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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파일럿 Sep 07. 2020

비행 교관 시험

It’s all about CYA



학생 조종사 때 통상 네 개의 자격증을 따는데 네 번의 자격증 시험을 총 세 명의 다른 시험관에게 갔었다. 같은 시험관에게 보면서 나태해지고 싶지도 않았고, 시험관 저마다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으니 배우는 것도 그만큼 많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교관 시험을 볼 때도 여느 때와 같이 처음 듣는 이름의 시험관이었다.
 
“망고씨, 캐롤 시험관으로 정해졌어요.”
“캐롤? 처음 들어보는데, 괜찮대요?”

까다롭지만 말아라, 제발

“나이 조금 있는 할머니인데, 까다롭지는 않을 거예요.”
 
휴… 다행이다.
너무 까다롭지 않으면서도 준비한 만큼 봐주는 사람이면 누구든 상관없었다. 떨어지면 그저 내 준비가 부족해서 일 테니까.
 
시험 당일, 미리 공항에 도착해서 준비하고 있는데 연세가 지긋이 드신 인상 좋은 금발 할머니가 들어온다. 나를 보더니 환한 웃음으로 악수를 건네며 말한다.
 
“오늘 내 지원자예요?”
“네! 반가워요, 캐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서류 작업을 끝낸 뒤 자리에 앉았다.
 
“내가 처음 배우는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가르쳐 줘야 해요. 알고 있죠?”
“그럼요!”
“자, 그럼 Runway incursion avoidance부터 시작합시다. 가르쳐 주세요.”
 
그렇게 시험은 시작되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음… 완벽해. 더 이상 안 봐도 되겠어.”
“정말요? 고마워요 캐롤!!”
 
 


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건 없었다. 7시간 정도가 예상되는 구술시험 중 첫 번째 주제였다. 앞에서 레슨을 하는데, 비행만 몇십 년 하신 분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눈을 껌뻑 거리며 나를 보고 있는 게 영 어색했다. 내가 아무리 준비를 열심히 했다 한들, 지식의 깊이가 다를 테니까. 그래도 나름 나는 시간과 열심히 싸워가며 준비한 레슨을 이어가고 있었다.
 
“근데 나 예전에 플로리다 공항 갔을 때 활주로에서 어떤 표시를 봤는데 뭔지 모르겠어.”
 
진짜 모를리는 없고, 학생이 이렇게 물었을 때 내 반응을 보는 거겠구나. 공항에 있는 모든 표시와 신호가 적힌 차트를 꺼내어 하나씩 짚어보기 시작했다.
 
“이거예요?”
“아니야”
“그럼 이거예요?”
“아니야. 이것보다 뭔가 좀 더 검은색이 많았어.”
“혹시 이거예요?”
“응! 이거야. 이게 무슨 뜻이야?”
“이건 앞으로 런웨이가 몇 피트 남았는지 나타내 주는 표시예요.”
“와, 정말? 그런 것도 있구나. 진짜 신기하다.”
 
캐롤 시험관은 학생 연기의 신이었다.






관록이 쌓인 그녀의 학생 연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지도를 펼치며 내가 말했다.
 
“자, 하늘 공역이 이렇게 이렇게 나뉘어있고, 이 공역은 거꾸로 된 웨딩케이크처럼 생겼어요.”
“웨딩케이크처럼 안 생겼는데?”
“최저고도가 중심으로 갈수록 낮아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하고 실제로는 해당 공역마다 각기 다른 뭉개진 케이크 모양처럼 생겼답니다.”
“음… 아무리 봐도 케이크는 아니란 말이지. 오! 이렇게 보니 또 케이크 같기도 하고… 정말 어렵군.”
 
나의 강의는 계속되었다.
 
“이렇게 검은색 선으로 둘러 쌓인 지역을 지나갈 때는 여기 주파수에 연결해서 traffic advisory를 받는 것이 안전해요. 필수는 아니지만 미연방 항공 권장사항입니다.”
“꼭 받아야 돼? 나 받기 싫은데. 귀찮아.”
“꼭 받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비행기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선 받는 것이 좋아요. 안전하기도 하고.”
“나 받기 싫은데, 안 받으면 규정 위반이야?”

부글부글…

“규정 위반은 아니지만 받으면 더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어요.”
“그럼 어쨌든 정말 안 받아도 되긴 된다는 말이네?”
“그렇습니다.”
“정말?”
“네.”
“정말?”
“네.”
“정말?”
“네.”
“정말?”
“……”
 
다섯 번의 ‘정말’을 연속으로 들으니 멘탈이 나갈 것만 같았다. 분명히 받지 않아도 되는 걸 알고 있다. 아니, 받지 않아도 된다. 법전을 몇 번이고 읽었고 쭉 그렇게 비행 해왔으니까. 다만 다섯 번의 ‘정말?’은 정말…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아무리 확실한 지식이라도 계속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면 내가 틀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버린다. 교관 시험이 그동안 학생 때 봐왔던 시험과는 조금 다를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 자신감을 극한으로 밀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자 법전으로 찾아줄게요. 여기… AIM 3-5-6번…”
법전을 넘기면서도 나에 대한 의심이 조금 생기려는 찰나, 눈에 띄는 한 단어.

‘voluntary’

휴,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차마 밖으로 내쉬지는 못하고 속으로 삼키는데 조금은 부드러워진 시험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렇지. 지금처럼 학생이 교관을 못 믿는 듯한 행동을 보이면 이렇게 찾아서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어떤 학생들은 정말 의심이 많거든.”
 
그렇게 그녀는 나의 교관으로서의 지식뿐만 아니라 태도까지 짚어주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더 집중적으로 나에게 교관의 태도에 대한 질문을 이어갔다.
 
“학생이 마초 성격이 강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런 학생은 어쩌고저쩌고 블라블라”
“학생이 A 공항에서 규정 위반을 하고 조치 없이 돌아오면?”
“그럴 땐 이렇게 저렇게 쏼라쏼라”
“학생이 비행 중에 자학을 하거나 심각하게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그런 학생에게는 요렇게 저렇게”
“그러다가 교관한테 욕을 하거나 화를 내면?”
“… 음… 욕을 하면 일단 진정시키고 제가 컨트롤을 잡고 바로 착륙할 겁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교관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두 시였다. 오전 9시에 시험을 시작했으니, 다섯 시간 정도가 지난 상태. 내가 말했다.
 
“시간 정말 빨리 가네요.”
“그렇지? 그럼 음… 이번엔 만약 날씨가 안 좋은데 비행을 나가면 어떻게 돌아올 거지?”
“제가 컨트롤을 잡고, 계기비행으로 전환해서 내려올 겁니다.”
“아니, 너는 계기 자격증이 있지만 학생은 없잖아. 학생 혼자 나갔을 때를 물어보는 거야.”
“음… 말해주신 날씨는 시계비행이 금지되어 있는 날씨이기 때문에 학생에게 처음부터 비행을 나가지 말라고 할 거예요.”
 
그동안 미소를 띠며 내 말에 좋은 대답이라며 곧잘 칭찬해주던 시험관은 내 대답을 듣곤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말했잖아. 마초인 성격의 학생들도 네가 맡을 수 있다고. 정말 방법이 없어?”
“어…”
 
잘 생각해보자. 계기 자격 없이 날씨가 안 좋은 날 할 수 있는 것. 비상상황을 선포하는 것? 아니, 그건 최후의 방법이다. 그럼 뭐가 있을까… 아! 하나 있다.
 
“특별 규정이 하나 있어요. 제한은 많지만.”
“그 규정 좀 설명해줄래?”






특별 규정을 법전에 나온 대로, 암기한 그대로 읊기 시작했다. 의미, 제한 등등. 실제로 사용해 본 적은 없고 앞으로 사용할 일도 없는 규정이었다. 관제사가 먼저 조종사에게 제안하는 것도 금지된, 그만큼 조종사에게 위험부담이 큰 규정이었으니까. 약 5분여간 내 설명이 끝난 뒤 시험관은 차트를 잡고 공항을 짚기 시작했다.
 
“이 공항에서 이 공항으로 날아가고 싶어. 저 규정을 실제로 적용한 정확한 절차 좀 설명해줄래?”
 
시험 시작 전, 시험관과 약속한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가정하지 않기, 하나는 ‘primacy’ 지키기.
처음 것은 말 그대로 찍어서 대답하지 않기였고, 두 번째 ‘primacy’는 틀린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맨 처음 배우는 걸 가장 오래, 선명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된다는 말씀.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모르는 걸 아는 척하며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지금은 모르겠어요. 다만 실제로 적용할 일이 생기면 타워에 전화를 하든 FAA에 연락을 하든 방법을 알아내서 학생에게 알려줄 겁니다.”
“학생이 이미 하늘에 있으면?”
“……”
“솔직히 이야기해봐. 너 이 규정에 대한 이해, 하나도 없지?”
 
한동안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조금은 누그러진 말투의 시험관 목소리가 들린다.
 
“Jun, 네가 실제로 이걸 쓸 일이 없을 것도 알고 너 말대로 너는 계기 자격이 있으니까 계기로 전환해서 들어오는 게 더 안전할 거야. 다만, 넌 교관이 될 사람이잖아.”
 
시험관이 나에게 어떤 걸 바라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할 말이 없었다.
 
“사용하지 않더라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데… 미안해요.”
“지금… 2시 30분쯤 됐으니까, 한 5시간 30분 정도 했네. 항공 지식 대답도 곧잘 했고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말들도 잘해줬어. 근데…”
 
조금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 어렵게 말을 이어간다
 
“오늘은 Fail을 줄 수밖에 없어. 다만, 이것 빼곤 거의 다 커버했으니 다음 주에 재시험 날짜를 줄게. 대신 저 규정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와.”
 
보통 교관 시험에서 한번 떨어지면 2주에서 1달을 넘게 기다릴 때도 있는데, 그녀의 배려가 고마웠다. 시험에서 떨어지고 난 후에도 한 동안 책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었다. 앞으로 교관 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좋은 이야기들. 이젠 시험관으로서가 아닌 비행 잘하는 동네 할머니로서.
 
아쉽지도 않았고, 억울하지도 않았다.
열심히 준비했고 내가 부족한 걸로 떨어졌으니까.
다만 부모님과 교관이 부족한 상황에서 합격만 기다리고 있는 학교 매니저님에게 미안했다. 나를 늘 인정해주고 존중해주신 분들이었기에 마음이 쓰였다. 전화부터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괜찮아, 지금 한 두 달 늦어진다고 해서 너 인생이 늦어지는 것 아니니까 걱정 마. 조급해하지도 말고.”

떨어졌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의 첫마디였다.
죄송한 마음에 가슴이 저린다.
 
다음은 학교 매니저님 차례,
두어 번의 신호음이 들린 뒤 매니저님의 첫마디가 들린다.
 
“합격했어 떨어졌어?”
“… 죄송해요.”
“야 네가 왜 떨어지냐”
“준비가 부족해서…”
“뭔 준비를 더해”
“……”
“재시험은 나왔어?”
“다음 주예요.”
“다음 주? 빨리도 나왔네. 다음에 합격하면 내가 밥 살 테니까, 또 떨어지면 네가 밥 사라”
“네 그럼요.”
“합격한 날부터 출근해라.”
“잉크고 안 마른 합격증 들고 바로 갈게요.”
 
집에 돌아와 지칠 기색도 없이 그 규정을 씹어먹어 버리기로 했다. 온갖 자료들을 찾아 조사했고, 실제 사례부터 시작해서 radio phraseology, 절차, 적용사례 등등 머릿속에 모조리 집어넣었다. 그리고 돌아온 재시험 당일, 오히려 첫 번째 시험 때보다 더 떨렸다.
 
공항 터미널 문을 열면서 다짐했다.

‘오늘 이 문으로 다시 나올 땐 교관 합격증 없인 안 나오리라.’

첫 시험과는 다르게 시험 장소에 다른 세미나가 있어서 공항의 작은 사무실에서 시험이 진행됐다. 작은 책상에서 옆에 앉아 과외하듯이 가르쳐 주는 방식으로.
 
“자, 그 특별 규정에 대한 모~~~~~오든 것을 알려줘.”
“시작할게요.”

시작한다는 말과 함께 시험관은 또 한 명의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 되었다. ‘오! 흥미로운데?’, ‘신기해! 이해가 쏙쏙 되는군’ 등의 추임새가 들린다. 할머니 연기 실력은 녹슬지 않았구나.
 
특별규정에 대한 강의를 무사히 마치고 다른 주제 몇 개를 더 커버하니 두 시간 정도가 지났다.
 
“자, 마지막으로 비행 기동 Power-off stall에 대해서 설명해줘.”
 
준비해 간 장난감 비행기로 기동을 그리며 설명을 했다. 시험관을 보니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 표정이다. 모든 것이 신기하다는 듯이. 15분 정도 설명을 하면서 설명이 끝난 뒤의 시험관 표정이 내심 좋길 바랐다. 이것만 잘 마치면 이제 구술시험은 끝이니까.
 
“마지막으로 Recovery procedure는 파워를 넣고, 피치를 들어 자세를 잡아서 돌아오면 됩니다.”
 
설명을 마치고 비행기를 내려놓았다.
시험관을 봤다.
씨익 웃는다.
다행이다.
 
시험관이 말했다.
 
“너 정말 준비 열심히 했구나.”
 
맞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하…”
“계속 이렇게만 해. 잘하고 있어. 잘했고.”
“고마워요.”
 
이제 남은 건 비행 시험 하나였다. 이건 자신 있었다.





비행을 나가기 전 오늘 해야 할 기동들을 불러준다. 13개 정도를 실수 없이 마치고 와야 한다. 순서는 내가 정할 수 있었기에, 하기 편한 순서대로 시나리오를 짜고 있었다. 가장 먼저 시작할 기동은 Chandelle이라는 비행 기동.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기동이었다. 차라리 가장 어려운 기동부터 해치워버리자는 생각이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시험관은 처음 비행기를 타는 학생처럼 무서워하는 연기도 하고 재밌어하는 연기도 한다. 브레이크를 잡아보라고 하자 이 무거운 비행기가 브레이크로 멈춘다는 것이 신기하단다. 부드럽게 이륙을 하고 기동연습을 할 수 있는 장소로 갔다. 그리고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Chandelle. 기동 전 체크리스트를 마치고 시작하였다.
 
“처음에 30도의 bank를 주고 rudder도 같이 밟아줘야 해요. 그래야 nose가 들리지 않습니다. 그다음 90도 지점에 왔을 때 요크 당기는 힘을 풀지 말고 적은 속도로 계속 상승하는 게 중요합니다.”
 
날씨가 좋았던 탓에 생각보다 비행이 잘되었다. 가장 어려워하는 기동을 생각한 것 이상으로 부드럽게 마치고 나서 속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시험관의 목소리가 들린다.
 
“Perfect.”
 
그 말을 들은 나는 용기가 솟아오르고 자신감이 붙어 올랐다. 기분도 좋았다. 신이 꽤 많이 났다. 아, 오늘 비행 잘되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모든 기동들이 생각보다 훨씬 잘 되었고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마지막 랜딩까지 나를 도와주었다. 런웨이 지면에 부드럽게 닿는 바퀴소리가 들리고 나서 합격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비행기를 주기장에 주기하니 저 멀리서 교관이 다가온다. 결과가 궁금한가 보다. 시험관이 비행기에서 내리더니 내 교관에게 이야기한다.
 
“비행 정말 완벽했어. 잘 가르쳤는데?”
 
사무실로 돌아가 디브리핑을 할 차례였다. 그 날의 비행을 기록하기 위해 로그북을 처음부터 천천히 보더니 어느 페이지에서 시선을 멈춘다.



“비행 좋았어 정말. 보자… 뭐야 이건? LAX는 세스나 타고 왜 갔어?”
“기량 늘리고 싶어서요.”
“LAS도 갔네?”
“공항 불빛이 예쁘다고 들어서요.”
 
나도 내 대답이 웃겼고, 시험관도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내 대답과 동시에 웃음이 터지고는 시험관이 나에게 말했다.
 
“나랑 하나만 약속하면 합격시켜줄게.”
“뭐든지요!”
“너 학생은 이런데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해.”
 
경험은 용기를 주고, 실력은 자유를 준다.

이것이 그동안 내가 비행을 하면서 배운 철학이고 생각이었고, 나는 미래의 내 학생들이 익숙한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그런 겁쟁이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완고한 말투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요. 당연히 안 보내죠.”
 
차마 시험관에게 솔직하게 말할 순 없었다.
일단 시험 합격은 해야 하니까.
 
그럼에도 내 대답과 표정이 전혀 일치하지 않았으니 진심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시험관도 알았을 것이다. 내 표정을 보고 슬쩍 웃더니 명언을 남긴다.
 
“It’s all about CYA.”
“CYA? See you again?”
“Cover Your Ass”
 
학생이 실수를 했을 땐 교관 자격증이 온전치 못한다. 다시 말해 학생이 실수해도 교관이 짤리고, 교관이 실수해도 교관이 짤린다. 모험은 좋지만 어렵게 얻은 자격증을 위해서라도 무리하지 말라는 것. 시험관의 뜻을 이해하고 웃어 보이며 알겠다고 하자 마지막 서류들을 정리하곤 악수를 청한다.
 
“비행교관 된 거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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