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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한 Jan 28. 2023

1. 내게 주어진 그녀의 시간은 길지 않다

"이거 마셔봐"

"아이고 써라. 이게 뭐가 맛있다고 먹니?"


벌써 세 번째.

좀 전에 마신 아메리카노를 엄마는 마치 처음인 듯 또 조금 받아 마셨다.


실망과 불안 그리고 조금의 화가 밀려왔지만, 전체적으로는 슬픈 쪽의 감정이 내 가슴에 가득했다.

엄마는 5분 전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더러 있다. 약간의 치매.


'제발 정신 바짝 차리고 매사에 신경 좀 써봐. 넋 놓고 있지 말고’라는 애원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가끔 이렇게 해왔던 테스트도 이제 의미가 없어 보인다.


시간이 얼마나 허락할지 모르겠다. 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능력을 지속시킬 수 있는 시간이.




나는 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온통 할머니의 사랑 속에서만 보냈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는 엄마와 자식들 사이의 물리적 정신적 거리를 떨어뜨려 놓았고,  그 타이틀의 의미가 무색하게도 어린 자식들에게  엄마는 그저 여덟 명 대식구 그 구성원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멀리서 시집을 와서  나머지 식구들과 사뭇 다른 말투는 거리감을 더하면 더했지 좁혀 주는 기능은 하지 못했다.

공장의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는 또,  대식구가 주는 사역과 스트레스를  잠들기 직전까지 감내해야 했으므로 자식들과 오롯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은 요원했다.

그 속에서 엄마에 대한 자식들의 스탠스 역시 시댁식구였던 것 같다.




간혹 자투리 시간이 나면 엄마는 구석에서 뜨개질만을 했다.

그렇게 생산되는 윗옷들과 벙어리장갑들을 모두 탐탁지 않아 했지만 뜨개질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신세를 표현할 논리력이나 비유와 은유로  언어 속에 하소연을 실을 수 있는 정도의 교육을 받지 못했던 탓인지 엄마는 오로지 뜨개질에만 몰두했었다.  

마치 악령을 쫓는 굿판이 벌어진 듯 쉴 새 없는 손놀림을 따라 실타래 뭉치가 바닥에서 바쁘게 춤을 췄었다.




그런 안쓰러운 며느리의 손을 잡아 주며 할머니는 늘 마음 아파하셨다.

할머니는 내게도 그랬지만 엄마에게도 하늘이었다.


할머니 돌아가시던 날. 엄마는 ‘저는 이제 어째 살라고요’를 끝없이 반복하다 실신했고 며칠 상간으로 돌아가신 외할머니께는 가지 못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엄마는 많이 울지 않았지만 이후 아주 조금씩 총기를 잃어 가는 듯했다. 내 눈에는 서로를 아무렇지 않아 하는 옛날 부부로 보였는데 어쩔 수 없는 이 세상 단 한 번의 사랑이었음이다. 시어머니 장례 때처럼 대놓고 오열하고 실신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자식들에 대한 거리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남은 진짜 자기편을 여윈 불안으로 인한 주의 깊은 상태였다고 할까.




얼마 있다 나는 먼 타지에 직장을 구해 덤덤히 엄마를 떠났다.

짐을 싣고 차에 오르는 내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비비는 모습을 보며 한 없이 안타까웠다.

다른 흔한 모자간의 이별은 이런 모습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자기 손으로 직접 키우지 않은 아들의 감정에 대한 자신 없음이 한번 안아 보는 것도 주저하게 만들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명절이면 고향에 남은 친구들을 만나러 내려갔다가 잠시 엄마를 보고 오곤 했다.

손 한번 잡아 주지 않고 바쁘게 떠나려던 어느 명절날,  차의 사이드미러를 통해 비친 엄마의 모습에 나는 끝내 무너져 버렸다.  두 손을 앞으로 향한 채  울먹이며 느린 달리기로 내 차를 따라오는 모습.


이 못나고 냉정한 아들 뭐가 그리 귀하다고. 


‘난 당신의 그리움이기에는 너무나 모자란 아들이에요. 그래서 나는 나를 향한 당신의 그 애틋한 슬픔에 동조할 자격이 없어요. 하지만 당신을 깊이 사랑합니다’


차를 멈추고 뛰어가서 엄마를 처음으로 안았다.

여느 모자간과 같이.

죄스러운 날들이 속절없이 너무 많이 지나버린 뒤에야 비로소. 도대체 왜.


실타래에 실려 춤추던 악령은 그렇게 소멸했다. 





아메리카노를 손으로 밀어내며,  앞에 있는 녹차라테 잔을 발견하고는

"어? 이거 언제 시켰어?"라고 물어 왔다.  

맛있다고 이미 절반 가량 마신 후 엄마의 질문.


"이제 막 시켰지.  이거 좋아하잖아. 내가 먼저 좀 마셨어"

"그래 아들도 달달한 거 마셔.  그런 쓴 거 먹지 말고"

"이건 배운 사람들이면 먹어야 하는 거야. 공부 많이 하고 나면 이게 이상하게 맛있어져.

그니까 엄마도 뭐 좀 배워 봐"




다시 작별의 시간.

엄마는 작은 돈 봉투 하나를 내 손에 꼭 쥐어 주었다. 올라가다 커피 한 잔 사 먹으라면서. 


차마 같이 타고 올라가자는 말은 못 한다. 

방의 한가운데서 손을 뻗으면 사방 벽이 다 닿을 듯한 현재의 숙소를 들킬 수는 없었다.


"이거 회사 차야. 직원들이 다 타고 나가서 이번엔 똥차 몰고 왔어.  내 차는 아껴 타려고 고이 모셔 놨지. 비싼 차거든"이라는 내 말에 엄마는  "회사 차 막 타도 돼?  전에는 안된다고 했잖아" 라며 의아해했다.


전에는 안된다고 했었지.  그 말은 왜 기억하는 걸까...





다섯 시간을 운전하고 돌아온 숙소.

TV 드라마 장면에서 작은 밥상을 차려 함께 식사하며 깔깔대는 엄마와 딸의 모습을 보다가

아까 받은 봉투를 열어 보았다.

여태  몇 년 동안 받은 용돈의 총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액수의 수표 한 장.  오만 원짜리 한 장인 줄 알았는데...


봉투에 얼굴을 묻고 울고 또 울었다.




잘 속여 왔고 앞으로도 거뜬히 속일 수 있다.

성공했고 행복하고 건강하다고.


엄마의 전화를 한 번에 받지 않는다.

성공했고 행복하고 건강한 목소리를 잠시 연습해야 하니까.


내게 주어진 그녀의 시간은 길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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