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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투 Jan 23. 2017

her

사랑이 뭐야?

*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요

* 사진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 왔어요


핑크빛 바탕에 콧수염남의 포스터.

원제는 'her', 즉 '그녀를', 혹은 '그녀의'인데 우리말 영화 제목은 '그녀' 다. 

헐.

하긴 영화 제목으로는 '그녀를' 또는 '그녀의' 보다는 '그녀'가 훨씬 맞춤하긴 하다.

그렇다면 감독은 제목을 굳이 'she' 라 하지 않고 왜 'her'라고 했을까?

해답은 포스터 속 콧수염 남자에게 있다.

'그'는 '그녀의' '그'인 것이다. 혹은 '그녀를' 위한 '그'이거나.

그녀 없이는 존재의 이유가 없는..  



이혼절차를 밟고 있는 편지 대필가 '씨어돌'은 새로 구입한 운영체제 '싸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영화는 아이폰의 음성인식 비서'시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했다. 

음성인식 기술이 처음 상용화되었을 때 아내들이 휴대폰에 대고 '원수!'라고 말한 뒤 남편들과 통화하던 때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곧 대중화될 것만 같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영화 속 무대는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미묘하게 지금과는 다른 거리감을 만들어 놓았다.

운영체제의 디자인과 미래 기기에 대한 디자인과 구현 방식의 세밀함이 자연스러움을 더했고,

무엇보다 배경 공간이 불러일으키는 나른한 느낌은 현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아주 미세한 이질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미래 같기도, 다른 세계 같기도.

시종일관 늦은 오후의 나른한 햇빛이 쏟아지는 영화 속 대기는 따뜻하지만 건조하고 삭막했다.

그래서 영화 속 사람들이 더 외로워 보였고 사랑에 목말라 보였다.

목소리만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스칼렛 요한슨은 과연...  

'음악을 본다'라는 표현처럼 영화 또한 '듣기도 하는 것'이었다.

씨어돌과 주고받는 대화에서 목소리만으로도 그녀의 표정이나 감정의 변화가 충분하게 잘 전달되어져서, 오히려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몰입되었다. 

물론 씨어돌을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를 보고 듣는 재미도 그녀 못지않았는데,

둘의 목소리 또한 건조해서 영화에 잘 어울렸다.

건조하면서도 참 담백했다.  



'인공지능'하면 아이로봇이나 터미네이터 시리즈처럼 인간과의 대결구도를 다룬 것들이 많은데, 이 영화에서의 인공지능 그녀'싸만다'는 인간과 교감을 나누다가 사랑에 빠지기까지에 이른다.

결국 자기가 한낱 운영체제에 불과하다는 것도 망각하고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만다.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을 한다고 해도 '사랑'이라는 복잡 미묘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데에는 버벅거릴 수밖에 없다.

'사랑이란 게 원래 미친 짓'이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았다.

하긴 사랑에 빠지면 물불을 못 가리지...



인간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차원이 다른 운영체제로 움직이는 로봇으로 볼 수도 있겠는데

이것들이 별 탈없이 잘 작동하다가 '사랑'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통제력을 잃고 만다. 

어쩌면 통제력을 잃고 물불을 가리지 못하는 상태가 오히려 온전한 것일지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 사람만을 바라보는 그런 상태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사랑은 점점 더 미쳐가고 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백신일 런지도 모르겠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버전에 따라, 혹은 상태에 따라 사랑이라는 프로그램은 바이러스가 되기도 하고 백신이 되기도 한다.


'영화가 재미있다'라고 하니까 동료직원이 '외로운가 보네. 그런 영화 재미있게 보다니...'라고 했다.

자기도 재미있게 봤다면서...

누구나 '그녀' 또는 '그'와 같은, 그런 대상을 필요로 할 만큼의 외로움을 갖고 살아간다.


나의 운영체제에게 '사랑'이 뭐냐고 물어보았더니 


                                                                               
라고 답한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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