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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벗 Oct 24. 2016

성추행 스캔들

프로이드는 뭐라고 했을까?

프로이드는 성욕을 인간행위의 원초적인 욕망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걸로 인간의 행위를 해석해서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 나조차도 '리비도'라는 용어를 쓸 정도로. (정확하게 안다고는 말 못하겠다. 대학교양과목정도?) 그래서 그런지 '성'이라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님을 커가면서 아는 듯 하다. 내가 성인이 되어 그런가? (이봐, 成과 性을 구분해야지...)


욕심자체는 순수하다. 본능이기도 하고, 그것을 절제하려고 사람들이 교육을 받는 것이겠지. 그런데 이 욕심이 권력을 만나면 (또는 돈을 만나면.. 그것도 권력이네. 금권) 통제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문제가 일어난다.


성추행 성폭력.

남자들만 권력을 가진 게 아닐텐데 저런 언어들에는 늘 나오는 남자들. 뭐, 아직 힘을 가진 사람들이 남자들이 많기 때문이겠지. 괜한 생각이지만 여자도 이런 일 있을거다. 굳이 남여를 가르고자 함은 아니니 그것으로 고까워할 필요는 없겠다. 중요한 건 권력을 가진 한 사람이 다른 한 쪽의 성을 강제로 취하고자 함을 말하는 것이니.


요즘 들어 문학계, 예술계의 성추행관련 소식들이 들어온다. 시인, 소설가, 큐레이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그런 습성은 충분히 그럴만한 권력이 있기에 새삼스럽지는 않다. 그걸 밝힌 피해자가 오히려 대단한 거지. 사회속 감옥에 살 지도 모르는 어려운 결정을 한거다. 그 때문에 세상은 또 한걸음 변하겠지.


나는 '은교'라는 영화를 꽤 흥미있게 봤다. 음란하다기보다 일반적인 사랑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걸 쓴 작가가 아주 유명한 노작가라는 면에서 공감도 되었고, 그런 상상을 글로 (세속적이고 저질스럽지 않게) 잘 풀어냈다는 점에서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작가는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이 밖으로 나왔으니 문제다. 말을 떠벌이고 행동을 하고 다녔다면 그것은 또 다른 권력을 사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앞에서 바로 지적해 주는 현명하고 용감한 사람이 없었음을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겠다. 권력자가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참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꼴이 되는건가? 요즘 이런 남탓은 정말 신물나게 보고 있다.


다만, 여기서 드는 의문과 고민은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쓰레기인가 아닌가? 이다. 난 '은교'라는 영화를 참 좋아했는데 원작자의 문제가 드러나니 그냥 그렇게만은 읽히지 않는게 문제다. 차라리 모르는게 좋았을까? 이미 그 사실을 인지해 버린 나는 그게 쓰레기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소설가야 그런 소설을 쓴 마당이라 좀 더 비난을 받게 되겠지만, 그 시인과 큐레이터의 과거 행적은 어떻게 평가를 해야 하는 건지도 참 어렵다. 이게 마치 친일작가이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은 다 쓰레기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한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독립투사인 듯해서 얻은 그들의 플러스 평가를 깍아 내리는 것은 괜찮지만, 그렇다고 그 작품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마이너스를 주는 것도 아닌 듯 싶기도 하고.


괜히 이 지저분한 논쟁에 들어가는 게 아닌지. 옹호하면 나도 마치 비슷한 사람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비난하면 대중에 편승하여 함께 돌을 던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럴 땐 먼발치에 있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내 주위 사람에게라도 설명을 해야 하는 건지. (잉? 내가 뭐라고? 아무 연관없는데?)


실은 정답은 '그 입 다물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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