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안경으로 가려진 시야
알면서도 낚이는……
최근 온라인에서 접한 한 영상이 있다. 한국군의 캄보디아 본토에서 특수작전 성공 과정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이에 따른 외신들의 칭찬 일색의 반응들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이건 뭐지? 마치 사지도 않은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었다. ‘K-pop 데몬 헌터스’에서 나온 온갖 것들을 소비하는 외국 사람들의 챌린지 릴레이를 볼 때처럼 나만 모르고 있던 좋은 소식인가 하는 주책맞은 기대감을 안고 확인한 결과. 터무니없는 허구였다.
농락당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뻔뻔한 가짜 뉴스는 고맙기까지 하다. 의심하고 선별할 기회라도 주니까.
하지만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가짜 뉴스를 의심도 없이 소비했을까?
과거에는 접근성. 그 자체가 힘이었다. 선배의 ‘족보’가 지름길을 만들어 주었던 그때의 정보의 가치는 보물 찾기의 우승 상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보물 상자가 사방에 있다. 대신 빈 상자도 많다. 그래서 보물이 든 보물 상자 찾는 것은 마치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되었다.
오히려 정보의 과잉이 진실을 은폐하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에 직면한 지금, 이 '오픈소스의 시대'는 기회의 균등과 가까워진 것일까? 혹은 쓸모없는 정보만 그득 안게 된 것일까?
정보 과잉의 역설, 유효기간이 지난 파편
이제 진짜 같은 얼굴을 한 가짜뉴스에 지치다 보니 정보체계가 백혈병에 걸린 상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백혈병은 미성숙 백혈구의 이상증식으로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문제가 생기는 병이고, 정보 과잉의 양상이 미성숙 백혈구의 폭발처럼 판단기준을 공격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다른 예시를 들자면, 커다란 자루 속 쭉정이들 사이에서 진주를 골라내서 꿰어야 하는 상황 같다고나 할까?
그래도 일단 큰 자루를 받았으니 나쁜 상황은 아니긴 하다. 손을 찌르기도 하는 쭉정이와 속이 빈 쭉정이들 사이 진주를 찾다 보면 의심하게 된다.
“이거 진주 없는 보따리 아니야?”
우리가 겪는 이 피로감의 정체는 '정보의 유효기간'이 극단적으로 짧아진 데 있다.
정보는 검증되거나 숙성될 시간이 부족한 미성숙 상태로 무한 공급된다. 그리고 그 미성숙한 정보는 빠르게 유효기간이 지나 무가치한 '파편이 되어 시스템을 마비시킨다.
1인 미디어 시대는 표현의 다양화와 다각화라는 달디 단 열매를 주기도 했지만, 표기하지 않은 각자 다른 유통기한의 알맹이들은 내가 쓰고 싶은 시점에서 생명을 잃기도, 사실이었던 것이 거짓이 되기도, 거짓으로 보였던 것이 진실이 되기도 한다.
눈 감고 찍어내는 정보 생산자의 능력보다 정보 소비자의 능력이 더 중요한 것이 된 것이 아닐까? 결국 양이 많아지면 질 좋은 것도 많아지고, 질 낮은 것도 많아진다. 형태가 바뀐 보물 찾기는 계속된다.
우리의 피로감은 이처럼 '파편'이 된 정보를 걸러내야 하는 노동에서 온다. 그러나 이 노동마저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당하며 문제는 복잡해진다. 알고리즘의 체가 개인의 흥미와 편향에 맞는 정보만을 제공하는 '알고리즘 감옥'을 생성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감옥에 갇혀 양쪽을 모두 보지 못하고, '내가 보는 세상만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자기 확증 편향에 갇히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공성을 담당해야 할 공식 언론이나 미디어들은 공신력을 클릭 수에 팔았다. 옥석 가리기보다는 경향성에 지배당하며 편집적 사용과 의도적 생략을 통해 편향된 정보를 제공한다. 가장 진실해야 할 곳에서마저 정보의 타당성이 훼손되는 것이다. '편중된 것 중에 과연 옳은 것이 있겠는가?'라는 질문은, 우리가 신뢰의 마지막 방어선까지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로 들린다.
정보 환경의 변화는 곧 권력의 원점 변화를 의미한다.
과거 정보의 소유자에게 기회가 열리는 사회에서는 소유만으로 권력을 얻을 수 있었지만, ‘정보의 오픈소스 시대’는 정보 접근성의 평준화로 모든 이에게 기회균등의 시대가 열렸다는 희망의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절대적 폐쇄성을 버리게 된 정보는 얼굴이 바꾸었을 뿐 희소성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다.
여전히 유효한 정보는 비싸고, 아무나 접근할 수 없다.
다만, 안목 있는 사용자라면 파편화된 정보를 분류하고 분석해서 유효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시대가 되었을 뿐이다. 그 결과 지금은 정보를 입체적으로 선별하고 분류하여 파생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안목이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열린다. 머리에 넣은 방대한 정보나 처리 속도가 우위를 가져다주는 시대가 이미 저물고 '정보 환경 조성' 능력이 새로운 권력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처럼 능력 있는 소비자의 안목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진주목걸이’ 같은 생산물을 생산할 수 없다.
진짜 힘을 가진 사람들은 이제 입맛에 맞는 정보를 양산해 경향성을 만들고 세상을 지배한다.
단순하게 보면 '여론조작'이지만 사실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엇을 간과하게 만들지를 '설계'하는 차원의 지배이다.
별스럽지 않은 단신 한 줄은 큰 정치 이벤트의 전조곡일 수도 있고, 부쩍 자주 보이는 경제 뉴스는 대기업의 신제품 출시 전 깔아주는 레드카펫일 수도 있다. 하나의 단면으로 파편화된 정보는 흩어져 가치 없는 선으로 보여도 항공사진으로 그 실체가 확인되는 '나스카 문양'처럼.
우리는 지금 과거 신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천리안’을 기술의 힘으로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신의 능력을 얻은 반대급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놓인 것은 당연하지도 모르겠다.
재미있게도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알고리즘 천리안은 ‘안목’을 잠식하는 양면을 가진 요물이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 대신,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현혹되어 생각하는 힘을 약화하는 신의 물건.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정보 환경 조성'의 지배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쥔 리모컨의 힘을 의미한다. 내 생각을 멈추게 할 탁월한 천리안은 진짜 필요할 때 꺼내 써야겠다. 마치 책을 읽을 때만 꺼내 쓰는 돋보기안경 쓰듯이 말이다.
내 유튜브가 나의 알고리즘을 희석할 여지를 주려고 평소 관심 없는 산악자전거 영상을 찾아보거나 하는 소심한 분탕질 같은 것을 좀 해보려고 한다. 내일이면 내 쇼핑 추천 목록에 자전거 헬멧과 장갑 같은 것들이 등장할 것을 예측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