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드한 Mar 04. 2023

일상 : 쌈박질

녀석이 세 번째 선을 넘지 말기를 거듭 기도했다.

그 선을 넘어온다면 나는 아까부터 만지작 거리던 왼쪽 주머니에 있는 피스톨을 꺼낼 것이다.




남자들의  대화 속 기저에 진정으로 깔려 있는 폭력성.

그 폭력성이 주는 신체적 위협은 남자들이 한동안 교양 있게 대화할 수 있게 하는 도구다.


최선의 방법은 평화를 위해 협상하는 것.

그러나 대화를 통한 협상이 불가하다면 남은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로는  백기를 들고 항복하는 것.

두 번째는  폭력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내가 먼저 시작할 수도 있는.

세 번째는 없다.  세 번째부터는 문명화된 것인데 그런 건 당장의 대안에 넣지 않는다.  





온 생애를 거쳐 폭력을 먼저 시작해 본 적은 없었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 그 이후의 상황이 너무 번거롭고 한심하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목격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당하기만 하는 피해자가 되기를 가꺼이 선택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후의 상황처리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넉넉하지 않지만 물어줄 개값도 있고,  멘탈도 이미 너덜너덜하니 더러운 도랑물에 오줌 한 방울 더 섞인다고

달라질 건 없다.


오른팔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전 대화가 험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신경이 쓰였다.

요사이 심한 근력운동으로 인해 오른쪽 회전근개가 파열되어 있다.

내가 왼손잡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왼손으로 싸대기를 날리자

녀석이 발길질을 시작했다.


시답잖은 뒤돌려차기.

태권도의 병폐다.

뒤로 도는 순간 시선은 동체를 놓치고 만다.

맞으면 맞고 아니면 말고 식의.


거리와 스냅이 딱 떨어지지 않고서는 좀처럼 통증을 주지 못하는,

 그저 신발의 흙만 상대에게 선사하는 태권도의 킥.


어릴 적 나도 얼마나 저걸 많이 했었던가.

이 정도의 발차기를 하는 수준이면 무예의 경지가 상당하니 덤빌 생각 말아라는 쇼윈도우 공격. 


녀석의 착지를 기다렸다가, 오른손 훅을 녀석의 왼쪽 얼굴에 꽂아 넣었다. 사력을 다해서.




[이 정도면 최소한 드러눕겠지]



눈탱이나 치아, 관자놀이를 피해서 광대뼈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나는 장관배 오픈 탁구 대회에서 3등을 할 만큼 준수한 동체시력, 


즉 움직이는 물체를 정확히 타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녀석은 중심을 잃는 듯하다 곧 수습하고 또 덤볐다.


햐... 이 새끼가....


6개월 만에 오른손을 쓰니 어깨 통증이 상당했다.



그 난장판을 치르고 집에 돌아와 누운 베개 위.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럽기도 하고,

 더 패 주지 못해 분하기도 한 감정으로 범벅이 되어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뜯어말려진 직 후 누군가가 내게 해 줬던,

‘용기 있는 지성’이라는 말과 [어깨만 괜찮았어도]에 위안을 받으며 잠을 청했다.



다음날.

주먹이 퍼렇게 부어오르다가 갈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손이 이지경이 되었는데도 벌떡 일어서던 녀석의 모습이 떠올라 괴로웠다.

내 육체의 강함은 언제나, 내 영민함과 정의로움을 따라오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이 기억이 또 언제까지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힐까 정말이지 걱정이다.







작가의 이전글 시 : 월급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