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달고 쌉쓰름한 자영업분투기 01
나는 스물여섯.
지금으로 치면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
스물일곱에 첫 아이를 낳았고 그 뒤로 둘을 더 낳았다.
살아온 날들 전체가 숨 가쁜 시간이었지만
첫 애를 낳고 처음 몇 년은 왜 잘 기억이 안나지?
선택적 기억상실증을 의심할 정도로
정신없고 황당한 시간들이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첫 1년 이후
첫애가 태어나면서 우리 세 식구는 분가를 했다
분당 정자동 주택단지의 세로로 끼어 있는
좁고 빠듯한 주택이었다.
처음부터 어느 부부의 노후준비를 위해 야무지게 계획된
반치하부터 2층까지는 세를 놓고 3층에는 주인집이 들어선 흔한 원룸주택이었다.
우리 집은 2층이긴 했지만 북향으로 앉은 구조 때문에 하루 종일 어두웠다.
“산전망이에요. 산전망”
집이 어둡다는 것이 단점이라는 걸 잘 아는 부동산 여자는 집을 보러 들어서자마자 재빠르게 온 집안의 불을 환하게 켜면서
우리에게 산전망을 계속 강조했다.
산이 있다고?
아닌 게 아니라 코앞에 자리한 앞집 두채 사이로 불곡산의 전경이 정확히 한 뼘, 전망이라기보다는 그게 산이고 하니까 산인가 보다.. 할 정도로 산이 보이기는 보였다.
아무렴 어떠랴 나는 젊었고 분가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그리고 나는 내 일이 하고 싶었다.
이사를 하고 자리를 잡자마자 나는 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했다.
나는 매일매일 머릿속으로 가게를 차렸다 엎었다를 반복했다.
이걸 해볼까. 저걸 해볼까. 궁리는 무궁무진했고 엉덩이는 진즉부터 들썩 거렸다.
살림만 하고 집에만 있기에는 내 속에 열정이 너무 많았다.
아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집 밖으로 나서거나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 직장생활은 어려웠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이 온라인 시장이었다.
2000년 당시는 사실 온라인 쇼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마 역사에 기록될 커다란 변화의 시작 같은 시기였을 것이다.
땅속을 가득 채운 마그마가
열기와 에너지를 가득 모아 때가 되면 지면으로 폭발하듯이
90년대가 마그마를 끓이던 시기였다면
2000년부터 이후의 10년은 너른 죽 냄비에서 죽이 끓듯이 여기서 펑 저기서 펑
다종 다양한 온라인 쇼핑몰들이 태어나던 시절이었다.
온라인 시장에서는 내가 아이를 데리고도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애기가 조금 있으면 어린이 집에 가니까. 나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생각한 아이템이 '아이 옷을 만드는 키트'였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의 옷을 직접 만들어 입히고 싶은 욕구는 다 다 있으니까 옷 만들기 재료들을 한 봉지에 넣어서 파는 아이템을 생각했다.
나는 손으로 꼼지락 거리는 것을 좋아했다
열심히 했지만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 항상 문제였다.
좋아해서 시작은 하는데 성격이 급하고 대충 하는 버릇 때문에 결과물이 야무지지는 못했다.
역발상이라고나 할까.
나는 디자인과 재료를 줄 테니 아이 옷을 직접 만들어 입히세요.
저는 손이 똥 손이라 예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직접 만드세요.
예쁜 옷 사진을 올리고
그 옷을 만들 수 있는 원단과 실. 부자재. 아이 나이에 따라 크기를 달리 한 옷본.
그것들을 패키지로 묶어서 이렇게 다해서 얼마. 이런 식으로 상품을 구성했다.
패키지를 풀어서 옷을 곱게 만들건 대충 만들건. 그건 옷을 만드는 엄마들의 몫이었다.
내가 만일 옷을 다 만들어서 보내줘야 했다만 나는 내내 옷이 이게 뭐냐는 클레임에 시달려야 했으리라. 시도도 좋았고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은 첫 사업이었다.
내가 손이 꼼꼼치 못한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였던 것 같다.
우리 집엔 오빠만 둘이 있었지만 사촌들 사이로는 언니들이 넉넉했다.
삼촌네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느낀 것이지만
언니들은 항상 손이 다정하고 야무졌다.
다짜고짜 소리부터 꽥꽥 질러서 사람 놀라게 하는 오빠들과의 놀이와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언니들은 야리야리한 리본이나 다채로운 색감이 인형 같은 것들을 갖고 놀아주었다.
그런 언니들을 보며 나도 크면 여성스러운 여자가 되어야지 생각했었는데
사람은 바람대로 크는 것이 아니라 보는 대로 큰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나는 오빠들과 비슷한 선머슴처럼 자라났다.
성격이 급했지만 여성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희미한 취미가 남아서 그 둘을 결합한 사업 아이템들에 주로 눈이 갔다.
성격이 급하다는 것은 아주 좋게 보자면 결단이 빠르다는 장점도 된다.
하지만 경영에서 빠른 결정과 성급한 결정은 참 구별이 어렵다.
빨리 결정하는 것과 성급하게 결정하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몇 번 사업의 쓴맛을 경험한 사업가들은 차차 알게 된다.
대부분은 큰돈을 읽거나 좋은 기회를 잃거나 뭐가 다 지나간 다음에 그걸 깨닫게 된다는 게 참 슬픈 현실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사업 좀 더 잘해볼까.. 이런저런 마케팅 강의들을 부지런히 쫓아다녔는데 이때 만난 다양한 사업하시는 분들한테 주로 뒤풀이 자리에서 세렝게티 같은 창업시장의 이면들을 많이 얻어 들을 수 있었다.
정말 웃기면서 슬픈 이야기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