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길

까다스 데 레이스 - 폰테베드라

by 외투



부슬비가 아니라 비가 제법 비답게 내렸다.

12월 중순이 가까운데 눈은커녕 내리는 비마저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알베르게에 머문 사람들 중에 포르투갈로 향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늘도 시작부터 헤매기 시작.

이제는 뭐 익숙해..라고 생각하면서도 살짝 짜증이 난다.

이럴 거면 뭐하러 까미노를 걷는단 말인가.

그냥 유럽의 한적한 시골을 찾아가 정처 없이 걷는 게 낫겠다.

'그래, 그냥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걷는다고 생각을 하자'

그렇게 큰 틀을 세우고 걷기도 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우리나라의 국도 같은 도로변을 걷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시골길도 아니고.. 더더구나 까미노와는 전혀 다른 길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어 지나가는 차를 세워 길을 물었다.

역시나 길을 벗어났단다.

싼티아고를 뒤로 놓고 봤을 때 나는 까미노에서 좌측으로 한참 벗어나 있었던 것.

그래? 그렇다면 다시 우측으로 걸어주마.

큰 도로로부터 벗어나 다시 까미노를 찾아 걸었다.


나의 프랑스 길이 앞을 보고 걷는 길이었다면,

나의 포르투갈길은 뒤를 돌아보며 걷는 길이다.

프랑스길에서도 걸으면서 뒤를 돌아보기도 했다.

아름다운 풍경에 뒤돌아보기도 하고 함께 걷는 길동무가 어디쯤 오고 있나 하며 돌아보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포르투갈길에서 뒤돌아보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내가 온 길이 맞는 길인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역방향이다 보니 이편에서 화살표가 안 보일 때가 많기 때문.

돌아봐서 길모퉁이 뒤쪽이나 전봇대 뒤쪽에 숨어있던 노란 화살표를 발견했을 때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내가 잘 가고 있구나', '내가 가는 방향이 옳은 방향이야'

물론 멋진 풍경에 뒤돌아 볼 때도 있고 '누구 오는 사람은 없나..' 하며 돌아볼 때도 있다.

그래도 주된 목적은 '잘 가고 있나..' 확인차 돌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 돌아보게 되는 길이다.



살면서도 '노란 화살표' 가 나타나기도 한다.

나타나기는 하지만 선명하지 않고 흐릿하다.

게다가 한두 개가 아니다.

희미하게 나타나는 수많은 화살표들.

이게 맞는 방향인지 혹은 저게 옳은 길인지 불안과 갈등 속에 선택해서 나아가다가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면 '노란 화살표'가 그 자리에서 선명해진다.

'아 그때 그쪽으로 갈걸..' 하기도 하고 '옳은 선택이었어' 하기도.

'잘 가고' 있는 건지 '잘못 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물이다.

도무지 인생에 정답이란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 가도 가도 알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건 정말 아찔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감당하기에 벅찬 '선물'.


까미노에서 나름 고생이라면 고생도 있었고 선물 같은 경험도 많았다.

까미노를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았을 것이다.

그건 삶에서도 마찬가지.

순례자이건, 투어리스트이건, 여행자이건.. 누구를 막론하고 주어지지만 그건 발견하는 자의 몫이다.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많은 것들이 여행기를 쓰며 조금씩 선명해진다.

멋진 풍경 선물, 맛있는 음식 선물, 편안한 휴식 선물, 소중한 인연 선물..

베드벅 고생, 인종차별 고생, 물집 고생, 사서 하는 어깨 고생, 개고생..

돌아보니 고생도 점점 선물 쪽으로 짙어진다.



뒤돌아보는 것도 지겨워질 무렵 폰테 베드라에 도착했다.

걷다 보니 어느 집 밭 한가운데서 길이 끊기기도 했고 같은 자리를 맴돌기도 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도 했고 몇 번인가 건널목이 없는 기찻길을 건너기도 했다.

그리고 공사 중인 기찻길을 따라 걷다 보니 커다란 도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주오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며 근처에 식당이 있느냐고 물으니 폰테베드라 초입의 중국식당이 괜찮단다.

내가 동양인이라 생각해줬나 보다.

오늘 저녁은 중국음식에 도전해볼까..

다리를 건너 도시가 시작되었던 것 같았다.

중국집이 보이고.. 기웃거려보았는데 선뜻 내키지 않았다.

커다란 패스트푸드 체인점 같은 식당의 넓은 홀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냥 내 입맛에 맞게 해 먹자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꿨다.

습관이라면 습관이랄까, 해 먹어 버릇해서인지 해 먹는 게 편했다.

주문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것도 한몫 거들었다.

폰테베드라는 큰 도시였다.

화살표를 거꾸로 따라가며 알베르게를 찾기란 오늘도 쉽지 않았다.



지나간 화살표를 보며 '이 화살표가 여기 있다면 저쪽 길에서 오는 사람을 위한 것이므로 저쪽으로 가면 되겠구나..' 하며 추리를 해가며 찾아간다.

하지만 그것도 골목이 많아 쉽지 않다.

이쪽 골목일까 저쪽 골목일까.. 이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며 끊어진 화살표의 자취를 염탐한다.


그때 너야?


거꾸로, 역방향으로 알베르게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마치 '본떼를 봬 주랴?' 하는 것처럼 폰테 베드라의 이골목 저 골목을 들락거려야 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되어있고 쇼윈도마다 선물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분위기는 우중충했다.



4시가 되어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알베르게는 순방향(싼티아고를 향하는)에서 보면 도시 입구에 위치한 것이지만 반대로 나에게는 도시의 끝에 위치 한셈이 된다.

따라서 나는 도시를 끝에서 끝으로 가로질러온 것.

도시를 가로질러 오는데도 만만치 않은데 화살표를 역추적 한 뒤라 많이 피곤했다.

내가 오늘의 첫 손님.

잔돈이 없어 20유로짜리 한 장을 내고 등록을 했는데 거스름돈이 없다며 잠시만 기다려 달란다.

이곳의 무니시팔 알베르게는 넓은 마당이 있고 시설이 깨끗했다.

로비에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말구유 장식이 있었고 포루투갈길 개념도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보니 N-550이라는 도로 곁으로 따라 이어져있다.

그 도로를 축으로 좌우로 넘나들며 가는 격이다.

길을 잃더라도 '뽀리뇨'까지는 N-550번 도로에서만 멀리 떨어지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알베르게는 기차역 바로 옆에 있었지만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주방의 시설도 좋다.

파스타를 배가 터지도록 해 먹어야겠다.

그동안 밥을 많이 먹었고.. 더구나 어제는 개밥에 가까운 '밥'을 먹지 않았던가. 파스타가 땡겼다.

샌들로 갈아 신고 우산을 쓰고 장을 볼 겸 시내로 나갔다.


기차역에 가보니 극장도 있고 오락실도 있는 게 복합 쇼핑몰 같았다.

사람들도 꽤 있었고.. 영화 보고 싶네.

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분위기를 내고 있었고 쇼윈도에도 크리스마스 선물이 진열되어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밤이 되니 조금 활기를 찾는 것 같았다.



이곳은 대형마트도 여럿 있다.

그중 한 곳에 들어가 파스타 재료와 내일 먹을 부식거리와 과일을 샀다.

큰돈을 내고 잔돈으로 바꿨다.

문구점에 들러 일기장을 겸한 작은 노트를 살까 하다가 너무 비싼 가격에 놀라 나와버렸다.

식료품값은 무지 싼데 공산품은 무지무지 비싸다.

우리나라에서 천원도 안 할 작은 수첩이 4천 원가량 했다.

이런 공산품 들고 와서 팔면 한몫 잡겠는데.. 하는 상상도 해봤다.

맛있어 보이는 빵집에 들어가 빵도 샀다.

아까 그렇게 헤매더니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오는 길도 헤맸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더운물로 샤워를 하니 피로가 조금 풀렸다.

씻고 나오니 세 사람이 막 도착했다.

스페인 남자 2, 포르투갈 청년 1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의 자전거는 더 힘들어 보인다.

젖은 장비들을 정리하고 로비로 나오더니 그들 중 하나가 자판기를 가리키며 '뭐 좀 먹겠느냐?'며 물었다.

이제는 예의상 사절 같은 건 없다.

"콜라" 했더니 콜라를 뽑아주고는 근처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간다.


혼자 부엌을 차지하고 스파게티 국수를 삶고 문어와 홍합을 토마토와 섞어 소스를 만들었다.

콜라를 곁들인 파스타는 정말 맛있었는데.. 3 접시를 비웠는데도 한 접시가 남아버렸다.

식탁 한쪽에 깨끗한 그릇에 담아 두었다.

밥을 먹고 치우고 나니 저녁을 먹으러 갔던 이들이 돌아왔다.

그런데 그들 중 한 명의 지갑이 없어졌다고 했다.

괜히 내가 그런 것도 아니면서 불편해졌지만 다행히 식당에 두고 온 것으로 밝혀졌다.

포르투갈 청년이 간단한 포루투갈단어를 알려주었다.

본디아, 오블리가도.. 수퍼메르카도..


이날은 이 알베르게에 나와 다른 사람 3명, 해서 모두 4명이 머물렀다.

넓게 2층 침대 하나씩을 차지하고 젖은 옷가지들을 펼쳐 놓았다.

참, 잊지 않고 호스피딸레라에게 말해 거스름돈도 챙겼다.

그녀도 깜빡하고 있었고 얘기하지 않았으면 거금 15유로를 날릴뻔했다.

이제 약 2주간의 시간이 남았는데 어서 포르투갈에 가고 싶어 진다.

포르투갈이 가까워져 그런 걸까, 아니면 스페인이 지겨워진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