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을 떠났다
둘째 아들 한승이가 새벽 비행기로 일본으로 갔다.
이름도 거창한 유학을 떠났다.
항상 각오 하듯이 내 사랑스런 새끼새 한 마리가 또 또났다.
차타고 가는 내내 가슴 울렁이며 준비한 마지막 포옹이었는데 녀석은 특특 털어내듯 네네하며 싱겁게 내 초조한 인사를 밀어냈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아이를 들여보내는 과정은 너무 허무할 정도로 싱거웠다.
너무 싱거워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유학인데. 돌아올 날짜도 기약하지 않고 떠나는 길인데 이렇게 무덤덤해도 되나. 내 자신도 어리둥절했다.
뭘 공부할지 딱이 정하지 않고 떠나는 유학이다
우유도 치대다보면 치즈가 된다고
가서 부딪히다 보면 뭐라도 되겄지
용감한 기대를 하며 떠나는 유학이다
바야흐로 스물 네 살. 옛날 같으면 지가 낳은 자식이 저한테 아빠아빠하고 뛰어 다닐 나이니 내가 이렇게 애닳아 하는게 이상하긴 하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레 애들 군대 보낼 때 보다 훨씬 덜 아쉽고 덜 슬프고 그런지 모르겠다.
아들을 셋이나 낳아 기를 때는 나는 내가 애가 많은 줄 알았다.
셋이나 되니 다 키워놔도 벅적벅적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다자라고 나니 벅적은 커녕 내가 애를 키운 적은 있었나 싶게 주변이 허전하고 조용하다.
인생에는 사실 인생을 다 걸만큼 대단한 뭔가가 없기 때문에 그나마 내가 가장 많은 에너지와 애정을 기운인 일이 내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엄마들한테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그러하겠지.
막내만 이제 고2 내년에 고3이다.
그녀석도 내 품을 진즉에 떠나서 저기 멀리에서 기숙사 학교에 다닌다.
역설적이게도 스물 여섯 먹은 첫째 녀석이 오히려 내 옆을 지킨다.
이 녀석도 언젠가 즈이 학교 앞에서 몇 달 자취를 해보더니 혼자 밥해먹고 끼니 챙기는게 얼마나 돈이 많이 들고 힘든 일인지 깨닫고 앗뜨거라 본가로 홀랑 돌아 들어와서 엄마밥 알뜰하게 챙겨먹으며 최대한 버티는 중이다.
버티는 놈
뛰는 놈
날라 간 놈
어쩔까 고민하는 놈
아들 셋의 머리들이 각자 복잡한 성장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