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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인 Feb 13. 2020

이랜드를 기억하세요?02

벌써20년!! 달고 쌈쓰름한 자영업분투기 08

특판을 기획은 했지만 특판에 어울리는

물건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이런 기획을 한다고 누가 알아서 재고 물건 중에 팔릴만한 것을 골라서 갖다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덤비지 못하는 기획이었고 흔치 않은 도전이었다.

나도 신입이었지만 내 아랫 기수 남자 직원 중에 힘 좀 쓰게 생긴 직원을 하나 꼬셨다.

좋은 기회다. 나랑 사고(?) 한번 쳐보다.

팀장님의 허락을 받고 둘이서 재고창고로 향했다.


당시 헌트는 답십리의 오래된 창고 건물을 본사로 쓰고 있었는데 ( 버려진 건물, 싼 사무실만 들어가는 이랜드의 오랜 버릇이 이제는 고쳐졌나 모르겠다)  재고 창고는 거기서 두어 정거장 더 들어간 귀신 소굴같이 생긴 공장 건물이었다.

연건평이 만평이라나 이만 평이라나. 여하튼 겁나게 넓은 공장 건물 전체에 헌트 재고 옷들로 쌓여있었다.

산더미라는 것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말문이 막혔다.

아... 이 박스들을 어떻게 뒤져서 옷을 고르나.

사수님.... 이거는.... 나보다 더 기가 질려서 슬슬 꽁무니를 빼려는 후배의 목덜미를 단단히 움켜잡고 등산을 하듯이 재고의 산을 올랐다. 백록담이 이보다 높으랴... 숨 막히는 도전이었다.      


다행히 3-40대 남자들의 옷 취향은 단순하고 정확해서 어떤 옷을 깔아야 잘 팔릴지는 명확했다.

면바지 색상별로. 사이즈는 넉넉하게 32-34 사이즈를 많이청바지는 일자 핏으로 평범한 거 겨울용으로 되도록  곧 추위가 다가오니까 스웨터와 얇은 점퍼류를 눈에 띄는 대로 수북이 눈에 보이는 족족 챙겨 내려와서 박스에 챙겨 넣고 다시 재고의 산을 오르기를 반복했다.


재고가 왜 재고이겠는가. 이런 옷도 헌트에서 팔았나? 할 정도로 실험정신 투철한

독특한 아이들 사이에서 무난하고 편안한. 누가나 좋아할 옷들을 골라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틀을 꼬박. 둘이서 그야말로 폐질환 걸리기 일보직전까지 먼지를 마시고 또 마시며 어마어마한 양의 박스들을 골라냈다. 내가 기획한 특별판매의 날짜는 추석 연휴 시작 직전까지 딱 이틀이었다.

플래카드도 준비했다.

“멋지게 입고 고향 내려가세요. 헌트 브랜드 세일 50% 특별전”

이틀 동안 팔겠다고 2,5톤 트럭 2대분의 박스들을 준비했다.


트럭을 불러서 그 재고 박스들을 싣고 일산으로 향할 때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영업부 직원들이 떠나가는 우리 둘을 바라보며 저 둘째가 첫째 잘못 만나서 단단히 죽어났다고 불쌍해서 어쩌냐고 혀를 찼다나 모라나.     

여하튼 그렇게 시작한 이틀간의 이벤트는 요새 말로 대박을 쳤다

허리쌕으로 준비한 돈가방은 오전 한 시간도 안되어 이미 지퍼가 잠기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매장 사장님한테 얼른 슈퍼에 뛰어가서 물건 담는 비날 네 개를 가져오게 시켰다.

그걸 매장 직원 둘. 본사 직원 둘이 각자 허리에 차고 하루 종일 옷을 팔고 돈을 퍼 담았다.

중간중간 은행으로 돈을 실어 날랐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 비닐도 찢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사셔라 말아라 다른 거 없냐 고르고 골라주고 그럴 새도 없었다.

그냥 네 명이 서서 돈만 받아 넣기에 바빴다.

카드도 안 받는 마당 장사였으니 모두가 현찰이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딱 2일.

이틀간의 총매출은 8000만 원.

비싸지 않은 헌트 옷을 50-60%로 팔았는데 재고 옷으로 이틀 동안 8000만 원어치를 팔았으니 지금으로 말하면 초대박 이었다.   그때가 1995년도 이야기다.

거기서 다시 매장 마진이 40%.  자릿세도 내지 않은 쇼핑센터 마당에서 레이크 사장님은 이틀 동안 거저 장사하고 3000만 원이 넘은 순익을 가져가셨다.

내가 안 이쁠 수가 있겠는가. 본사에서도 재고 소진의 근사한 모범사례라고 전체 회의 때 몇 번을 일으켜 세워서 박수로 헹가레를 쳤다.      

뒷돈과 커미션이 휑휑하던 시절이어서 다른 회사에서는 이런 기획을 하고 이렇게 돈을 벌었다고 소문이 나면 다른 매장에서 영업부 직원들에게 얼마 얼마 해주면 내가 얼마 얼마 챙겨주마. 역제안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간간이 들리던 때였다     

이랜드는 깨끗한 기업이라는 모토답게 돈 만원이라도 먹었다가는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가 추상같았다.  기독교 정신을 기반으로 세운 기업이라서도 더 그랬고 그런 엄포가 아니더라도 이제 갓 회사생활을 시작한 새내기가 돈 같은 건 받을 이유도 생각도 없었다.      

그냥 그런 기획을 해서 성공했다는 것이 마냥 기뻤다.

    

그 고생을 했다고 내주머니에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니고 다 끝난 뒤에 수고했다고 사장님이 사주는 추어탕 한 그릇도 끝까지 먹을 기운도 없을 정도로 기진맥진 힘들었지만 손님 바글거리는  그런 광경을 내 기획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마냥 뿌듯했다. 개인적이면서 공유적인 성공이었다.  

열 시간을 꼬박 미친 사람처럼 돈과 옷에 파묻혀 장사를 하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손바닥에 아직 남아있는 돈다발의 감촉 때문에 나는 흥분해 있었다.

쓰러질 듯 피곤한 와중에도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는 그 만족감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살면서 흔하게 맛볼 수 없는 성공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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