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좋은건지 향이 좋은건지
추석 전에 주문했던 핸드드립이 도착했다.
하나씩 살까 고민도 했었지만 전문가도 아닌 내가 그런 생각 한다는게 사치스러웠다. 돈을 버리더라도 어쨌든 시작.
내 취향은 라떼에 시럽잔뜩. 그런데도 핸드드립에 관심이 있는 이유는 바로 은은한 원두향때문이다. 커피숍에 들어가면 묘하게 심신이 안정되던 그 푸근한 향.
그래서 분쇄해서 파는 수 많은 원두가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쇄기까지 샀다. 분쇄되어 마오는 그 향을 온전히 맡고 싶어서.
분쇄기가 무선인 줄 알았으나 선이 있는 걸 보고 아차 싶었다. 믹서기를 건전지로 돌릴 수 있다 생각한 내가 잘못한거지. 물로 청소하기가 어렵겠다. 구조상.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작지만 막상 내려서 마시는 데에는 별 지장 없더라. 내가 바리스타도 아니라 뭐 누구에게 서빙할 것도 아닌데. 그래도 사무실에 그윽하게 퍼지는 향이 참 좋다.
그 향. 나는 잘 모르겠는데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은 안다. 향이 참 좋다고. 나는 모르지만 누군가는 나의 좋은 점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쬐끔 기분이 좋아졌다. 아 물론 그건 내가 생생한 원두일때만 가능한 이야기이다. 어쩜 썩은 콩일수도 있지.
우유를 섞어서 마셨을 때의 참 좋은 기억때문에 자꾸 우유를 넣고는 후회한다. 무엇을 놓쳤는지 알 수가 없다. 원두의 탓인가? 따뜻하지 않아서 인가? 시럽이 필요한가?
차라리 아메리카노가 훨씬 좋다. 많이 내려서 마셨더니 신맛이 많이 나더라. 자주 가는 마카롱집에서 마셨던 아메리카노 생각이 난다. 좀 더 구수하면 딱이겠는데.
과테말라 안티구아는 지명이름이고 SHB는 재배되는 고도의 등급(제일 높은 곳)이다. 향이 좋다고 해서 샀는데 신맛도 풍부하다. 바디감은 묵직한 질감이라는데 내 혀는 무뎌서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뒷맛에 초콜릿 맛이 있다는데.. 정말 있는가?
천천히 향을 음미하면서 마실 수 있다는게 좋다. 그런데 원래 커피를 마시면 약간 갈증이 나는게 당연했나? 너무 진해서인가? 알 수가 없네. 다시 내려서 비교해 봐야겠다. 빨리 마시고 다음 원두로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