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억할게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었기에 볼까 말까 하다가
지난주 목요일, 배송이 기적처럼 일찍 끝나게 되었고 마침 평일 무료 관람 쿠폰이 있었기에 극장으로 행했다.
회사 건물에 극장이 있었지만 쿠폰의 극장이 아니었기에 자전거를 타고 노원역으로 향했다.
겨울이었지만 그리 춥지 않은 저녁.
자전거 타기에도 좋았다.
오랜만의 '평일 극장행'이었다.
저녁 무렵 혜성이 떨어지는 장면과 도쿄 도심의 정경, 그리고 미츠하(?)의 고향 풍광이 아주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채로 묘사되었다. 남주인공의 이름이 '타키'라는 건 기억에 남았는데 여주인공의 이름은 '미츠하'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가물가물하다.
그래, 너의 이름은?
배경은 정말 화려하지만 인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동안 보지 않았던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역시 인물들의 캐릭터는 별로다.
워낙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캐릭터를 좋아해서 일본 애니를 거의 둘로 구별하곤 했다.
지브리 캐릭터 아니면 눈 크고 팔, 다리 긴 캐릭터(에반게리온 같은)가 나오는 애니.
비슷비슷해 보이는 훈남, 훈녀 캐릭터와 기타 등등으로 묶어도 별 무방한 주변 인물들.
'너의 이름은'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이돌들을 구분 못하는 세대라 그런 건지 타키와 미츠하는 물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감독의 의도였는지 모르겠는데 타키와 미츠하는 같은 얼굴에 헤어스타일만 바꾸어 놓은 것 같았다.
얼굴들이 기억에서 희미해져가고 있다.
반면 배경과 소품들의 묘사는 섬세하고 매력적이었다.
도쿄에도 가보고 싶고 둥근 호수를 중심으로 한 미츠하 마을에도 가보고 싶게 만든다.
타키와 미츠하와의 사이에는 3년이라는 시간 차이가 있다.
서로의 영혼이 교차되면 도쿄의 타키는 3년 전의 미츠하로,
시골의 미츠하는 3년 후의 타키에게로 옮겨간다.
꿈인 듯 몽롱하지만 정말로 리얼한 영혼의 교차는, 하지만 원 위치 되는 순간 조금씩 희미해져서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건은 기억하지만 이름은 기억에서 사라진다.
영화 속에서 타키의 시간이 현재인지 미츠하의 시간이 현재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영화는 3년이라는 둘 사이의 시간차를 마술처럼 동시간대의 '현재'로 합쳐지는 순간을 멋지게 묘사했다.
조금 헷갈리기도 하고... 기분이 묘해지는 순간을 만들어 준다.
참사가 비껴간 영화 속 '현재'는 사실 판타지속 공간이다.
남 일 같지 않은 그 날의 참사가 우리에게도 따라온다.
미츠하와 친구들이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필사의 몸부림을 칠 때,
'모두 제자리에 가만히 있어라'는 어른의 명령은 영화 속으로의 몰입을 방해하다가 이내 다시 영화 속으로 더욱 몰아넣었다.
조금 억지스럽게 전개되는 '마을 구하기 작전'은, 그렇게 우리에게서 아쉬움을 모면했는지도 모른다.
타키와 미츠하가 가진 이름의 의미는 아마 '좋아한다'는 감정을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이름을 써달라는 미츠하의 손바닥에 타키는 그렇게 썼었다. 좋아한다고.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사람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다.
캐릭터와 후반부의 촘촘하지 못한 전개 외에도 아쉬운 점은 신카이 마코토에게는 히사이시 조가 없다는 것.
음악이 너무 가벼워 초라한 느낌마저 들었다. 주제가가 나올 때면 TV용 만화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만든 줄 알고 보았더니,
극 중 주인공의 이름이 '마코토'일 뿐 감독은 호소다 마모루.
나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더 좋았다.
색채도 화려하지 않고 적당히 생략한 그림체가 부담 없고 편했다.
이야기도 담백하고 부드러웠다.
'너의 이름은'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신카이 마코토보다 호소다 마모루의 영화들은 찾아서 보고 싶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데 맑고 선선한 밤하늘에 선명한 반달이 떠있었다.
반달이 떠있는 현재가,
그 날의 안내방송이 '모두 신속히 대피하라'로 바뀌어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오보가 아니었던 세상의 연장이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