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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인 Feb 10. 2020

브라보 마이 라이프 01

벌써 20년!  달고 쌉쓰름한 자영업분투기 02


사실 성급하고 싶어서 성급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신중하고 싶어 하고 실수할까 봐 내내 불안하다.

빨리 돈을 벌어야 하고 사정이 급할수록 성급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가장 느긋해야 하는 순간에 마음이 급해진다.

    

사업 공부를 하면서 만났던 꼬치구이 프랜차이즈 본사 사장님의 이야기이다.

이 사장님 본인도 큰 사업을 운영하다가 (우리 주위엔 큰 사업 하다 망한 아저씨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꼬치구이를 주 아이팀으로 하는 작은 프랜차이즈 본사를 창업했다고 했다.      

프랜차이즈 본사라고 하면 돈이 많고 큰 회사일 것 같은데 실상은 본인이 프랜차이즈 지점을 낼 돈은 없고 아이디어는 있을 때 주로 이런 일을 기획하는 것 같았다.

작은 사무실에 경리 겸 전화받는 직원 하나 두고 자신은 봉고차로 이런저런 재료들을 직접 배달 다닌다고 겨우 먹고 산다고 했다.      


본사가 영세하니 아이디어도 자그마했다.

주로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천 원 이천 원하는 고기 꼬치를 팔았던 것 같은데  당시 초등학생 둘을 키우던 나도 어디선가 한두 번 본 듯도 먹은 듯도 한 아이템이었다.

큰 가게도 필요 없고 복잡한 주방 장비도 필요 없어서 그야말로 작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어머... 사장님 아이템이 참 좋으세요.

가맹점도 많고 요새 사업할만하시겠어요 호호..

자영업의 바다에서 함께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장들을 금세 친해진다.

아닙니다.. 너무 힘들어서 마케팅적으로 어떻게 풀어본까 없는 돈에 공부하러 다닙니다.

사장님은 힘없이 대답했다.     

잘 나가는 사람이 없는 척을 할 때와 진짜 어려운 사람이 장탄식을 할 때

사장들은 서로 얼굴빛만 봐도 안다.

장사가 잘될 때는 밥 대신 숭늉만 마셔도

한우 열 근을 씹어 먹은 광채가 나는데 매출이 떨어질 때는 그 반대다.


세끼 꼬박 챙겨 먹어도 헛헛하고 보기에도 딱할 정도로 기운이 없다.

그 사장님이 딱 그랬다.      

사정을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런 종류의 영세한 꼬치집 프랜차이즈 매장은 사실 이런저런 프랜차이즈를 전전하던 사장들이 다 들어먹고 마지막으로 500에서 1000 정도의 남은 돈 박박 긁어 시작하는 가게라고 했다.      

프랜차이즈 사업의 이면은 들을수록 기구하고 서글펐다.


퇴직금 조금과 알량한 아파트 대출금을 금쪽처럼 손에 쥐고 남은 여생을 꼭 그 돈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수많은 중년 부부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나 많다

그 부부들의 금쪽을 노리는 프랜차이즈 본사들의 유혹도 만만치 않아서,

그러니 경험도 없고 마음만 급한 자영업 초보 사장님들은 코엑스나 킨텍스 등에서 열리는 ‘창업박람회’ 한두 번 둘러보고는 

성급하게 마음을 정한다.           

요새는 너무나 흔해진  '** 창업박람회'는 실상을 알면 알수록 중년 인생 2막 내리막길 창업 스토리들의 넓은 야바위판 같은 곳이다.      


그들이 어떤 중년들인가.

평생을 기백만원 월급에 묶여 살았던 중년 아저씨들이었다.

친구들이 사업해서 한 달에 수천을 땡긴다느니 누구는 사업체 저절로 굴러가고 그 수익으로 애인 끼고 놀러나 다닌다느니

골프 치는 게 지겨워서 조용히 지내려 낚시로 취미를 바꿨다느니각종 모임에서 들려오는 자영업 친구들이 찬란한 성공기를 듣고도 못 들은 척 부러워도 관심 없는 척 그렇게 쓴 속을 달래며 살아온 수십 년이었다.    

  

하지만 안 부러운 척한 것이지

아예 그렇게 살아보고픈  마음이 없는가? 천부당만부당이다.

토끼 같았던 자식들은 어쩌다 고개 돌려 다시 보니 호랑이만 하게 자라 있고

봄바람 향기 같던 여자 친구는 애 한둘 낳더니 넓적한 가구처럼 집에 틀어 박혀서

돈 노래를 메들리로 불러댄다

그런 수십 년을 살려니 매달 들어오는 알량한 기백만원의 월급이라도 갖다 바쳐야

그 호랑이 입에 밥도 넣고 돈 노래 부르는 가구도 달래 가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니 감히 직장 때려치우고 나도 자영업 해볼까? 이런 용감한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당장 토끼가 둔갑한 호랑이와 가구처럼 용맹한 마누라가 우린 어쩌라고? 노래를 합창할 것이다.


그런 기막힌 세월을 보내온 중년들에게

인생의 마지막 만루 홈런을 준비할 기회가 온 것이다.

나라고 맨날 볼보이만 할 것인가.

내가 나서지 않아서 그렇지 이거 왜 이래

이래 봬도 내가 우리 동네 4번 타자였어. 다 죽었어.     


(브라보 마이 라이프 02편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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