어보자고 하던 노리꼬, 까를로스와 못 만날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왠지 혼자이고 싶은 마음뿐이다. 

베지터리안도 아닌 주제에.


가또 네그로


다시 혼자 걸었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보았던 또 다른 한국 여성이 외국인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나는 혼자라 그냥 눈인사만 건네고 지나쳤다.

다들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는데...

나도 노리꼬,까를로스,프란시스코와 함께 할 수 있었지만 혼자이기를 원했고

그래서 혼자였는데 왠지 외톨이가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팔라스 델 레이를 지나 다음 마을의 알베르게는 문을 닫았다.

열렸다고 했었는데..... 더 가보는 수밖에.

얼마나 더 가야 하나?



시원하고 상쾌한 숲길이 참.. 음침해지는 순간.

까를로스와 함께 걸을 때는 어두운 숲길도 나름 분위기가 있었는데, 혼자 걸으려니 초저녁의 숲길도 어째 으스스했다.

지금쯤 까를로스는 팔라스 데 레이에서 노리꼬와 고기를 먹고 있으려나.



까사노바라는 이정표가 나왔다.

마을 이름에서 바람기가 묻어난다.

숲 속에 뚱하니 동사무소 같은 건물이 있길래 '알베르겐가..' 하고 들여다보았더니 알베르게가 맞다.

이런 외딴곳에 문을 연 알베르게가 있다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타냐가 와있었고 까미노에서 처음 보는 사람 3명이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무릎이 좋지 않은지 침대에 걸터앉아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내려가 혼자 저녁을 먹으려는데 타냐가 주방으로 들어온다.

다행이다.

나 홀로 '냠'은 면했다.

우리는 우유를 데우고 오트밀을 타서 잘 섞은 다음 꿀을 넣고 그 위에 생크림을 얹었다.

키위와 토마토를 썰어 빵과 함께 단촐하고 건강한 식단으로 저녁을 먹었다.

막 식사를 하는데 프란시스코가 들어온다.

프란시스코도 같이 저녁을 먹었다.

타냐는 모스크바에서 여행사를 다닌다고 했다.

자기 일이 재미있고 아주 만족스럽단다. 부럽다. 나는 언제나 만족스러운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 언제나 내 일에 만족할 수 있을까?

한국인 남자 친구도 있는데 같이 산행도 자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장비들이 예사롭지 않았나 보다.

내게 남쪽이냐, 북쪽이냐 묻길래 북쪽이라고 농담을 했더니 놀란다.

주 6일 근무는 기본, 야근과 특근도 자주 있다는 말에 '한국인은 일벌레야(하드 워커)' 란다.

유명하구나, 러시아에서도.

베지타 프란시스코가 내일은 문어요리로 유명한 멜리데를 지나간다며 뿔뽀요리에 대해서 설명했다.

문어를 두들겨 삶아서 감자와 함께 먹는데 아주 별미라고.. 베지터리안이라며?!

두둘긴다는 말에 타냐가 조금 놀라는 기색을 보이자 죽어있는 냉동문어니까 괜찮다고 안심시키는 프란시스코.

우리나라에서는 산 것도 그냥 씹어먹는데.. 겨우 그 정도로 놀라기는.

아무튼 프란시스코는 타냐에게 아주 친절했다.

저녁식사가 끝날 무렵 일단의 무리들과 노리꼬, 까를로스가 들어왔다.

'팔라스 델 레이에 머물 줄 알았는데..'

노리꼬의 손에는 고기가 잔뜩 들어있을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지만 반갑지가 않았다.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노리꼬도 '같이 고기를 먹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식사를 끝내고 2층으로 올라와 일찍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아래층에서는 파티를 하는지 꽤나 소란스럽다.

산티아고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울려 떠드는 소리에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우리 방에 있던, 일찍 알베르게에 도착해 저녁을 먹은 사람들은 벌써 잠자리에 들어 불을 꺼버렸다.

정말 고독과 외로움이 몸부림치는 밤이었다.

'나는 소외되었다'는 생각이 집요하게 나를 물고 늘어졌다.

언제나 혼자서 당당한 타냐는 늘 그렇듯 아래층 침대에서 편안히 잘 준비를 하고 있다.

잠시 후 불 꺼진 방문을 누군가 살며시 열었다.

프란시스코.

타냐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려고 했나 보다.

목소리를 낮춰 "부에나스 노체스, 타냐." 다정하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문을 닫으려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부에나스 노체스.." 한다.

그래, 타냐가 메인이고 나는 덤이지.

점점 부정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우등생 틈에 낀 문제아, 제2외국어로 서반아어를 선택했는데 모두들 우등생인지라 지들끼리 웃고 떠드는데 문제아인 나만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

이런 게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건가?

괜히 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차라리 이 돈으로 한국에서 실컷 놀면서 직장을 알아볼걸.

이제 돌아가면 빈털터린데, 직장은 또 어떻게 구하지.. 등등의 걱정해도 답이 없는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내가 뭐하러 여기 왔나. 어서 집에 돌아가고 싶다.. 이런 생각만이 나와 친구 하잖다.

여지껏 사람들에게 빌붙어 잘 어울리기만 했지 이렇게 외로워본 적이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진다.

누우면 그대로 빠져들던 잠도 나를 외면했다.

노리꼬와 까를로스의 것으로 들리는 웃음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리는 듯했다.



까사노바.png


imagee.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