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티아고 - 테오
어제 사무엘이 어질러놓은 흔적들을 대강 치우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들어오시더니 주방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도우미 아주머니셨는지 내게 놔두라는 눈빛을 건네셨다.
가지고 있던 음식과 냉장고를 뒤져 아침을 간단히 해 먹고 차를 끓여 보온병에 담았다.
배낭을 메고 복도로 나오니 그제서야 사무엘이 부스스한 얼굴로 나타났다.
마침 출근한 쿨한 주인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늦은 스탬프를 받았다.
어제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그가 퇴근하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으며 스탬프 받을 정신도 없었다.
스탬프를 받으면 하루 걷기가 끝나는 건데 오늘은 스탬프를 받으며 숙소를 나섰다.
사무엘과는 어제 공식 이별을 나누었기에 오늘은 약식으로 악수만 나누었다.
"부엔 까미노"
이게 벌써 몇 번째 작별인사인지..
부슬비가 내리는 산티아고 광장에 오늘도 백파이프 소리가 울렸다.
성당 맞은편 건물 처마 밑에 비를 피해 쪼그려 앉아 한참 성당을 바라보며 뭔가 감회 같은 것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처음 보았을 때의 웅장함도 조금 시들해졌고..
'축축하고 습한 환경이 이끼를 만들어내는구나' 정도의 느낌뿐이었다.
성당 주위를 둘러보는데 바스크 워먼 에두아르네와 프랑스 아줌마를 만났다.
"올라"
프랑스 아줌마가 어제 싼티아고에서 베드벅에 물렸다고 불평을 했지만 나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목에 몇 방 물린 흔적뿐이었다.
베드벅도 나 같은 동양인들에게 텃세를 부리나 보다.
프랑스 아줌마의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며칠 동안 친근하게 잘 지냈는데, 아줌마도 내 이름을 부른 기억은 없었다.
서로의 이름이 어려워 알면서도 부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차가운 대서양에 입수한 사람은 사무엘만이 아니었다.
프랑스 아줌마가 말하길 타냐도 입수를 했었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프럼 러시아 타냐가 입수를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게 여겨졌을걸.
어제 아침에 헤어진 뒤로 타냐와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미처 재킷을 돌려준다는 생각도 못했었지만, 타냐 또한 돌려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성당이 열리길 기다렸다가 들어가 보았다.
좀 더 화려하고 넓은 싼티아고성당은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성당 중의 하나일 뿐,
오히려 시골마을의 작은 성당보다 못한 느낌이었다.
성당을 관람하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관광지'같은 분위기였다.
다만 야고보의 시신이 안치된 이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조가비를 보태고 있다는 사실이,
아득한 과거를 현재로 끌어놓는 듯한 묘한 느낌을 주었다.
미사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성당을 빠져나왔다.
내게 종교가 있었다면 이곳 싼티아고에서의 미사가 특별했을지 몰라도
론세스바예스에서, 부르고스에서, 레온에서 그리고 사모스에서 이미 참석해보았으며
스탬프도 받고, 완주 증명서도 받았지만 싼티아고에서의 미사에는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
왠지 요식행위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나의 까미노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그리고 미사에 참석하면 포르투갈을 향해 떠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대성당을 등지고 봤을 때 우측 길로 가면 피스테라, 좌측으로 가면 포르투갈길이다.
배낭을 메고 포르투갈길로 향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피스테라로 향하는 것과 포르투갈로 향하는 것의 성격이 다르다.
피스테라로 향할 때는 싼티아고로 돌아온다는, 돌아갈 곳이 정해진 길이었다면
포르투갈길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는 느낌이다.
조금은 뿌리치듯 싼티아고를 벗어나야 했다.
성당을 나와 설레는 걸음을 시작하는 순간 프랑스인 '할프'를 만났다.
내 재킷과 사무엘의 아이패드를 도둑맞았던 네그레이라에서 함께 파출소까지 동행해주었던 '할프'였다.
노천카페에 앉아 어떤 남자와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남자가 나를 아는 체 했다.
첫날 피레네에서 만났었다고 하는데 누구였더라..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저 수많은 수염 기른 서양 남자 중의 한 명일뿐.
할프가 네그레이라에서 당했던 일을 수염남에게 얘기해주자 그는 바로 '오우- 퍽!' 이라며 격하게 반응했다.
'오우- 퍽!' 이라니, 너무도 자연스워 욕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왜 욕이 잘 어울리는 사람 있지 않나. 욕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잘 어울리는, 욕이 입에 착착 감기는 그런 사람.
생각해보니 그는 피레네에서 만났었고, 또 작은 오두막에서 한국영화 '올드보이' 팬이라고 했던 바로 그 프랑스 오대수였다.
프랑스 오대수의 '오우 퍽!'에서 같은 길을 걷는 길동무의 아픔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면 다소 과장이지만... 하여튼 욕이 욕으로 들리지 않고 위로의 말로 들렸다.
담배를 말아 뻑뻑 피워대는 할프와 프랑스 오대수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부엔 까미노-"
어디서 어떤 사람과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까미노다.
싼티아고를 벗어나기 전에 대형마트 'FROIZ'에 들러 부식을 샀다.
오래된 옛 건물의 외관은 유지한 채 내부를 리모델링한 마트가 인상적이다.
안내책자를 보며 더듬더듬 포르투갈로 향했다.
대학이 있는지 젊은 학생들이 많았고 작은 공원을 오른쪽에 두고 남쪽으로 걷는다.
약간의 아쉬움과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가 생겨난다.
생장을 출발할 때가 전혀 새로운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낯선 곳에서 좀 더 낯선 곳으로 한걸음 더 내딛는 것 같았다.
조금 더 가니 왼편에 케밥집이 보였다.
낯선 곳도 식후경.
도시를 벗어나면 케밥을 먹기 힘들 거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감자튀김과 시원한 콜라까지 맛있게 먹고... 이제 싼티아고를 떠난다.
어젯밤 싼티아고에 도착해서 케밥을 먹고 오늘 싼티아고를 떠나며 케밥을 먹는다.
내게 '싼티아고' 하면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는 케밥이다.
염불은 안중에 없고 잿밥에만 관심을 갖는다더니..
미사는 안중에도 없고 케밥에만 관심을 갖고 있구나.
도시를 벗어나 작은 다리를 건너 드디어 새로운 화살표가 나타난다.
노란 조가비와 화살표, 그리고 포루투게스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사무엘이 그냥 걷다 보니 포루투갈길이었다는걸 떠올려보면, 아무리 역방향이라지만 길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게 분명했다.
포르토마린에서 만났던 M도 '포루투갈길엔 화살표가 많아 길 찾기가 쉽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왠지 포르투갈길에 들어서자 스페인 땅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풍광이 낯설고 색다르게 보였다.
포르투갈을 가본 적도 없으면서 벌써 포르투갈의 풍취가 풍겨오는 것만 같았다.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배낭을 씌우려고 배낭 커버를 찾았지만 없어서 그냥 판초로 배낭을 덧씌웠다.
숙소에서 흘렸나 보다. 배낭 커버가 없으니 배낭이 젖을까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길은 조금씩 도시를 벗어나 작은 마을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작은 마을에서 점점 더 번화가로 이어졌다.
한참을 걸었더니 사람들로 북적였다.
꽤 큰 도시이다. 번화하고 사람도 많다.
안내책자를 봐도 이렇게 큰 도시가 나온다는 말은 없었다.
싼티아고를 지나서 이렇게 큰 도시가 있는 줄은 미처 몰랐는데...
인파 속에서 방향을 잃어 가까운 관광안내소를 찾는데, 그때 오래된 건물 안에서 새어 나오는 밝은 불빛이 보였다.
참 인상적인데.. 어째 낯익은 건물이다.
싼티아고를 떠나며 부식을 구입했던 마트 '프로이즈'였다.
그럼 여긴 어디?!
바로 싼티아고다.
한참을 걸어 걸어 도착한 곳이 결국 다시 싼티아고라니.. 이런 제기랄!
'포르투갈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데..'라고 착각 속에 빠져 걸었던 내가 참 한심했다.
화살표만 믿고 따라왔더니 싼티아고의 외곽을 돌아 다시 시내로 들어온 것이었다.
'나의 까미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싼티아고에서의 미사가 요식행위 같다'.. 어쩌고 하며
마치 신대륙이라도 찾아 나서는 것처럼 온갖 개폼을 잡았던 나 스스로가 어찌나 창피하던지..
이럴 거면 차라리 미사에 참석할걸 그랬네. 괜히 미사를 땡땡이친 게 후회되었다.
힘도 쪽 빠졌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미사에 참석했다가 이런 일을 겪었다면 그만큼 시간이 더 흘렀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날은 더 이상 걷기를 포기했을 것이고, 그래서 싼티아고에서 하루를 더 묵었을 것이고, 하루 더 묵으면 마음이 해이해질 것이고..
결국 포루투갈길은 물 건너갔을 것이다.
그럼 결론은.. 역시 미사에 참석하지 않기를 잘했네.
이런 합리화로 나 스스로를 위로했다.
'에이~ 이왕 이렇게 된 거 배낭 커버나 찾자'며 다시 숙소로 향했다.
사무엘과의 재회를 기대했지만 더 이상 그는 그곳에 없었고.. 배낭 커버도 없었다.
허탈해.
다시 골목을 빠져나와 공원을 지나고 케밥집을 지났다.
마음속으로 '포르투갈 포르투갈..' 하며 걷다가 바로 요 화살표가 나오자마자 냅다 물었던 것인데,
이것은 포루투갈길을 걸어 싼티아고에 도착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이런 화살표가 나오면 '어느 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가'하고 분석을 해서 길을 유추해 가야 한다.
그렇게 바라보니 아까와 달리 새로운 길이 보였다.
커다란 고가도로 밑으로 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싼티아고를 뒤로하고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파란 화살표를 만났다.
노란 화살표와 파란 화살표가 부딪친다.
비로소 나를 놓아주지 않던 싼티아고를 뿌리치고 포르투갈길에 안착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길을 잃어 포르투갈길을 걸었다는 사무엘이 길치인가, 아니면 내가 길치인가.
괜찮아, 가끔 길을 잃을 때도 있는 거야.
포르투갈에서 싼티아고로 걷는다면 정말 길 찾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때론 '오바' 일정도로 화살표가 비 오듯 쏟아졌다.
오죽하면 '이렇게 화살표가 많으면 오히려 길 찾는 재미가 덜 하겠어'라는 생각도 들었다.
반면 아무리 화살표가 많아도 싼티아고를 향한 화살표이기에 포르투갈행 길 찾기는 쉽지 않았다.
나름대로 화살표의 각도와 위치를 살펴 역으로 추측해보는 재미라면 재미가 있기는 한데, 길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아직 파란 화살표는 드문드문 나타난다.
노란 화살표에 의지해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갔다.
걷다가 길이 의심스러워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면 하나같이 모두 싼티아고방향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길을 물을 때면 항상 '돈데 에스따 까미노, 포. 루. 투. 갈.!!?' 이라며 강조를 해야 했다.
마을을 돌고 돌아 꼬불꼬불하게 난 길을 내 맘대로 곧게 쭉 펴서 걷기도 했다.
12월도 어느덧 초순을 넘겨가고 있었지만 아직 날씨는 겨울이 아니었다.
누가 보면 나름 계절과 기후까지 고려해서 철저하게 준비한 여정 같았다.
더위를 피해 프랑스길을 걷고, 추위를 피해 포르투갈로 향하는.
포루투갈길을 걷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루투나 리스보아에서 출발해 싼티아고로 향한다.
나도 버스를 타고 포루투나 리스보아에서 시작할까 하는 생각도 조금 해보았는데,
그러면 추위를 따라 점점 북쪽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고, 남은 일정을 염두에 두었을 때 포르투에서 시작해야 할지 리스보아에서 시작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고... 버스비도 아까웠다.
무엇보다도 다. 시. 싼티아고로 돌아온다는 게 싫었다.
싼티아고가 싫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낯선 곳, 새로운 곳으로 가보고 싶었다.
이제 정말 홀로 걷는 것인가.
내 페이스대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멋대로 걸으면 된다.
프랑스길에서도 그랬지만 포루투갈길에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날 싼티아고에서 포르투갈로 향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반면 싼티아고를 향하는 사람은 서너 명 만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들떠 있었다.
나도 싼티아고를 앞두고는 그랬었던 것 같았다.
생장에서 싼티아고까지의 길이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걸을래야 걸을 수 없는 '함께 하는 길'이었다면,
포르투갈행 까미노는 함께 할래야 함께 할 수 없는 '홀로인 길'이었다.
어떻게 걸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길 찾기에 신경이 쓰였다.
도로를 따라 걷고 도로를 건너고 마을을 지나치고..
2시간여를 날려버린 덕분에 여유가 없었다.
7시가 되어서야 테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 사람이 도로를 벗어나 조금만 가면 된다고 약도까지 그려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건만 알베르게는 보이지 않았고 날은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마을의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발견하고 다가갔을 때 마치 내가 성냥팔이 소녀라도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
차마 들아가 물어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어두운 시골길을 걸을 때면 살짝 무섭기까지 했다.
알베르게 근처에 다 온 것 같기는 한데 찾을 수가 없었다.
길의 끝무렵엔 줄 풀린 개 때문에 스틱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덩치가 큰 녀석이었는데 짖지는 않았지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오는데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애써 무시하며 걸었더니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아 한숨 놓았다.
마을 끝무렵 도로로 가는 길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아담한 건물이 보였다.
알베르게 테오였다.
불 켜진 알베르게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호스피탈레로는 조용하고 친절한, 마을 이장님 같은 어르신이다.
당연히 스페인 분이셨는데 포르투갈 사람처럼 보였다(차이가 있나?).
영어는 전혀 못하셨는데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머금고 계시는 게 참 수더분해 보였다.
직접 2층과 1층을 오가며 안내를 해주신다.
안내라고 해봤자 문을 열어 보이며 웃으시는 게 전부였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2층에 짐을 풀고 1층 주방으로 내려와 가지고 있던 귤을 드릴까 망설였는데..
어르신이 냉장고 문을 열고는 귤을 가리키며 '니띠엔다 니띠엔다..' 하시며 선수를 치셨다.
'니띠엔다..' 라는 말속에서 '집에서 기른 무농약의 아주 좋은 귤인데 얼마든지 먹어..'라는 따뜻한 의미가 읽혔다.
알베르게가 위치한 곳이 조금 외져 근처에 가게가 없을 것 같았고 주방시설이 괜찮았기에 가진 것으로 저녁을 해 먹었다.
이것저것을 넣고 볶아서 밥과 함께 먹었는데 좀 개밥스러웠다. 느끼했지만 그래도 배불리 먹었다.
점심은 케밥으로 저녁은 개밥으로.
느끼한 속을 '니 띠엔다' 귤 두 개로 달랬다.
아닌 게 아니라 잎사귀와 나뭇가지마저 달려 있는 귤이 아주 달고 신선했다.
'부엔부엔' 했더니 아저씨가 '거봐 맛있지'라는 표정으로 미소 지으셨다.
아저씨는 '내일 나갈 때 열쇠는 우체통에..'라고 역시 몸으로 보여주시고 퇴근하셨다.
침실은 바닥난방이다.
너무 건조하기도 한 것 같아 빨래를 해서 바닥에 깔았다.
이곳엔 나 말고 세 사람이 더 있었는데 그들도 역시 포르투갈길을 걸어 내일 싼티아고 도착할 사람들이다.
그들의 표정에서도 '드디어 내일이면 싼티아고다!' 라는 들뜸이 느껴졌다.
포르투갈길에서의 첫날을 그래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니 띠엔다 만다린이라니.. 절로 미소 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