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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파일럿 Dec 16. 2021

기장님의 한숨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가면 끝나는 승객분들의 비행과는 다르게, 승무원들은 하루에 두 개 이상의 노선을 비행할 때가 있다. 특히 구간이 짧은 국내선이나 일본, 혹은 중국, 요즘 같은 코시국 일 때는 괌조차도 두 노선 이상을 연속해서 근무해야 한다.


비행과 비행 사이 시간이 길지 않으면 보통 비행기에서 쉬다가 시간이 되면 다음 승객을 태우곤 하지만, 비행과 비행 사이의 간격이 많이 길어지거나, 비행기를 바꿔 타는 경우가 생기면 승객분들의 하기가 끝나면 승무원들도 하기를 하여 공항에 있는 사무실에서 쉬다가, 근무 시간에 맞춰 다시 출발층을 통과해 비행기로 가기도 한다.


약 3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기장님과 나는 첫 번째 비행이 끝나고 하기를 하여 공항에 있는 사무실로 갔다. 이때 사무실이란 일반 사무직 회사원들이 일하는 그런 공간이 아닌, 널찍하고 푹신한 소파가 있는 간이 공간이라고 하면 좀 쉬울까.


비행 자료 출력을 위한 컴퓨터와 책상은 있지만, 공간의 생김새로 봤을 때 사무실이라기보단 휴게실이 조금 더 어울리는 표현 같기도 하다.


아무튼,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는 나처럼 비행 사이의 시간이 떠서 이미 쉬고 계셨던 객실 승무원  분이 앉아계셨고, 나는 그분들에게 인사를    쪽에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객실 승무원분들 캐리어 옆에  캐리어를 위치시키며 비어있는 소파에 앉았다.


다음 비행까지 세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었기에 쉬기도 하고, 이따금씩 옆에 앉아계신 기장님과 도란도란 수다를 떨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가 앉아있던 소파 앞쪽 벽에는 커다란 대형 지도가 붙어 있었고, 그 지도에는 비행기가 가는 노선들이 표시가 되어있었다. 그 지도를 보며 기장님께서는 코로나가 없던 시절, 대형 화물기로 여기저기 장거리 노선을 다니시며 있었던 재미있는 비행 이야기들을 해주시고 계셨다.


벽에 붙어있는 커다란 노선 지도


기장님께서는 지도에 있는 노선들을 하나하나 짚어주시며 각 나라마다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셨고, 나는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주시는 기장님의 수다에 빠져 웃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하며 듣고 있는데,


한참을 이야기하시다가 지도를 유심히 보시더니, 한숨을 길게 내쉬시곤 하시는 말씀


"아휴 이씨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맨날 제주만 왔다 갔다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쉬움과 이 시국에 대한 분노가 느껴지는 기장님의 말씀에 웃음이 터져서 한참을 웃다가,

정말 지도를 보는데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국제선을 많이 나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나도 울컥 올라와서


"정말 기장님, 역마살 있어서 조종사 된 저에게는 너무 슬픈 현실이네요."

"젊었을 때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니고 해야 되는데. 이 직업이 참 그게 좋은데 못해서 아쉽다, 그치?"

"그러니까요."


한숨 고르다가,


"곧 나아질 거야."

"그럼요 기장님. 나아질 거예요. 원래 주식도 그렇잖아요. 급락 후에는 급등하지 않습니까?"

"근데 왜 내 계좌는 급등을 안 하지?"

"아.. 그게.."

"아까 팔지 말걸.. 파니까 올라가네."

"저도 사면 떨어지고 팔면 올라가더라구요..."


꼭 사면 떨어지고 팔면 올라가던데,

누가 내 뒤에 CCTV를 달아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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