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 장 소영 : 클리셰
무덤에 도착하는 순간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쭈뼛쭈뼛 도착할 것인가
42.195 킬로미터를 다 뛰고 너덜너덜 초주검이 되어 도착할 것인가.
나는 후자 쪽이, 한 번뿐인 인생을 살다 갈 내 영혼에 바치는 열렬한 경외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다만, 생이 한 번 뿐이라는 전제하에.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잘 닦인 아스팔트 길에서 갑자기 핸들을 돌려 울퉁불퉁한 오프로드로 막 들어선 참이다.
가야할 방향도 모르고 세부 지도도 가지지 못한 채로.
그냥 다른 길이 시야에 들어왔고, 그걸 선택했을 뿐이다.
아스팔트 대로 바로 옆 오프로드를 평행으로 달리는 위선적인 루트에는 관심히 없다.
차라리 밀림 깊숙이 들어 가고 싶은 마음이다.
가야할 방향은 내 무덤이 있을 곳. 그러나 그 위치는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한가지, 내가 지프 랭글러와 같은 오프로드용이 아니면 어쩌나 하는 염려는 있다.
나는 선택한다 그러므로 나는 너덜너덜 고생하며 존재한다.
내 묘비에는 이 문구가 적혀 있었으면 좋겠다
‘대단한 삶은 아니었지만, 우물쭈물 살지 않은 여인’
“일이 그렇게 됐네”
코딩이든 요가든, 가르치는 행위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If, Then, While.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되고, 그러는 동안에는 또 뭘 해줘야 하고 등등.
평화로운 날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아침.
기가 막히는 운명의 장난은 보통 이 두 단어로 시작 되곤 한다.
‘다음날 아침’ 혹은 ‘아침이 되자’
그 클리셰가 끝내 내게도 찾아 왔다.
“중앙 지부로 가줘야 겠어. 허 참.. 일이 그렇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