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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파일럿 Dec 26. 2021

돈을 많이 벌어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다.

가끔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조종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연락이 올 때가 있다. 조종사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대학교는 관련학과를 나와야 하는지 같은 기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해서, 실제 비행 오퍼레이션과 관련하여 ‘어떻게 이분이 이런 실무적인 부분까지 알고 있지? 혹시 내부자인가?’하는 생각이 드는 질문까지 그 영역이 다양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친절하게 대답을 해드리려고 노력을 한다. 귀찮을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숨도 못 쉴 정도로 질문 세례를 쏟아내는 분에게는 가끔 피로함을 느끼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고민과 질문에 일일이 대답을 해 드리는 편이다.


이는 분명히 나의 인성이 훌륭하고 아주 착한 성품 때문이지 않을까.




당연히 농담이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답을 해주게 된 계기가 있다.


세무사 2차 시험에서 떨어지고, 조종을 배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던 2016년, 주변에 관련 업계 종사자도 없을뿐더러, 흔치 않은 직업이다 보니 얻을 수 있는 정보의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럴 땐 무적의 구글이 있지 않은가. 나는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찾아내기 시작했고, 나름의 폴더에 그 정보들을 하나하나 모아가며 비행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느 한 인터넷 카페에 국내 한 항공사에 입사를 했다는 사람의 글을 보았다. 나는 그분에게 다짜고짜 쪽지를 하나 보냈다.


“안녕하세요. 비행을 배우고 싶은데, 전화드려서 궁금한 것들을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캐나다에서 비행을 배우고, 국내 한 항공사에 입사를 하셨다는 그분은, 나에게 친절히 본인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 얼굴도 모르는 채 두 시간이 넘게 통화를 했다. 내가 미처 알 수 없었던 취업의 현실과 유학생활의 어려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이 좋은 여러 가지의 이유들과 같은 그분의 경험을 포함하여, 그동안 궁금했던 나의 사소한 질문 하나하나까지 그분은 친절하게 답을 해주었고 그렇게 통화는 막연하기만 하던 나의 유학 준비에 선명한 청사진이 되어주었다.


그 후에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캐나다가 아닌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로 결정을 했고, 두 시간 동안 괴롭힌 게 죄송해서 유학 가기 전 그분께 문자를 하나 남겼다.


“안녕하세요. 일전에 비행 유학과 관련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던 망고입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도움 주신 캐나다가 아닌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죄송해요.”

“저한테 죄송할거 하나도 없어요. 잘 됐네요. 미국이 비행하기에는 날씨가 훨씬 좋을 거예요.”

“제가 도움받은걸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나중에 잘 되어서 누가 망고씨한테 물어보면 그때 그분들에게 잘 알려주세요.”

“다녀와서 꼭 연락드릴게요.”

“알겠어요.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 줘요.”


물론 그 후에 모르는 것이 있어도 연락을 드리진 않았다. 통화 중 목소리가 점점 쉬어서 변해가는 게 느껴질 정도로 그분의 성대를 괴롭혔다는 미안함과 친하지도 않는데 다짜고짜 모르는 것이 생길 때마다 물어보기에는 염치가 조금 없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분도 나에게 먼저 연락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분께 항공 유학을 물어보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명일뿐이었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미국에서 2년 조금 넘는 기간의 비행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운이 좋게 지금 내가 다니는 항공사에 취업을 하였다. 취업을 하고 나니 그동안 내가 항공사에 들어올 때까지 물심양면 도와준 사람들이 생각이 났다. 세무사 1차를 합격하고 2차 시험을 보기 전에 다짜고짜 비행 유학을 떠나고 싶다고 선언한 아들의 말에 들고 계신 초밥을 떨어트리신 우리 엄마를 포함하여, 첫 취업이라 그 과정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이 무지몽매한 나를 직접 스터디룸까지 잡아가며 나를 붙잡고 같이 공부해주었던 JW이형, 그리고 주변에 먼저 취업한 다른 형들까지.


일일이 인사를 드리고 나니, 문득 한 명이 더 생각이 났다.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에 이름을 쳐보니 나오지 않았다. 예전에 내가 문자를 보냈던 내역을 찾아보았다. 엄지가 닳도록 내려보니 다행히 아직 그때 남긴 문자가 남아있었다. 혹시 번호가 바뀌진 않으셨을까. 에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연락을 해보자. 난생처음 남자에게 연락하는데 뭔가 조금 설렜던 것 같다. 그런 쪽의 설렘이 아니라, 기억하실까 하는 마음에.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년 전 비행 유학을 괴롭혔던 사람입니다. 이번에 입사했는데, 그때 너무 감사해서 식사 한 번 꼭 사고 싶어서 연락드립니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부정맥이 의심되는 나의 심장을 진정시켜주는 답이 올 때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억나죠, 저도 얼마 전에 같은 회사로 이직했어요.”


아니 세상에,

세상 좁다, 엄청 좁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좁을 수도 있구나.


그 후로 우리는 여러 번 만났고, 지금까지도 회사 브리핑실에서 만나면 제일 반가운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모르는 것이 생길 때면 그래도 이번에는 나도 양심이라는 게 있는지라, SG형의 고막에서 피가 나오지 직전까지 전화로 괴롭히지 않았다. 다만, 자꾸 형이 살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고 불러내서 모르는 것을 얼굴 보고 질문하며 괴롭혔다. 혹시 전화로만 물어보면 손절 내지는 차단을 당할 수도 있기에, 형의 선량한 마음에 얼굴 보면 나를 두고 도망은 갈 것 같진 않을 것 같다는 믿음으로 말이다.


얼마전 SG형과 연락을 하며 얼굴 보려고 약속을 잡는데, 형과 연락을 하는데 문득 예전 훈련생 때 형에게 밥을 얻어먹으며 했던 말이 생각났다.


“형, 저 나중에 부기장 훈련 끝나면 거하게 쏠게요. 오마카세?”

“신라호텔 뷔페가 맛있다던데.”


클리어 나고 아직 그 약속을 못 지켰는데,

이번에 만날 땐, 꼭 내가 맛있는걸 사야겠다.

형이   나를 도와주며 했던 약속을 나름의 방법으로  지키고 있다 자랑도 조금 섞으면서 말이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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