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베드라 - 모스
어제부터 내리던 비가 아침이 되어서도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거세진다.
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자니 포근한 침낭 속에서 하루 종일 뒹굴고 싶어 진다.
결국 자전거 3인방은 비 때문에 자전거를 차에 싣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로 했다.
나도 비에 대비했다.
방수는 되지만 이 정도 비라면 곧 젖어버릴텐네.. 그래고 밤새 말려 뽀송해진 신발에 발을 집어넣으니 기분이 좋다.
타냐의 재킷도 금방 젖을 것 같아서 그 위에 판초를 뒤집어쓰고, 우산까지 펴 들고 알베르게를 나왔다.
'비니루 몸빼'는 입지 않았다.
입지도 않을 거면서 미련하게 계속 가지고 다닌다.
배낭 커버가 하나 더 있었지만 사이즈가 작아 침낭을 감싸는 용도로 밖에 쓸 수 없었다.
잃어버린 배낭 커버를 아쉬워하며 길을 나섰다.
곧 폰테베드라를 알리는 상징물이 나타났다.
순방향으로 왔다면 도시의 방문자를 환영하는 기념물이 되겠으나 내게는 '아 이런 게 있었네' 하고 이제야 내가 머물렀던 도시의 상징물을 보게 된다.
'싼티아고로 향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작은 마을의 골목으로 접어들자 비가 더 거세져 잠시 비를 피해간 들어간 곳은 아주 작은 (그야말로 오두막 같은) 교회였다.
다행스럽게도 문이 열려있었다.
빼꼼히 문을 열고 들어가니 벽에 걸린 작은 예수상만이 반길 뿐 아무도 없다.
종교는 없지만 내게 이곳의 예수상은 인상적이었다.
작지만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예수는 깡마르고 수척했다.
눈도 쾡하다.
그런 예수상이 측은해 보이는 한편으로 편하고 가까운 느낌이다.
어떤 고증을 거쳤는지는 모르지만 '예수'의 모습은 대체적으로 잘생긴 데다가 수염까지 멋진 남자로 그려진다.
거기다가 몸짱까지는 아니더라도 늘씬한 몸매의 소유자.
지금 흔히들 그려놓는 그의 형상은 너무 우월하다. 아무리 비주얼 시대라지만 비주얼이 너무 좋다.
가장 마지막으로 보았던 예수를 그린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만 봐도 배우가 너무 잘생겼다.
비주얼이 좋은 데다가 마음씨까지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게다가 돈도 많은..
세상 참 불공평하다.
낮은 곳으로 임했다는 예수.
'낮은 곳'이란 단지 하늘이라는 '높은 곳'에서 땅으로 내려왔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물리적인 '공간의 높고 낮음' 외에도 어떤 다른 차원의 높고 낮음 또한 포함하고 있을 것.
그래서 높은 곳에 존재하는 동시에 늘 우리와 함께 한다고 하는 게 아닐까.
신분도 낮은 사람으로 왔으며.. 아마 추측으로는 외모 또한 낮게(?) 오지 않았을까 싶다.
볼품없는 생김새에 키도 작고 왜소해서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을, 외모만 보자면 하위 1%.. 까지는 아니더라도 순위가 '낮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피부도 거칠고 머리는 조금 벗겨지고..
그리고 그는 불안과 갈등 속에 흔들리는 눈빛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게 옳은 길인지..'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신으로, 신의 아들로,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났음에도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겠지.
얼마나 불안했으면 40일 동안이나, 메세타는 명함도 들이밀지 못할 거친 광야로 나가 단식까지 하면서 묻고 또 물었으며, 결국 매달린 십자가에서 원망까지 하지 않았나.
낮게 옴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그런 사람, 다가가기 편한 사람..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날의 예수상이 조금 더 친근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문을 열어놓고 바라보는 비가 좋다.
빗소리도 좋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사과를 꺼내 씹어 먹으며 비를 감상.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친근한 예수상을 홀로 두고 교회를 나왔다.
빗줄기는 가늘어지고, 길은 점점 오르막으로 바뀌며 숲으로 이어졌다.
숲 속의 냇가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기 전에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었다.
한적한 숲 속의 다리임에도 예쁘게 만들어 놓았다.
흐르는 개울의 수량이 풍부하고 깨끗했다.
다리 끄트머리에 나타나는 싼티아고를 향하는 화살표.
제대로 가고 있구나.
다행스럽게도 이런 숲 속은 대부분이 외길이라 길을 잃을 염려가 없었다.
가끔 돌아보면서 나무 뒤에 숨어있는 화살표를 보며 재확인해보는 정도.
숲길이나 산길에서는 길 잃을 걱정도 내려놓고 마음 편히 걸을 수 있다.
반면 큰 도시일수록 길 찾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워진다.
숲을 빠져나와 언덕을 내려오니 포구 같은 마을이 나왔다.
강이 있고 그위로 다리가 놓여있고.. 강가에는 배들이 묶여 있다.
작은 포구의 느낌을 풍겼다.
강인지 바다인지 애매한 물가 곁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예쁜 마을이다.
역방향 화살표를 추적해가다 보면 큰길을 놔두고 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마을 구석구석을 순례하게 만든다.
'에이 귀찮아' 그냥 큰길 위로 올라섰다.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서 길가의 바르를 찾아들었다.
씨에스타 때문에 하마터면 문이 닫힐 뻔했는데 막 점심식사를 하려던 참인지 주인은 홀이 아닌 다른 방에서 나왔다.
열린 문틈으로 할아버지와 손녀가 식탁에 앉은 모습이 보였다.
가족과의 단란한 식사.
까페 꼰 레체 한잔에 비스킷으로 외로움을 달랬다.
창문에 그려진 크리스마스 장식이 이곳 날씨와 잘 안 어울렸다.
지금 한국은 무척 추울 텐데..
외롭지만 이곳은 춥지는 않아.
'장단점이 있어..' 하며 자위해본다.
점심식사를 방해한 것 같아 조금은 미안했지만 따뜻한 커피 한잔과 비스킷으로 잘 쉬었다.
드디어 이정표에 포르투갈 35km라고 나온다.
마치 '경기도 35km'처럼 이웃나라 이름이 아무렇지 않게 이정표에 적혀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국 35km', '러시아 35km'라는 이정표를 볼 수 있었으면.
포르투갈에 뭐라도 있는지, 자꾸만 마음이 스페인을 벗어나 포르투갈로 향했다.
하도 길을 잃어서 그랬는지 '파란 화살표'가 가득할 것만 같은 포르투갈이 빨리 나타나기를 바랬기에 이정표마저 너무 반가웠다.
왠지 포르투갈 전까지는 오르막이고 포르투갈부터는 내리막일 것만 같았다.
그 땅에 들어서기만 하면 더 이상 길 잃고 헤매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한쪽으로 강인지 바다인지가 펼쳐있고 밤섬 같은 작은 섬에 건물이 있다.
작은 섬에도 사람이 살고 있나 보다.
멀리 커다란 다리도 보였다.
다리 뒤로 바다도 보이고.. 레돈델라는 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그래서 포구의 분위기를 숨길수 없었나 보다.
큰길을 따라가다가 작은 길로 접어들었는데.. 다시 길을 잃었다.
길은 산동네로 이어졌고 화살표는 보이지 않았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았다. 가다 보면 다시 까미노와 만나겠지.
길도 종잡을 수가 없는데 날씨 또한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비가 내리다가 구름이 물러가더니 다시 해가 떴다.
돌아보니 노란 화살표는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무지개.
무지개는 '약속의 징표'라고 했는데..
'이제 더 이상 비는 없겠지요?'
아! 비가 아니고 홍수였지..
산동네를 무사히 빠져나와 레돈델라에 도착했다.
기억에 레돈델라의 알베르게는 도시의 한 복판에 있었던 것 같았다.
5 거리인지 6 거리인지 작은 교차로 근처에 있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기도 했고,
어서 파란 화살표가 넘치게 흐르고 있을 포르투갈에 가야겠다는 마음에 다음 마을인 '모스'까지 가기로 했다.
도시를 벗어나기 전에 마트에 들렀다.
진작부터 사고 싶었던 오트밀을 샀다.
타냐에게 배운 레시피대로 꿀도 사고 싶어 '허니 허니..'라고 점원에게 얘기했지만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해 하는 수 없이 메모지에 '벌'을 그려 보였더니 '아, 밀' 이라며 찾아준다.
하지만 큰 병에 든 것 밖에 없어서 사지는 못했다.
미친 배낭에 꿀단지까지 지고 갈 수는 없는 노릇.
교차로에서 어느 방향인지 헷갈려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레돈델라를 빠져나왔다.
도시를 빠져나와 한적한 길을 걷는데 계속해서 같은 소형차 한 대가 왔다 갔다 했다.
운전석에는 젊은 청년이 타고 있고 조수석에는 그의 아버지뻘 되는 아저씨가 타고 있었는데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아마도 운전 연수중인 부자지간 같았다.
차를 세워 길을 물을 수가 없었다.
다정하게 연수를 하고 있는 부자간의 분위기를 깨고 싶지도 않았고..
다정한 부자지간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인적 없는 길에 차도 없으니 운전 연습하기 좋겠다.
그만큼 한적했다.
도로연수장(?)을 벗어나서 곧 한 아줌마를 만날 수 있었다.
길을 물으니 계속 가던 방향으로 가라고 한다.
어차피 뽀리뇨까지는 N-550 도로를 따라서 가면 되니까 도로에서 멀어질라치면 다시 도로에 붙어 걸었다.
모르면 그 국도를 찾아 걷다 보면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모스'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이름이 모스라니, 왠지 군인의 느낌이 묻어나는 마을 이름이다.
마을 외곽에서부터 왠지 군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았다.
마을로 들어와 알베르게를 찾았다.
오래되었지만 깨끗한 알베르게의 문은 닫혀 있었고 맞은편 가게에 관리인이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맞은편 2층의 가게로 올라가 주인아줌마에게 5유로를 내고, 스탬프를 받고, 열쇠를 건네받았다.
열쇠는 내일 우체통에 넣어놓고 가면 된단다.
그냥 맡겨버리는 게 포르투갈길 스타일인가.
가게는 7시경에 닿을 것이라고 했다.
3층 건물의 2층이 알베르게이다.
1층의 문은 닫혀있고 건물 옆으로 난 계단으로 2층과 3층을 올라갈 수 있다.
2층으로 계단을 오르니 마을에서 좀 노는 장난꾸러기로 보이는 꼬맹이 몇이 계단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내가 올라가자 아지트를 빼앗겼다는 냥 뚱한 표정으로 내려가 버린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학교 교실보다 조금 작은 공간에 2층 침대 대여섯 개가 놓여 있었고 주방과 화장실 샤워실이 갖춰져 있었다.
아늑한 공간이다.
우선 한쪽 침대에 짐을 풀어놓고 우산을 말리기 위해 펼쳐 놓았다.
구석 쪽 벽에 난방을 조절하는 스위치를 발견!
젓은 옷과 신발을 말릴양으로 스위치를 모두 올렸다.
신발 속에 신문지를 구겨 넣고..
칸막이로 나눠진 주방을 뒤져보니 누군가 남기고 간 스파게티면이 있었고 소금, 올리브 유등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 저녁 메뉴는 스파게티.
문을 닫기 전에 가게로 달려가 양파와 계란과 과일 등을 샀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해서 널어놓고 면을 삶았다.
소스를 만드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여니 두 사람이 서있었다.
베르나(스위스, 69)와 줄리어스(브라질, 34)이다.
베르나는 나보다 작고 줄리어스는 키가 크고 건장한 체구여서 마치 키다리와 땅딸보 콤비 같았다.
오늘 뚜이부터 걷기 시작했다는 두 사람은 좀 힘이 들었나 보다.
알베르게를 독채로 사용할 것이라는 기대는 날아가버렸지만 어쨌든 '올라!'
그들도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 서로 그렇게 친밀해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이 방의 선배로서 시설을 설명해주고 원하는 침대를 선택해도 좋다고 인심 쓰듯 말해주었다.
그리고 스탬프를 받고 싶으면 늦기 전에 건너편 2층 가게로 가보라고 알려줬다.
스파게티를 형식상 권해보았는데 둘은 괜찮다며 사양했다. 다행이다.
그들은 내가 저녁을 차리는 동안 식당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
혼자 호젓한 저녁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끝내고 나니 그들이 돌아왔다.
줄리어스가 바르가 상당히 괜찮다고 했고, 베르나는 오늘 '엘 클라시코'가 있다고 하길래 얼른 샌들을 끌고 바르로 향했다.
엘크라시코란 스페인 프로축구팀 중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간의 전통적인 라이벌전을 일컫는 말이다.
그야말로 최고의 빅매치.
바르는 알베르게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있다.
아담하고 깨끗한 바르에는 손님이 몇 명 있었다.
TV가 잘 보이는 테이블을 골라잡고 맥주를 시켰다.
맥주 맛이 괜찮다.
다시 한번 감사한 게 우리나라 맥주 맛이 이랬다면 꽤나 마셨을걸.
혼자서 홀짝거리고 있었는데 베르나가 들어와 합석을 하더니 맥주와 감자칩을 시켰다.
하나둘 손님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금세 바르가 꽉 찬다.
그런데 손님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시간은 8시가 넘어서였다.
알고 보니 '엘 클라시코' 같은 빅게임은 밤 10시에 시작한다는 것.
아니 무슨 축구경기를 밤 10시에 시작하는 거야? 그렇다면 12시에 끝난다는 얘긴데..
그래도 알베르게 열쇠가 있으니 다행이다.
바르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샤를 응원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2002년 월드컵 같은 분위기로 시끌벅쩍했다.
사람들로 꽉 찬 바르에서, 그것도 로얄석에 앉아 달랑 맥주만 시켜놓기가 민망해 베르나가 맥주를 더 사고 내가 안주를 사기로 했다.
안주를 시키기 전 베르나가 '나는 뽈포는 싫다' 면서 대신 '까라마레스'는 괜찮다고 했다.
'까라마레스'를 시키라는 소리다. 애초에 내 선택권은 없었던 것.
'까라마레스'가 뭔가 했는데 나온 안주를 보아하니 꼴뚜기다.
꼴뚜기 튀김. 5.5유로. 생각보다 싸네.
고소한 꼴뚜기 튀김에 시원한 갈리시아 맥주, 거기에 엘 클라시코라니. 행복했다.
비록 그들의 홈구장인 '누 캄프'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직접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응원 열기가 가득한 스페인의 바르에서 본 엘 클라시코는 기억에 남아있다.
우리 앞자리의 젊은 남녀 커플 두 쌍은 '마드리드'를 응원했고 옆자리의 아저씨와 어르신들은 '바르샤'를 응원했다.
우리 편을 응원하고 서로 상대를 야유하기도 하며 플레이 일거수일투족에 환호와 탄성과 아쉬움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그들의 표정과 몸짓이 경기보다 재미있다.
결국 경기는 바르샤의 2:0 승리로 끝났고 젊은이들은 풀이 죽어서 바르를 나갔다.
축구가 끝나자 사람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스페인에서는 대부분의 식당이나 바르안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반드시 밖에 나가서 피우고 들어왔으며 과음을 하는 사람도 별로 보지 못했다.
맥주나 포도주, 또는 전통술을 적당히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길어지는 술자리 끝에 언쟁과 싸움이 잦은 한국의 술자리 문화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축구황제 펠레의 나라에서 온 줄리어스는 피곤했는지 축구를 보러 오지 않았다.
12시가 넘어 숙소로 돌아와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오늘은 알베르게에 나를 포함해서 모두 3명이다.
드디어 내일이면 포르투갈이다.
파란 화살표가 넘치고 꿀이 흐르고 있을 나 혼자만의 약속의 땅일 것 같은 포르투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