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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1장 소영 : 누군가가 내게 베팅을 하자고 한다면

by 올드한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건 지금으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꼰대들이 옹기종기 난로가에 모여 교직원으로서의 태도를 논하고,
나라의 인재를 배출하는 곳에 종사한다는 자부심 같은 걸
서로에게 확인하듯 주고받고 물고 빨고하는 그곳만 벗어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짧은 치마를 입고 지나갈 때마다 성희롱의 경계선 어딘가까지 기꺼이 다가오는 시선들.
그 선을 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무죄라고 믿는 얼굴들.


학교에 사직서를 던지고 온 오후, 혹시 밀려올 후회를 대비하듯 머릿속에서는 이미
이 결정에 근거와 논리를 부여하는 작업이 자동으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거야 원, 이라크를 공습한 부시 같네’

명분은 언제나 그럴듯했다.
대량 살상 무기, 테러 지원, 세계의 안전 같은 말들...


내 (부시와는 다르게 사실이 조금 섞인 )명분은 성희롱을 일삼는 꼰대 집합소 탈출.


그런데, 대량 살상 무기는 정말 있었던 걸까?

갑자기 궁금해진 소영은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었다. 이런 세계정세에는 통 관심이 없었는데도.

검색창에 대충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진짜?’ 라고 쳤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고,

후세인이 축출됐고,

미 군정 총독부 같은 게 세워졌고.

그런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또 하나.

같은 해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알카에다 자폭테러 실패.


소영은 뉴욕의 스카이라인 사진 앞에서 잠깐 멈췄다.

이상했다.


내가 아무리 시사에 무관심하다지만,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정도는 알고 있다.


뭐… 내가 잘못 알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보이저 2호가 지나치고 있는 행성이 명왕성인지 해왕성인지 천왕성인지 흘려 들었다.

누군가가 나서서 명왕성이 확실하냐고 베팅을 하자면 내가 걸 수 있는 금액은 2만원 정도이다.

그 이상의 금액에는 ‘도대체 무얼 위해?’ 라는 의문과 함께 기권할 생각이다.


사실은 보이저 2호인지 그냥 보이저호 였는지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사실도 인정한다.


소영은 열려있는 브라우저에 다른 창을 하나 더 열어 쓰레드에 접속해서 이렇게 게시물을 올렸다.


‘나 지금 뉴욕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 87층으로 막 사무실을 이전헀어. 이 건물에 한국 사람 많아?’

5분이 채 지나기 전에 답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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