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달고 쌉쓰름한 자영업분투기 09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사실 사업을 하면서 필요한 재능이 여러 가지 있지만
‘상상력’도 무시 못하는 재능이다.
아주 돈이 많아서
누가 이렇게 이렇게 하세요. 코치해주는 대로 돈을 잘 버는 사람도 있다.
그건 그 사람의 머리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의 자본을 가진 사람이 많이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돈’이 ‘재능’이라 돈이 돈을 버는 것이다. 금수저가 부러운 것이 그 지점이다.
어쩔 때는 정말 부럽다. 일을 하면서 자본이 빵빵한 사람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아... 어머니 아버지께는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가끔 어디 숨겨둔 돈 많은 진짜 할아버지 안 나타나나. 엉뚱한 상상을 한 사람이 나뿐일까.
돈아 아주 많으면 그 많은 돈 자체가 다른 사람이 따라 할 수 없는 재능이 된다.
하지만 나는 금수저가 아니다.
돈으로 돈을 벌지 못하면 남과 다른 생각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숫자로 표시되는 돈은 내 맘대로 늘리지 못하지만
머릿속으로 펼치는 내 상상력의 공장은 24시간 내 맘대로 더 돌릴 수 있다.
내가 가진 생각의 영역을 맘껏 넓혀보는 것.
내가 내 맘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내 재능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 재능 살려서 열정대로만 살고 싶은 내 인생에 앞을 가로막는 강적이 나타났으니
거듭되는 출산이었다. 아들 셋을 십 년 동안 낳았다.
머릿속에는 열정적인 아이디어의 공장이 풀 엑셀로 돌아가는데
몸은 아이들에 주렁주렁 묶여있었다.
오해 없기 바라는 것은 나는 내 아이들을 정말 사랑한다.
하지만 인간 이바인의 자영업 분투기에서 아이들은 뜻하지 않은 순간에
나타나 전체 그림을 뒤흔드는 씬스틸러들이었다.
때로는 귀엽게 때로는 거칠게 그들은 프레임 안으로 뛰어들었다.
사업이라는 것을 이것저것 손대면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내 자연 상태의 역할과
일하는 사장으로서의 내 역할이
니가 먼저니 내가 먼저니 이러면서
20년 내내 투닥투닥거리면서 살아온 듯하다.
태초의 첫날부터 아마도 여인들의 이 클래식한 주제를 갖고 고민을 했으리라.
밭을 먼저 멜 것이냐 우는 아기를 달랠 것이냐.
아이를 업고 물을 한동이만 길으러 갈 것이냐. 옆집 여자한테 맡기고 물을 두동이를 길어 올 것이냐.
옆 마을 남편 엄마한테 (유교 이전의 역사라면) 아기를 보내고
벽 있는 집을 지을 것이냐. 아기를 데리고 그냥 움막을 지을 것이냐.
소재와 그림만 다르지 지금과 동일한 고민은 몇천 년 전이라고 왜 안 했겠는가.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고등한 세상이 되어서
남성 동지들에게도 아기 같이 키우자 당당히 협상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오랜 세월 동안 남성들을 무책임한 수컷답게
(분노 금지. 보편의 이야기일 뿐. 그대가 그렇지 않다면 인정) 육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스스로는 물 한 모금 찾아 먹을 수 없는 어린 생명을 업고 먹이고 재우고 같이 울고
그 일들은 대부분 여성이 몫이라니.
여성은 참 본질적으로 큰 과업을 타고 태어났다.
그러니 아이를 낳은 여성 동지들. 그 와중에 일까지 하려면 마음 단단히 먹고
두배 세배의 기를 쓸 수밖에 없다.
들째를 임신하면서 고민은 깊어졌다.
이미 나는 아... 어렵겠구나.. 미리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이일을 어쩌나.
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첫째도 아직 네 살이라 둘째까지 태어나면 아뿔싸.
일은커녕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찰 텐데.
며칠의 고민 끝에 일을 접기로 결정했다.
안 그래도 힘들고 지치던 참이었으니 관두기가 버티기보다 수월했다.
아기 옷을 키트로 만들어서 판매하는 일은 잔손이 많이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아이템이었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안 맞는 때였던 것 같다.
사업도 나의 인생 시간표와 어느 정도 궤를 맞춰야 수월하게 진행이 된다.
사업 초기에 나의 아이디어를 그려나가는 시기이므로 남이 대체해주면 그림이 그려지지를 않는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초기 사업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참 벅찬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린 주부들이 취업이 아닌 창업을 하면 그만큼 더 어렵다.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일을 접고 당분간 아이 낳고 기르는 일을 하자.
내 첫 번째 인터넷 사업은 그렇게 조용히 막을 내렸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까. 잘 모르겠다.
그때 내 선택은 그랬다.
하지만 숲이 거칠다고 사자가 내내 웅크리고만 있으랴.
둘째가 지 숟가락으로 밥 떠먹는 것을 확인하는 동시에 올타꾸나! 네 녀석이 밥을 떠먹는구나
오냐. 엄마는 나간다. 나는 다시 일을 찾아 나섰다.
(엄마냐. 일이냐 02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