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달고 쌉쓰름한 자영업분투기 02
사실 성급하고 싶어서 성급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신중하고 싶어 하고 실수할까 봐 내내 불안하다.
빨리 돈을 벌어야 하고 사정이 급할수록 성급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가장 느긋해야 하는 순간에 마음이 급해진다.
사업 공부를 하면서 만났던 꼬치구이 프랜차이즈 본사 사장님의 이야기이다.
이 사장님 본인도 큰 사업을 운영하다가 (우리 주위엔 큰 사업 하다 망한 아저씨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꼬치구이를 주 아이팀으로 하는 작은 프랜차이즈 본사를 창업했다고 했다.
프랜차이즈 본사라고 하면 돈이 많고 큰 회사일 것 같은데 실상은 본인이 프랜차이즈 지점을 낼 돈은 없고 아이디어는 있을 때 주로 이런 일을 기획하는 것 같았다.
작은 사무실에 경리 겸 전화받는 직원 하나 두고 자신은 봉고차로 이런저런 재료들을 직접 배달 다닌다고 겨우 먹고 산다고 했다.
본사가 영세하니 아이디어도 자그마했다.
주로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천 원 이천 원하는 고기 꼬치를 팔았던 것 같은데 당시 초등학생 둘을 키우던 나도 어디선가 한두 번 본 듯도 먹은 듯도 한 아이템이었다.
큰 가게도 필요 없고 복잡한 주방 장비도 필요 없어서 그야말로 작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어머... 사장님 아이템이 참 좋으세요.
가맹점도 많고 요새 사업할만하시겠어요 호호..
자영업의 바다에서 함께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장들을 금세 친해진다.
아닙니다.. 너무 힘들어서 마케팅적으로 어떻게 풀어본까 없는 돈에 공부하러 다닙니다.
사장님은 힘없이 대답했다.
잘 나가는 사람이 없는 척을 할 때와 진짜 어려운 사람이 장탄식을 할 때
사장들은 서로 얼굴빛만 봐도 안다.
장사가 잘될 때는 밥 대신 숭늉만 마셔도
한우 열 근을 씹어 먹은 광채가 나는데 매출이 떨어질 때는 그 반대다.
세끼 꼬박 챙겨 먹어도 헛헛하고 보기에도 딱할 정도로 기운이 없다.
그 사장님이 딱 그랬다.
사정을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런 종류의 영세한 꼬치집 프랜차이즈 매장은 사실 이런저런 프랜차이즈를 전전하던 사장들이 다 들어먹고 마지막으로 500에서 1000 정도의 남은 돈 박박 긁어 시작하는 가게라고 했다.
프랜차이즈 사업의 이면은 들을수록 기구하고 서글펐다.
퇴직금 조금과 알량한 아파트 대출금을 금쪽처럼 손에 쥐고 남은 여생을 꼭 그 돈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수많은 중년 부부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나 많다
그 부부들의 금쪽을 노리는 프랜차이즈 본사들의 유혹도 만만치 않아서,
그러니 경험도 없고 마음만 급한 자영업 초보 사장님들은 코엑스나 킨텍스 등에서 열리는 ‘창업박람회’ 한두 번 둘러보고는
성급하게 마음을 정한다.
요새는 너무나 흔해진 '** 창업박람회'는 실상을 알면 알수록 중년 인생 2막 내리막길 창업 스토리들의 넓은 야바위판 같은 곳이다.
그들이 어떤 중년들인가.
평생을 기백만원 월급에 묶여 살았던 중년 아저씨들이었다.
친구들이 사업해서 한 달에 수천을 땡긴다느니 누구는 사업체 저절로 굴러가고 그 수익으로 애인 끼고 놀러나 다닌다느니
골프 치는 게 지겨워서 조용히 지내려 낚시로 취미를 바꿨다느니각종 모임에서 들려오는 자영업 친구들이 찬란한 성공기를 듣고도 못 들은 척 부러워도 관심 없는 척 그렇게 쓴 속을 달래며 살아온 수십 년이었다.
하지만 안 부러운 척한 것이지
아예 그렇게 살아보고픈 마음이 없는가? 천부당만부당이다.
토끼 같았던 자식들은 어쩌다 고개 돌려 다시 보니 호랑이만 하게 자라 있고
봄바람 향기 같던 여자 친구는 애 한둘 낳더니 넓적한 가구처럼 집에 틀어 박혀서
돈 노래를 메들리로 불러댄다
그런 수십 년을 살려니 매달 들어오는 알량한 기백만원의 월급이라도 갖다 바쳐야
그 호랑이 입에 밥도 넣고 돈 노래 부르는 가구도 달래 가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니 감히 직장 때려치우고 나도 자영업 해볼까? 이런 용감한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당장 토끼가 둔갑한 호랑이와 가구처럼 용맹한 마누라가 우린 어쩌라고? 노래를 합창할 것이다.
그런 기막힌 세월을 보내온 중년들에게
인생의 마지막 만루 홈런을 준비할 기회가 온 것이다.
나라고 맨날 볼보이만 할 것인가.
내가 나서지 않아서 그렇지 이거 왜 이래
이래 봬도 내가 우리 동네 4번 타자였어. 다 죽었어.
(브라보 마이 라이프 02편에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