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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한 Apr 11. 2023

직접 겪은 괴기한 이야기 중 일부 #2

나는 뒷좌석 깊숙한 곳으로 몸을 파묻고 택시 라디오에서 나오는 FM방송의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교외를 향해 달리는 택시 안에서 듣기에는 과하게 장중한 음악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외국인이라고 라디오 채널을 클래식 방송에 맞춰 준 것 같았으나 그 저녁이라면 오히려 광둥어로 된 경쾌한 로컬 가요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라디오를 꺼 달라고 하려다 룸미러에 들어온 운전기사의 날카로운 눈매를 보고는 바로 포기했다.          

아무래도 뭔가가 계속 은근하게 걸리는 밤이었다.  

     

운전기사는 잊지 않으려는 듯 간간히 그 호텔이름을 되풀이하며 입 밖으로 내뱉었다. 마치 그 이름에서 중요한 단서를 찾는 것처럼. 꺼림칙한 기억이 있는데 그게 무었이었을까 떠올리려 애쓰는 것처럼.      

 

이름은 호텔 클OOO. 이렇게 이름을 거론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 이름은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져 있는 기억을 낱낱이 풀어헤쳐 다양하고 불길한 구성품들을 쏟아 놓는다. 그러면 내 온몸 구석구석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겨드랑이 부분이 축축해지고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며 몸에서 불쾌한 냄새를 생산한다. 그러면 몇 번이고 고개를 저어 그 이름을 머릿속에서 흩날려 버려야 한다.     

 

도심의 불빛이 마지막 하나까지 완전히 사라지고도 인적 없는 비포장도로를 한참을 더 달린 후 마침내 멀리 호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도심 통근권은 몇 십분 전에 이미 벗어났다.          

 

고향에 있는 어느 종합병원 건물과 같은 모양 같은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호텔과의 거리가 택시의 요금미터기에 맞춰 착착 좁혀질 때 택시가 건물에 접근한다기보다 건물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착각일까. 

자 이제 우리 재미있는 일 한번 만들어 볼까’하며 의자를 당겨 앉는 취조실의 고문을 즐기는 형사처럼.  잡혀온 사람은 재미없는 꼴을 당할 것이 뻔한.               

운전기사는 클래식 음악의 클라이맥스 카덴차 부분에 맞춰 네 손가락으로 핸들을 다다닥 두드리고 있었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 카덴차 : 악곡이나 악장의 마침 직전에 연주자의 기교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구성된 화려하고 자유스러운 무반주 부분 ]          

다 왔으니 운전에 집중하던 신경을 좀 놓은 걸까. 어쩌면 내게는 말해 줄 수 없는 중요한 단서를 이미 찾았을 수도 있다. 그러고 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여러 표정들 중에서 신중하게 하나를 골랐을 수도 있다.  

자! 이제 평범하지 않은 일이 벌어질 거예요. Enjoy yourself!’  

로또 1등에 걸린 승객을 당첨금을 지급하는 은행본점 앞에 내려줄 때의 표정이 아마 저런 것일 것이다는 생각을 했다. 남의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자기가 적잖은 역할을 해냈다는 표정.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자 택시는 필요이상으로 많은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다급하게 떠났다.

            

루마니아 혹은 불가리아의 어느 해묵은 숲에 있는 오래된 성인 듯 호텔은 급한 비탈길을 다 올라선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낭떠러지 말고는 있을 것이 없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이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이쪽으로는 여기가 세상의 끝입니다라는 이정표 역할을 기꺼이 맡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첫 번째 역할은 숙박업이겠지만. 

높은 곳에서 내려다봐도 주변에 이렇다 할 이웃될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조망권을 누리기 위해 이런 곳에 호텔을 건축했다면 확실하게 판단미스다.

 

밤공기는 폐가 시릴 만큼 깨끗했고 누가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소음은 내 행동에 주의를 요하고 있었다.     

이미 주차장을 차지하고 있는 몇몇 차량들이 다소 안심을 주었지만 사람들의 출입은 없었다. 뭐 이러다가도 아침이면 사정이 크게 달라져 많은 사람들이 로비를 채우고 있겠지.

      

로비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전 현관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혹 망령들이 그 안쪽을 거닐고 있으면 그 길로 냅다 튀기 위해.

여자 직원 한 명이 중국전통 의상인 파란색 치파오를 입고 손님을 기다리며 데스크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치파오. 청나라 만주족의 복식이다. 당 송 명대의 어느 복식도 저렇게 매력적이지는 않다. 원래는 저렇게 몸의 굴곡을 심하게 드러내지는 않았겠지만.       

그 한 명의 여자가 분명 사람인지 시간을 두고 꼼꼼히 관찰한 후 합격점을 주었다. 딱히 결점은 없었다. 외모가 너무 보기에 좋다는 것만 빼면.


장식을 철저히 배제하기로 뚝심 있게 결정한 로비였다. 벽에는 그림 한 점 걸려 있지 않았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는 보기보다 쉽지 않다.  

주요 도시들의 시간을 알려 주기 위한 몇 개의 벽시계들이 전부. 뉴욕, 파리, 도쿄. 서울은 없다. 한성이 있다. 한성? 이런이런 이건 좀...     

장식이 있다면 여느 호텔과는 성분이 좀 묘하게 다른 공기와 기압이라고 할까. 

그런 거 어디서 파는 것일까?   

 

“좋은 저녁입니다. 근사한 호텔이네요.”     

“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너무 외딴곳에 위치해 있죠. 죄송합니다.”     

내 상투적인 인사를 받은 호텔의 여자직원은 하자 없이 인사를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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