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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인 Feb 14. 2020

엄마냐. 일이냐 02

벌써 20년!! 달고 쌉쓰름한 자영업분투기 10

아래는 2010년 겨울 머니투데이 신문에 기재된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창고형 앤틱 가구 전문점 ‘바인스 앤틱’.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시내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지도를 들고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곳은 연매출 6억 원을 기록할 정도로 앤틱 마니아들에겐 유명한 곳이다. 사장인 이바인 씨(38)는 번역사 경력이 있기는 하지만 7년 전만 해도 평범한 전업 주부였다. 처음엔 집을 예쁘게 꾸미는 TV 프로그램에 참여, 해외여행 상품권을 받아볼 욕심으로 앤틱 가구에 관심을 가졌단다.  "



2010년 겨울 저 기사가 나던때. 나는 꽤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지금도 '먹고 살만'은 하지만 저때는 입고도 살고 놀고도 살고 여행 가고도 살고 사치도 하고도 살고. 그러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먹고 살만한 지금. 저때가 그립다. 

내 20년 자영업 분투기 중 저 시점은 말하자면 산마루에 올라서 한동안 탄탄한 평지를 걷던 시절이었다.

오르내림이 없는 탄탄한 신작로를 산등성이에서 걷는 기분은 꽤 상쾌하다. 

바람은 선선하고 숨도 안차고.  동행하는 사람하고 이야기도 다시 시작된다. 손도 잡을라나. 

기분 따라 꽤 행복해지는 순간이 그때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느닷없이 다시 시작이 되면  아.. 여기가 산이었지.. 하고 깨닫게 된다. 

오르막이라면 다시 헐떡이게 될 터이고. 내리막이라면 발을 접질려 굴러 떨어져서 아예 죽어버릴까 봐 더욱더 조심하게 될 터이다. 


기사에 소개된 것처럼 나는 2000대 초반 시작한 앤틱 샵을 꽤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그때는 그렇게 말했다)

운영했었는데 아이 둘의 육아가 어느 정도 손에 익을 즈음. 다시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맘먹게 된 후 

야무지게 찾아낸 아이템이 영국이나 프랑스 등지에서 수입된 골동가구나 그릇 등을 판매하는 일이었다. 


정말 우연히 시작된 일이었지만 뭐 좀 할꺼리 없나... 항상 염두에 두고 두리번거린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앤틱과의 인연은 참 우연하게도 어느 날 눈에 띈 티비프로그램 때문이었다. 

가정주부들이 인테리어 실력을 겨뤄서 이긴 사람한테는 해외여행 등의 환장하게 좋은 선물을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눈독을 들여서 이것저것 보고 돌아다닐 때 이미 프로그램은 폐지되어서 김이 빠져버렸지만 그거 나가보겠다고 여기저기 눈요기하고 돌아다니면서 나는 영국 프랑스 앤틱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필요 없는데..... 하면서도 미련을 못 버리고 계속 두리번거렸다. 


아... 저런 것도 멋있구나.

약간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저런 것이 저렇게 멋스럽게 우리 가정집에도 어울리는구나...

직항으로도 열 시간 넘게 걸리는 정확히 지구 반대편의 나라인데 

거기서 수십 년 전 사용하던 물건들이 어떻게 현대 우리 집에도 어울리는지

인간이 희한한가. 우리 눈이 희한한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당장 아이들 손잡고 들쳐업고 길을 나섰다. 

내 눈으로 봐야겠다. 

비쌀 테니 사지는 못할 테고 일단 보기라도 해야겠다. 

이태원 어디 가면 그런 물건들이 모여있다던데...

급한 성질 덕에 그 길로 현장 확인을 나섰다

시어머니께 서울 나들이 간다고 큰 애를 맡기면 좋으련만 괜히 일벌리나... 눈치채실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서울에 볼 일 잠깐 있다고 하고 큰 애는 걸리고 둘째는 포대기로 질끈 묶고 좌석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태원에 몰려있다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에 정보가 뭉개 뭉개 넘쳐나던 때가 아니라서 

빈약한 소문과 눈대중으로 물을 물어 길을 찾았다.      

희한한 골목이었다. 

지금도 서울 이태원 청하아파트  삼거리 근처로 작고 특이한 앤틱 골목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때 규모는 지금보다 작았고 주인은 나이들이 지긋했다. 주로 이태원 일대의 외국인들이 자국에서 쓰던 물건들을 한국에 올 때 가져와서 사용하고 다시 돌아갈때는 근처 가구점에 처분하고 떠났는데  그것들이 특이한 인테리어 소품을 찾은 사람들한테 팔려나가면서 이태원 앤틱 시장을 만들게 되었다고 했다.  

이후에야 직접들 유럽이니 미국이니 가서 물건들을 사다가 팔았지만 처음에는 그랬단다.

       

아이고.. 애기 엄마 애기가 그릇 자꾸 만지네.. 비싼 건데..

아줌마가 슬쩍 나를 밀어냈다. 

세 살짜리 단속하랴 포대기에 업은 둘째 녀석이 팔을 뻗어서 주면 물건 손대지 않나 감시하랴 

주인아주머니의 구박이 아니더래도 가게에 들어서서 제대로 감상하기는 애초부터 어려웠다. 

진짜로 등에 있는 놈이 휘릭 한팔에 아작을 낼 만한 오밀조밀 연약한 소품들이 득시글 득시글했다.

저걸 한줄만 깨도 돈이 얼마냐.... 가게들은 작고 아담하고 눈이 돌아가게 이쁜 소품들로 빼곡했다. 

작아서 더욱 가게 전체가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      

나는 이미 홀딱 반해있었다. 


손님의 행색을 보고 응대의 차별을 두는 것이 옳지는 않지만 포대기 업은 엄마를 돈 많은 귀부인으로 봐주는 가게야 어차피 없을 테니 나는 그저 창 밖에서 둘레둘레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어쩌자고 포대기로 업고 왔을까.  

즈이고모가 선물한 애기띠라는 거 요새 엄마 메는 거. 

어색해도 그거 차고 왔으면 돈 많은 여편네까지는 아니더래도 

먹고살만한 집인가 보다... 싶을 텐데. 내 행색은 내가 봐도 이런데 구경올 주제는 안되어 보였다. 

세살짜리는 그만 집에가자고 징징대고 등짝에 갓난것은 배고프다 잉잉대고

나는 들어가서 보고싶어서 동동댔다. 

어디 다라이 하나 없나. 

그거까지 머리에 이면 딱 궁상룩의 완성이었다. 


(엄마냐.일이냐 03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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