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2 장 나 : KBS1
내 몸은 단단한 결계로 결박되어 있었다.
간신히 움직이는 건 눈. 어쩌면 움직일 수 있겠다 아까부터 힌트를 주고 있는 입.
젖 먹던 힘을 다해 입을 열었다.
저 해괴한 존재가 땅속에 있었던 기간보다 더 오래 양치를 하지 않은 것 같은 지독한 냄새가 내 입에서 났다.
혀가 썩었나?
우선 ‘나’라는 존재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아직도 나임을 내게 알리는 작업에만 집중해야 한다.
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만이 정답인 것 같았다.
만약 답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했지만.
아무튼 누군가가 시키는 것처럼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밀려왔다. 누군가가 시키는 것처럼.
내 이름을 찾아야 한다. 내 이름을 크게 소리쳐야 한다.
순간 그 존재는 나를 짓밟기 위해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퍽’
끔찍한 고통이 온몸에 있었다.
배 안에 있는 모든 장기가 더듬이가 건드려진 달팽이처럼 수축되어 피난을 갔다.
배 안에 무엇이 있더라.
위장, 대장, 소장, 신장, 방광. 망가져도 어찌어찌 재생이 가능하거나 교체 가능한 장기는?
장기들이 동시에 경련을 일으켰고 폐가 일시적으로 작동을 멈췄다.
혈액에 산소공급이 중단되자 눈앞에 노란 나비들이 아지랑이를 타고 방안을 가득 나는 환각이 펼쳐졌다.
혀가 커져서 늘어졌다.
살아온 생애의 장면들이 50명 화상회의 스크린처럼 분할로 나뉘어 한 번에 보여주고 스쳐 지나갔다.
아~ 이게 옛사람들이 주마등이라고 하는 거였구나.
주책스럽게 눈물이 나는 것 같았다.
다른 이유는 없고 다만 남들과 같이 나도 주마등처럼 스칠 이래저래 괜찮은 과거가 있는 사람이었구나라는 것 때문에.
그중 무엇이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장면이라는 건 없었다. 그냥 그러고 지나갔다.
그 존재는 다시 한번 이륙을 준비했다.
이번 착지의 끝에는 반드시 내 주검이 있을 것이다.
그 생각에 이르자 나는 늘어진 혀를 삼켰다.
팔을 뻗어 가장 가까이 있는, 무게가 나가는 물건을 더듬어 움켜쥐고
성난 짐승 같은 표효를 내뱉으며 그 존재의 얼굴을 겨냥했다.
그 순간.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전화벨.
수신 버튼과 스피커가 움켜진 손에 의해 동시에 눌러졌다.
내가 집어 든 건 다름 아닌 휴대폰.
‘KBS 장희빈 틀어 주세요.
KBS1입니다. KBS1.’
‘엄마~~ 왜? 어디 아퍼? 밥은 먹었어?’
‘선생님, KBS1이요. 선생님.’
‘엄마, 나야 나. 선생님 아니구.
한이. 영한이. 김영한.’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치매 전에도 내 풀죽은 목소리 한 번이면 사고가 엉망이 되던 엄마를 위한 루틴.
지옥에서도 지키는 루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