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기까지
그리 크지 않은 액수의 대출을 '보증'했다가 얻은 빚을 종자빚으로, 조금씩 굴리다가 어느 순간 이자내기도 벅차게 되었을 때 신용회복을 통해 겨우 청산했다.
'빚 청산'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사라진 후 직장생활은 쉽지 않았다.
퇴근 후 어느 가을날,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책상 위에 놓여져 있었다.
아마도 지저분한 아들의 책상을 치우다가 발견하신 엄마가 올려놓으셨을 것이다.
사진 속의 나는 천왕봉 표지석위에 걸터앉아 웃고 있었다.
20대의 한복판을 지날 무렵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강릉을 출발해 부산으로, 부산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제주에서 완도, 강진, 순천을 거쳐 구례로, 구례에서 자전거를 민박집에 맡기고 지리산을 올랐었다. 여행은 지리산을 내려와 남원, 천안을 거쳐 후배가 군복무하고 있던 연천에서 멈췄었다.
휴전선 때문에 후배의 면회를 끝으로 자전거를 집으로 돌려야만 했었다.
'언젠가, 그때 완성하지 못했던 나의 여행을 완성하고 싶다. 38선을 넘어 유럽까지...'
막연한 희망을 미련처럼 떠올리곤했다.
오래된 사진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무슨 의미인가'하고 곰곰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래,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오만가지' 중의 하나인 '해외여행'을 해보자!
엄마가 사진을 올려놓지만 않았어도... 모든 게 엄마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면 모든 대중가요의 노랫말이 자기 얘기가 되는 것처럼,
내게도 그런 것들만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다.
내 주변의 모두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있었다.
강호동이 1박 2일에서 하차의사를 밝혔고
서울시장이 투표율 미달로 시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으며
김성근 감독도 퇴출당하였다.
잡스도 마찬가지...
그들처럼 나도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를 그만두면 그래도 한두 곳의 거래처에서 '같이 일하자'는 연락이 오기를 은근히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조금 서운했다. 그렇게 살갑게들 지냈으면서.
'이번 기회에 모든 인연 끊어버리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며칠 동안 구인구직사이트를 뒤져보고 고용지원센터에도 들락거렸다.
그리곤 곧 후회했다.
'돌아오면 분명 알거질텐데, 42살에, 뾰족한 기술도 없는데, 그렇다고 집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돈은커녕 빚뿐인데. 아.. 구인구직사이트는 괜히 들여다봤어. 맘이라도 편하게 갔다 올걸...'
나는 호동이도, 전직 변호사였던 서울시장도, 야신도, 잡스도 아니었다.
그저 수많은 70년 개띠 실업자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여행을 준비했다.
첫 해외여행으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선택한 이유는 많지 않았다.
한국으로부터 가능한 먼 곳을 오랫동안 안전하게, 적은 돈으로 여행할 수 있는 곳, 게다가유럽이면 더 좋고.
어쩌면 까미노에 맞춰 그런 구실을 준비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풍경사이로 구불구불 끝간데 없이 이어진 길을 보고 있노라면 사진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싶었으니까.
서점이나 동네 도서관의 여행코너에서 접한 그곳은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여행지였다.
까미노는 주로 4개의 루트를 걷는다.
스페인의 북부지역을 걷는 '북쪽 길', 프랑스부터 시작하는 '프랑스 길', 스페인 남부에서 시작하는 '은의 길', 그리고 포루투갈부터 시작하는 '포루투갈 길'.
북쪽 길은 사람이 많지 않아 정보도 부족하고 숙소도 많지 않다.
은의 길도 사정은 북쪽 길과 비슷하다.
포루투갈 길은 정보도 많고 숙소도 충분하지만 다른 길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리가 짧았다.
프랑스 길은 거리도 꽤 길어 '오래 머무는' 조건도 충족시킬 수 있으며 정보도 많았고 숙소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도 많아 침대 쟁탈전까지 벌어진다.
다행히 내가 출발할 늦가을엔 한산해진다기에 프랑스 길로 결정을 했다.
프랑스 길의 경우 일반적으로 프랑스의 '생쟝 피드 포드'에서 출발하여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델라'까지, 약 800km를 걷게되며 대략 한 달 안팎이 소요된다.
그러니까 까미노를 걸으려면 퇴직을 하든, 휴가와 연차를 넉넉하게 사용할 수 있는 회사를 다니든, 방학이나 휴학을 이용할 수 있는 학생이든... 긴 시간이 필요하다.
출발은 퇴사 후 한 달 뒤로 잡았다.
일단은 좀 쉬고 싶었고, 쉬는 기간이 한 달 이상 길어질 경우 눈치가 보이고(회사를 그만둔 뒤로 아버지와의 대화는 단절되었다), 바로 가기에는 항공권도 너무 비쌌다.
두 달을 쉬게 되면 11월이 되고 그러면 현지에서 겨울을 보내야 했다. 추운 겨울에 여행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간은 생장에서 싼티아고까지 33일 , 피스테라까지 4~5일, 앞뒤로 3~4일, 최하 40일로 잡았다.
10월 31일 출발하면 카미노는 11월 2일부터 시작된다.
예정대로라면 12월 4일 싼티아고, 12월 9일 정도에 피스테라도착이다.
하지만 12월 23일 이전에 한국에 돌아오기는 싫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별것 아닌 이유로 '12월 23일까지는 한국에 없어야만 한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친구에게 서준 보증갱신일이 12월 23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보증으로부터 시작된 빚쟁이에서 겨우 막 벗어났거든.
보증을 피해서 해외 체류라니... 도피성 외유라니...
'친구야 미안하다. 나는 더 이상 돈도 잃고 친구도 잃기 싫다... 그냥 친구만 잃을래...'
그렇다면 피스테라 이후 남는 2주 동안은 무얼 할까, 포르투갈길도 걸어볼까...?
빚 청산 후 남은 전 재산 300만원 중 비행기표를 구입한고 남은 나머지 200은 환전했다.
100유로 5장, 50유로 10장, 나머지는 20유로, 10유로로 준비해서 목걸이 지갑에 여권과 함께 넣었다.
출발하기 4일 전, 유로화가 30원가량 더 떨어졌다.
'지금 환전했으면 6만 원 더 아끼는 건데..' 이런 생각은 정말 쓸데없다.
사람 피곤하게 만들고 여행에 부푼 마음도, 의욕도 갉아먹는다.
'환율은 괜히 들여다봤어.'
잊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동생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방수재킷, 매제에게 빌린 춘추용 침낭, 사촌동생에게 빌린 카메라, 샌들 등으로 '97년 산 써미트 60리터짜리 배낭을 채웠다.
'저 없는 동안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고 여행도 좀 다니세요. 그동안 제 뒤치다꺼리하시느라 고생하셨잖아요.'
하며 엄마에게 용돈이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엄마가 봉투를 주셨다.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쥐어주신 봉투에는 50만 원이 들어있었다.
'이건 정말 아닌 거 같은데....'
바로 은행에 입금했다. 해외인출 가능한 통장에.
이제 곧 떠난다.
설렘 10%, 두려움 10%, 후회 10%.... 그래도 후련함 138%?!
좀 더 낯선 곳으로 나를 '홱-' 내던진 기분이다.
출발 전날 엄마는 난생처음 나라 밖으로 나가는 아들을 위해 삼계탕을 해주셨다.
그러니까 모든 게 엄마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