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 달고 쌉스름한 자영업분투기 07
개인의 자영업도 기승전결이 있지만
대부분의 브랜드도 사람의 인생처럼 소멸과정을 겪는다.
리바이스나 나이키처럼 오래가는 로열티를 확보한 브랜드들이 아니라면
우리가 아는 수많은 이름들은 그래 맞아
그거 그때 잘 나갔지. 하면서 과거형으로
기억된다.
이랜드의 브랜드들이 그랬는데
이랜드 브렌따노 스코필드 헌트. 등등 우리가 기억하는 수많은 매장들이 90년대 중후반. 2000년대 초반까지 수많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나는 헌트에 근무했었는데 다행히 그때는 경기가 참 좋을 때라 지금 생각해도 이랜드 점주의 수익은 꽤 짭짤했다.
오죽하면 이랜드 직원들이 조금만 돈이 모이면 회사 때려치우고 바로 매장 차려서
어제의 본사 직원이 오늘의 사장님으로 들어앉으셨을까.
여하튼 경기가 좋았던 시절이었고 그런 의류 브랜드들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장사는 참 잘되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랜드 자체의 이미지가 낡아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서
5-6년 장사 잘되던 브랜드들도 어느 날부터 고객들이 떠나가기 시작한다.
누가 요새 헌트 입어. 거기 아직도 장사해?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본사는 또 다른 브랜드를 준비한다.
초창기 이랜드가 내놓았던 장사 엄청 잘되던 브랜드 10개 내외 이후에도 이랜드는 수많은 브랜드를 론칭했지만 대부분은 지금 나 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
소위 ‘me too' 브랜드 (따라 하는 브랜드) 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이랜드처럼 프랜차이즈 영업 방식을 고대로 따라 하는 방식이 유행처럼 번졌다.
우리 브랜드 점주들이 주 타깃이었다.
이번에 저희 브랜드로 갈아타시죠.
에이... 요새 누가 이랜드 옷 입어요.
저희 브랜드로 업변 (업체 변경)하시면 인테리어 비용 전액 지원해드리고 마진은....
메인 상권에 좋은 자리를 꽤 차고 있었던 헌트 브랜드는 특히 주 공격의 대상이었다.
브랜드가 늙어가고, 나와 동고동락하던 지점 사장들이 한 명 두 명 내 전화를 슬슬 피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 브랜드 철수 소식을 듣게 된다.
슬펐지만 호시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전성기의 헌트 브랜드는 당당하고 멋지고, 어디 가서도 헌트에서 일한다는 것이
대단히 근사한 레이블이 되던 시절이었다.
내 아이처럼 애정 하던 브랜드가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가고 의미 없는 무엇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세월은 참 서글펐다.
논노 조이너스 꼼빠니아 옴파로스 등등... 로열티를 얻지 못하고 한때 반짝으로 끝난 아이들이다.
어느 40-50대들이 기억하는 이랜드 브랜드들이 다 비슷한 브랜드 생을 살다가 사라졌다.
비록 브랜드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나한테는 영업하는 사람으로서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돈 주고 일부러 살 수 없는 좋은 경험을 많이 선사해준
의미 있는 브랜드 헌트.
1995년 추석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일산이 아직 한적한 신도시일 때.
내가 관리하던 일산 레이크 쇼핑타운 매장에서 내가 대형 사고를 친 적이 있다.
때는 추석이 다가오던 즈음이었고, 레이크 매장은 주인이 바뀌면서 한창 장사가 잘되었다.
월 매출 천만 원을 겨우 하던 매장을 당시 40대 초반 정도의 새 주인이 인수를 하더니 몇 달만에 4-5000대의 매장으로 올려놓으셔서 나도 덩달아 브랜드 내에서 칭찬을 받은 상황이 되었다.
가까이서 지켜본 비결은 주부 직원 한 명과 정말 열심히 장사를 하신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다.
응대를 정말 성의껏 열심히 했다.
물론 지금은 마케팅 의욕들이 넘쳐서 어느 매장이나 친절함이 기본이지만 당시에는
쨍하게 인사하고 환하게 맞이하는 매장은 이랜드가 만들어낸 문화였다.
생각해보면 80년대 옷가게들은 주인들의 인상부터 우울했다.
안 살 거면 대충 보고 빨리나 가라...
쫓아다니지 좀 마라 내가 보고 맘에 들면 부를 테니.
매장에 들어온 고객과 손님 사이의 신경전은 의외로 팽팽하다.
어떨 때 보면 직원들은 고객을 돕기 위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안 살 테면 빨리 나가라 라는 압박의 의미로 옆에 바짝 붙는 경우가 있었다.
내버려두면 한참 귀찮게 할 거라는 생각인지 부담스럽게 졸졸 따라다닌다.
레이크 매장의 점주와 직원은 (직원은 항상 희한하게 주인을 닮는다) 그렇지 않았다.
당시 헌트의 주 고객들은 3-40대 남성들이었으므로 이들은 여성 직원이 옆에서 물건을 권하면 착하게도 끄덕끄덕 잘 사 주는 경향이 있었다.
믿어주는 고객들이므로 더욱 세심히 너무 과하지 않게 권해서 적당히 팔아먹고 내보내 주는 것도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다. 과하지 않아야 집에 가서도 기분이 좋다.
주인도 이쁘고 손님들도 너무 이쁜 매장이었으므로 추석을 맞이해서 특별 세일을 기획했다.
(이랜드를 기억하세요. 02 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