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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2 장 소영 : 그것이 인격체이건 비인격체이건.

by 올드한


5분이 채 지나기 전에 답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와우! 저는 남쪽 타워 26층 썬 마이크로 시스템즈’에 근무하고 있어요!’

돌겠다 진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오라클에 인수된지가 언젠데.

내가 이래봬도 컴퓨터공학 전공이라고,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개발한 자바(Java)를 어제까지 가르쳤어.


‘나는 지금 북쪽 빌딩 106층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있어. 얼른 와. 같이 먹자.’

‘저는 같은 빌딩 70층 모건스탠리, 야근 중’

‘난 48층 일본제일은행. 내가 올라가도 저녁 사주냐?’

댓글이 금세 20개를 넘어 갔다.

어디서나 그렇듯 모인 사람들의 숫자가 좀 되면 친목이 시작된다. 나 빼고.


눈에 띄는 21번째 댓글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구나’


그래, 이거지. 20개의 댓글들은 장난이겠지.

쓰레드라는 건, 아마 ‘지금 달이 두 개 떴는데 나만 두개로 보이는 건가요?’ 라고

물어도 나를 응원하는 댓글들이 달리는 곳이야.


‘어? 그러네?’

‘달이란 원래 지 기분에 따라 하나일 때도 두 개일 때도 있어’

‘달이라니? 하늘에는 해만 있는 거 아니었어?’ 이러고 노는 곳이다.




21번째 댓글을 단 아이디가 22번째 댓글을 이어서 올렸다

‘글쓴이야. 거짓말도 작작해라. 나 87층이거든? 사무실 이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당신 때문에 괜히 87층 한 바퀴 돌았어.

닉네임 보니까 ‘아주 어린’ 학생 같은데 벌써 싹수가 노랗다’


21번째와 22번째 댓글은 합쳐서 한 줄에 쓰였으면 좋았을 것 같다.

21번째 댓글은 '사라진 빌딩으로 장난들 치지 말라'는 말인 줄 알았다.

결국은 나보고 미쳤다는 거였어.


붕괴 이전 두 빌딩들의 각 층에 입주해 있던 기업들을 검색해보니

댓글들과 다 일치한다.


‘Hello, So Young. I'm not Korean, but I'd like to be friends with you. I work on the same floor.

Welcome to this place -- where you shall taste both hell and heaven at the same time! '


헉. 이번엔 외국인의 댓글이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그래, 내 활동명 ‘너무 어린’을 그대로 번역기에 돌렸을 수도 있다.
어찌됐건, 본명이 드러나는 건 마음이 편안해지는 쪽은 아니다.


뭐야 도대체.


누가 얼마만한 스케일로 어떤 것을 공모했건 좀 색다른 재미가 있으면 좋겠다.

나라는 인간은 어디에도 가슴을 활짝 열어 젖히고 만끽하는 편이 아니니까.

그것이 ‘유쾌하지 않은 일련의 사건’ 이라도 이미 익숙한 것이라면 이내 흥미를 잃어

가슴을 닫은 채 나를 관통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 것도 내 실체를 맛보고 지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인격체이건 비인격체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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