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까사노바 - 싼타 이레네

by 외투



모두 잠든 이른 아침에 조용히, 아주 조용히 일어났다.

뤼노가 있었다면 '쏘 굿 필그림, 퍼펙또!' 라고 칭찬해 주었을 텐데.

사람들이 깰까 봐 어둠 속을 더듬어가며 짐을 챙겨 복도로 나와 정리해서 배낭에 담았다.

지난밤엔 잠을 많이 설쳤는데..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알베르게를 뜨고 싶었다.

배낭을 둘러메고 1층으로 내려와 주방을 지나.. 가다 아침을 준비하는 타냐와 마주쳤다.

'부엔 까미노' 작은 소리로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서려는데 프랑스인 '쟝'이 판초를 입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제 무릎이 좋지 않아 마사지를 하던 '쟝'이다.

밖은 아직 어두웠고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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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비가 아니길래 그냥 재킷에 모자를 쓰고 출발했는데 돌아보니 '쟝'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포장이 안된 울퉁불퉁한 길을 넘어야 했고, 게다가 어두워 랜턴을 켜야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불안해 보였다.

돌아서서 헤드랜턴을 비춰주었다.

쟝은 한사코 사양했지만 날이 밝을 때까지만 이라도 같이 가자고 헤드랜턴으로 길을 비춰주며 함께 걸었다.

쟝은 나를 '나헤라'에서 보았다고 했다.

하긴 까미노에서 빡빡머리 동양인은 흔치 않았으니까.

나는 통 기억이 안 난다. 쟝은 까미노에서 흔하디 흔한 텁수룩한 수염의 갈색 곱슬머리였으니까.

다행히 얼마 안 가서 비포장 언덕이 끝났고 날도 밝아왔다.

쟝과 인사를 나누고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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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빠져나오면서 보이는 아침 하늘이 예쁘다.

비도 그치고.. 촉촉한 숲길이 상쾌했다.

기분도 많이 상쾌해졌다.

잠도 설친 데다가 아침도 바나나와 비스킷으로 대충 때웠지만 어찌 된 일인지 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타냐의 말을 빌리자면 오늘은 내가 풀파워로 충전된, 그런 컨디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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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을 요리조리 골목을 따라 통과해서 10시쯤 되었을까.

곧 멜리데가 나타났다. 멜리데는 도시 느낌이 난다. 문어 향이 그윽한 작은 도시.

죽이 맞는 친구라도 있었으면 멜리데의 명물 뿔포를 지나치는 일은 없었을 것을..

혼자서 뿔포는 자신이 없었다.

그냥 대충 바르에 들어가고기가 들어간 빵과 따뜻한 까페 꼰 레체 한잔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도시를 빠져나왔다.


숲길을 걷는데 누가 까미노 표지석위에 축구화를 얹어두었다.

길가에 버려지거나 놓인 신발을 많이 보기는 했지만 축구화는 처음이었다.

설마 축구화를 신고 이 길을 걷지는 않았겠지.. 축구화에 꽃도 놓여있었다.

그렇게 그곳을 지나쳐 300~400m쯤 걸었을 때 문득 떠오른 생각.

오늘 이 속도로 걷는다면 아무래도 노리꼬와 까를로스, 프란시스코와는 다시 못 만날 것 같았다.

꽃꽂이 축구화라면 모두의 눈에 띌 것 같아 메모를 남기기로 하고 다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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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꼬, 까를로스, 프란시스코 고마웠어, 안녕'

며칠 동안이었지만 즐거운 추억을 함께 만들었던 길동무들.

뻬레헤의 난방이 안되던 따뜻한 산장과 까를로스의 버섯과 오스띠아, 밤을 줍고, 빵을 나누고.. 그리고 육식하는 베지타와 야무진 노리꼬..

까미노 초반, 주비리에서 크리스와 조에게 남긴 메모가 전달되지 못해 아쉬웠는데..

바람에 날릴까 봐 쪽지를 축구화 밑에 끼워놓고 돌멩이로 눌러 놓았다.

이번엔 나의 메모가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우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참 고맙고 소중한 인연들이다.

포도나무덩굴이 지천인 마을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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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철이었다면 달콤한 포도로 목을 축일 수도 있겠다.

농사로 짓는 건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해 심어놓았나 보다.

배낭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상쾌한 수분을 머금은 숲과 작은 마을들을 지나가는 코스는 지루하지도 않았고..

발걸음에 힘이 팍팍 들어갔다.

오늘은 정말 걷기에 최상의 컨디션이다.

몸도 그렇고 날씨도, 길도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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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보이는 한글이 반갑다.

그 유명한 뿔뽀는 먹지 못했지만 문어가 들어간 빵과 콜라로 점심을 먹었다.

정말 문어가 부드럽고 고소했다. 오랜만에 마시는 콜라도 톡 쏘는 게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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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 기분이 꿀꿀했던 건 싼티아고가 가까워진 것에도 어느 정도 기인한 것 같았다.

(노리꼬와 까를로스의 오누이 같은 분위기도 일조했지만)

이제 곧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싼티아고 이후로도 포르투갈 길이 남아있었지만 부쩍 한국과 가까워지는 느낌은 무엇 때문인지..

싼티아고가 갖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지 싶다.

모든 까미노는 싼티아고로 향한다.

왠지 싼티아고에 도착하고 나면 그다음 마을은 '한국' 이 될 것 같았다.

어떤 이에게 싼티아고는 '축제의 시작'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축제의 끝'이다.

화살표를 좇아가며 즐기기만 하던 봄날의 끝이 다가오는 것 같아 오히려 우울하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더 이상 '노란 화살표' 따위는 없다.

오히려 수많은 눈총이 화살이 되어 내게 날아올 것이다.

'그래, 백수 주제에 해외여행은 잘 다녀왔어?' 피융

'돈이라도 모아놨남?' 피융

'이제 뭐 먹고살래?' 피융

'곧 한 살 더 먹네..' 피유우우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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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했다가 돈 떨어져 주린 배를 부여잡고 컴백홈 하니 개학이 코앞이었을 때의 그런 심정.

방학숙제도 하나도 안 했는데.....


오늘도 야간 까미노.

야간 자율학습도 아니고 맨날 나머지 까미노네.

혹시 나도 모르게 알베르게를 지나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불이 켜진 바르에 들어가 물어보았다.

"돈데 에쓰따 산타 이레네?"

바르 주인으로부터 돌아온 퉁명스런 대답은

"아끼!"

여기란다.

서울역 앞에서 '서울 역전이 어디예요?'라고 물은 꼴.

그리고 '알베르게는 조금만 더 가면 있다'라고 했다.

다행이다.

어제는 초저녁에 알베르게에 도착했었지만 오늘은 아예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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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밑으로 난 터널에 커다랗게 한글로 '알랍! 은아!'라고 낙서가 되어있다.

가만히 낙서를 들여다보면.. '글'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보면 참 예쁘고 독특한 문양이다.

ㅇ, ㄹ, ㅂ, ㄴ, ㅏ, ㅡ 따로 떼어놓아도 예쁘고 합체되어 글로도 예쁘다.

모양도 좋고 구조도 과학적이다.

그래도 너무 크게 써놨네.

그만큼 많이 많이 '랍' 하는가 보군.


싼타 이레네의 알베르게는 도로 바로 곁에 붙어있다.

오늘은 약 40km, 거의 마라톤 풀코스 거리를 완전군장으로 해냈다.

그래도 그리 힘든 줄 모르고 걸었다.

숙소엔 네덜란드 자전거 부부와 30년은 족히 숙성되어 보이는 프랑스인 발렌틴과 20대의 리치시아까지

나를 포함해 5명 아니, 아가 요리스까지 6명이 전부이다.

짐을 풀고 정리하고 배가 고파 주방으로 내려갔다.

주방에서는 발렌틴이 파스타를 만들고 있었다.

잠시 기다렸다가 뽀요 소파를 끓였다.

그리고 햄과 참치를 마늘과 볶아 빵에 넣어 보까디요를 만들어 먹었다.

저녁을 먹는데 프랑스 아가씨 리치시아가 다가오더니 공기반 소리반의 프랑스어 특유의 톤으로 '부엔 뿌로벤쵸'한다.

리치시아는 제법 많은 한국어를 알고 있었다.

모두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배운 한국어를 메모하며 익혔다고 했다.

자기 이름 '리치시아'를 한글로 적어달래기에 적어주었더니 모양이 신기한가 보다.

발렌틴도 아는 한국말이 있다며 끼어들었다.

'구미호'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구미호라니?!

어떻게 구미호를 아느냐고 물으니 자기도 모르겠단다. 물론 뜻도 모른다.

글자 그대로 구 - 나인, 미 - 테일, 호 - 팍스.

다행히도 단어가 쉽다.

9개의 꼬리를 가진 여우 얘기에 다들 말도 안 된다며 웃었다.



바이러스


네덜란드 자전거 부부는 일기를 나눠 쓴다.

일기장을 펼쳐서 한쪽 페이지를 남편 요르헨이 쓰고 다른 한쪽 페이지에 아내 바바라가 쓴다.

참, '요르헨'이라는 이름의 발음은 '요르헨'이 아니다.

'요'를 발음할 때는 거의 코 먹는 소리를 내는 듯해야 그나마 비슷하게 발음이 되었지만,

내가 계속 코를 먹는 게 불쌍했는지 그냥 '요르헨'이라고 부르라 했다.

일기장을 펼쳐보니 한쪽은 예쁜 글씨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다른 한쪽은 개발새발이다.

누가 보더라도 '아 이쪽은 요르헨것이구나' 하고 알 수 있다.

남편 요르헨의 것은 글씨도 거칠고 내용도 짧은데 아내 바바라의 것은 바른 글씨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 바바라의 직업은 선생님이란다.(혹시.. 영어 선생님?)

이들은 '네팔 투 홀랜드'라는 홈페이지(www.Nepal2Holland.nl)를 운영하며 자신들의 여행기를 나누고 있다.

네팔부터 네덜란드까지의 자전거 여행을 포함한 여러 여행기가 소개되어있다.

요르헨은 돈을 얼마간 모으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자전거에 오른다고.

나중에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놀러 오라며 명함도 주었다.

이번 여행에 아기 요리스가 동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럽에서는 여행 중 아기가 아프면 언제든지 항공편으로 좋은 병원으로 신속하게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리치시아와 '면역력'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모두 갖가지 질병에 대비해 예방접종을 하는데 이게 면역력을 저하시키고 있다면서, 약물 남용으로 각종 바이러스가 백신에 대한 내성이 생겨 수퍼바이러스가 된다나.

물론 아가 요리스도 예방접종으로 각종 질병에 대비했지만 어떤 마을에서는 아예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다며 자연적으로 면역력을 키워야 한단다.

도대체 내가 이런 얘기를 듣고 어떻게 이해했는지..

아마 영어 울렁증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나 보다.

아무런 백신(사전, 문법책, 회화책) 없는 야생 영어 천국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면역력(듣기, 말하기)이 생겼다.

살아야 하기 때문에.

영어공부도 온실 속에서보다 야생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아까 내가 막 도착했을 때 바바라가 요리스를 재우고 있었다.

조금 낡은 2층 침실에는 간접등이 은은하게 겨우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고

접이식 요람에 요리스를 뉘우고 엄마 바바라가 자장자장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고요하고 평안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요리스의 요람에 사랑이 가득했다.

사랑 바이러스로 요리스는 몸도 마음도, 영혼까지 튼튼하게 자랄 것이다.


요르헨이 물었다.

왜 많은 한국사람들이 이곳을 찾느냐고.

글쎄.. 다른 사람의 경우는 모르겠고, 내 경우에는 '싸기' 때문.

돈은 많지 않은데 해외여행은 해보고 싶고, 이왕이면 한국과 멀리 떨어질수록 좋은데,

까미노는 이조건에 딱 맞고 덤으로 유럽을 '경험'할 수도 있으니까.

요르헨도 동의한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물가가 저렴하고 사람들도 친절한 편이라고.

10시 반, 모두들 자러 올라가고 나만 혼자 주방에 남았다.

지도를 보다가 메모를 정리하다가..

서로가 낯선 사람들이었기에 외톨이가 된 기분도 없고 외로움도 없다.

길가에 있는 알베르게라 가끔 차소리 때문에 고요하지는 않았지만 평안한 밤이었다.

바바라의 자장가가 떠오른다.

사랑 바이러스는 전염성도 강해서 보기만 해도,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상한 몸과 마음이 회복된다.

11월의 마지막 밤, 내일이면 12월이다.

집 떠난 지 한 달이다.

식구들은 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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