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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한 Apr 14. 2023

직접 겪은 괴기한 이야기 중 일부 #3

“좋은 저녁입니다. 근사한 호텔이네요.”     

“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너무 외딴곳에 위치해 있죠. 죄송합니다.”     

내 상투적인 인사를 받은 호텔의 여자직원은 하자 없이 인사를 돌려주었다.   

목깃에서부터 가슴까지 걸쳐 있는 용문양이 그녀의 발성에 맞춰 꿈틀댔다. 

   

불과 두어 시간 전 택시에 오르기 전까지 세계는 내게 앞뒤가 들어맞는 익숙한 곳이었다. 비록 그곳이 중국의 어느 공항이었대도 여전히 모순되거나 이질적인 세계와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택시를 탄 이후부터 조금씩 낯설어지고 있다. 꿈틀대는 용문양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호텔직원의 보랏빛이 도는 립스틱과 표정이 결여된 목소리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이상의 친밀한 대화는 거부한다는 듯 높낮이 없이 한 음으로만 구성된 영어 억양. 두 음이었나?       

   

저 말을 돌려줄 때는 분명 웃는 얼굴이었는데, 자기가 가진 수분의 삼분의 이를 그 말에 실어 보냈는지 이내 건조한 표정으로 돌아간 것을 목격했다.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의 루비는 이제 막 누군가를 할퀴고 튄 한 방울의 피 같았다.

“죄송하긴요. 그쪽 잘못이 아닙니다. 여기에 호텔을 지은 데는 다 그럴만한 연유가 있었겠죠.”     

“어쨌거나요.”     

너무 아름다우십니다라고 말하려 하는 내 입술을 사력을 다해 저지했다.

‘At any rate’ 한국말로 하면 ‘어쨌거나’라는 무례한 말이다.

저런 무례에 아름답다는 말을 하는 게 가당키나 하나.


아무도 모르게 고개를 두 번 젓고 돌아 서서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여기에 이미 머물고 있는 그 한국 직원을 빨리 만나 한국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의 카메라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으로 내가 여기 왔다 간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무릇 세상엔 별의 별일이 다 있으니까 혹시 발생할지 모를 파탄을  대비한 기록의 차원에서. 

         

그 직원은 잠들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이나 됐어요?  여기 묵기 시작한 거.”     

“저도 어제 왔어요.  아니 오늘 새벽이라고 해야 하나. 오랜만에 왔다고 여기 공장 직원들과 새벽까지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시는 바람에 날이 다 밝은 후에...  아무튼 그렇게 됐습니다. 에이 아시잖아요.”          


알긴 뭘 알아. 난 당신이 밖에서 보낸 밤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어.     

조금 전의 반가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한심해 보임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그 직원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아 숙소를 공유하는 것에 문제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자기가 코를 심하고 골고 몸부림도 많이 치니 양해를 부탁한다는 언급이 있었다. 나중에 합류해 방을 얻어 쓰는 내 입장을 고려해 보면 양해를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은 없었을뿐더러 나 역시 잘 때 끙끙 앓는 버릇이 있어 퉁 칠 수 있으니 그의 잠버릇이 오히려 반갑게 들렸다.     

그가 냉장고에서 꺼내 온 캔 맥주를 하나씩 나눠 마시며 회사를 걱정하는 대화를 짧게 나누고 잠에 들었다.           

호텔방과 침대는 나쁘지 않았다.   

 

쿵 쿵 쿵 쿵 

         

침대가 격하게 요동치는 느낌이 있어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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