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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인 Oct 15. 2015

마흔 셋. 그 씁쓸하고 쌉쌀한

아줌마와 할머니 사이.

오랜만에 퀼트 바늘을 다시 잡았다.


불원천리. 

내 맘에 쏙드는 스똬일을 가진 퀼트쌤을 만나서 다시 바느질의 매력에 빠진것이 

몇년전인데. 그 뒤에 다시 그만 두기를 반복. 으이그...


오랜만에 바느질은 신선했다. 

조각 조각 1cm 1cm 앞으로 나아가는 재미는 

재미와 지겨움의 아슬아슬한 줄타리로 좋았다 말았다 했지만

역시 뭔가를 꼼지락 거리는 일은 내 적성이 맞구나..했다. 


처음 바느질을 시작한 것은 

지금 고 1짜리 첫째 아들이 (난 아들이 셋이다. -나도 놀랍다.)

아장 아장 걸어다닐 무렵이었다. 

지금은 손바닥 만한 지갑 하나 만들기도 아둥바둥이지만 

그때는 이불도 거뜬히 꼬매치우곤 했다. 


다 좋은데.


눈이 문제다. 


때마침 건성으로 틀어놓은 티비프로그램에서는 

'여성의 갱년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당연한 노화의 한 현상일 뿐입니다.'

본인도 만만찮게 늙수그레한 빼짝 마른 가정의학과 의사 양반이 

누가 갱년기 싫다고 땡깡이라도 단단히 부린듯

눈을 퀭하게 뜨고 갱년기의 '당연성' 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지도 늙은게 어디서 훈계일까...

아무 죄 없는 그 의사를 도끼 눈으로 한번 흘기고 막 바느질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눈이 안보인다. 


이상하다..

어제 잠을 잘못잤나?  옆으로 눌려자서 시신경이 잠깐 꼬였나? 잠 잘못자서 눈이 안보이기도 하나?

선잠들때 귓가를 스치는 모기의 설핏하고 기분나쁜 앵앵거림처럼

혹시나...? 하고 덮치는 기분나쁜 예감이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든다.


이게.... 말로만 듣던 '노안' 이구나.

하긴 언제가부터 식료품 포장 뒷면의 깨알같은 정보문구들을 읽을때 나도모르게 눈을  멀찌거니 빼는 버릇이 생겼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목을 밀어넣어 두 턱으로 만들며  손을  쭉 밀고 눈을 최대한 가늘게 찌그러트리는 것까지 그렇다 치자.

어쩌자고 입꼬리는 자꾸 양쪽 아래로 잡아 당겨서 우스꽝스러운 얼굴이 되는건지?

그 네가지 동작이 무슨 무의식적 짝체조같은 관계라도 있는 것인가?


젊은 여성이 그런 모양으로 글자를 읽는 것을 본적은 없다. 

그런 모습으로 뭔가를 읽는 사람은 다  늙은 사람들 뿐이다. 


노안을 인정하자. 깔끔하게

끌려가느니 앞장서서 걸어감으로써 마지막 꼿꼿한 자존심을 지키려는 푸른 청년 노예처럼.

난 나에게 찾아온 '노화'의 분명한 스텝 하나를 받아 들이려 한다.  속상하지만 쿨하게


언젠가 둘째 아들 놈이 

마트 화장품 코너에서 에쎈스를 열심히 고르고 있는 나를 보며 이렇게 물었다.

'그런건 왜 발라?'

'예뻐질려고'

'이제 예뻐져서 뭐하게?'


아마 그게 첫번째 충격이었던 것 같다.

이제 더이상 '미'나 '추'의 개념은 상관이 없을것 같은 

제 3의 성.

 '아줌마'의 정체성을 넘어서서 '늙은 아줌마' 의 대열로 서서히 옮아가는 나의 스탠스가.


아...마흔 셋.

늙어가고 있다. 

섣부르게 그게 기쁘다느니 뿌듯하다느니. 당당하다느니 

그렇게 미화하고 싶지도 않고.

아이고 늙다니...슬프고 슬프도다...청승과 절망으로 칙칙하게 

애걸복걸 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덤덤히.

난 마흔셋.

노안이 온 아줌마.

늙지도 젊지도 않은 

그냥 마흔 셋.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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