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장 소영 : 다른 시간 대의 빛 아래에서는
요가복을 사야했다.
수련생으로서의 색채를 다 지워내고 지금부터는 유능하게 보이는 요가 코치로 보여야 한다.
가격이 좀 나가는 신상 요가 복 안에서는 마음가짐도 다소 바뀔 것이다.
소영은 큰 숄더백을 두르고 현관문을 나섰다.
완만한 비탈길 끝에 지어진4층짜리 빌라.
여기서 10년 째 살고 있는 중이다.
비탈길의 최고 지점에 지어졌다고는 하나, 해수면까지의 낙차는 20M 정도다.
숨이 가빠질 만큼은 아니다.
진짜 해수면이 있는 광안리 바다가 가까이 보이는 곳.
서울 강남에 자가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뿐이라는 말을 소영은 알고 있었다.
엄청난 성공을 했거나 원주민이거나.
광안리가 본격적인 휴양지가 되기 전 이 빌라를 싸게 얻었다.
프리미엄의 계속될 상승을 기대하는 입주자들은 여간해선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입주자들은 물론이고 입주자의 친인척이나 지인들 얼굴도 대강은 알고 있다..
주차장까지 걷는 거리에서 아는 체를 해야 하는 사람이 족히 열 명은 된다.
사람이 보이면 기계적으로 무턱대고 다 인사를 했다.
그런데 방금 인사를 한 대상이 정말 사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휙 스쳤다.
아니다,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사람치고는 너무 흉하게 생긴 사람을 스치고 지나온 것 같다.
누가 싹둑 잘라버린 것이 아닌가 싶은 다리 길이, 삐뚜름한 두상.
일상의 옷가지들로는 차마 다 가릴 수 확연한 차이.
반경 40km 내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상적인 것이었다.
어떤 이유로 갑자기 세워진 천하대장군 장승일까 , 아니면 옷을 입혀 놓은 불독이었을까.
평일 이 시간에 빌라를 나선 적은 손에 꼽을 정도, 더구나 근래에는 아주 없었다.
아주 익숙한 장소라도 다른 시간 대의 빛 아래에서는
커다란 낙차를 가진 이미지들로 즐비하게 채워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불독 같은 사람에게도 이 무렵의 시간대에 내가 지나가는 광경은
생소했을 것이다.
그래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하얀 콘크리트로 된 곧게 뻗은 비탈길을 걸어 내려갔다.
오래 전 그 사람은 이 길이 내 가르마 같다고 시를 읇듯 말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