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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파일럿 Sep 09. 2020

집사람의 언론플레이

초롬?

왼쪽 MJ형과 오른쪽 나


동기 형이 있다.

일명 MJ.
비슷한 시기에 와서 같이 비행을 시작해, 같은 집에 살게 된 형이다. 너무 다른 성향과 성격 때문에 처음 만난 날 서로 든 생각.

‘내가 적어도 쟤랑은 친해지지 않겠구나’
 
그랬던 형이 어느새 내가 가장 의지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많은 것이 형을 닮아있었다. 생전 듣지 않던 EDM 음악을 형 덕분에 찾아 듣게 되고, 술을 잘 못 먹었는데 부쩍 나도 모르게 주량이 늘어있었다. 이런 걸 보면 사람 일은 모르는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참 좋은 사람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가끔 아침에 팬티바람으로 내 방문을 열고 이상한 춤을 추고 있는 형을 보면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구나 싶기도 하다.
 
처음부터 같은 집에 살았던 것은 아니었는데, 내가 원래 있었던 집주인이 채식주의자라 육식 없이 살 수 없는 내가 지내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무엇보다 성향이 안 맞아서 불편하기도 했고. 한 6개월을 지내가 마침 형이 살던 집에 방이 나와서 그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형이 살 던 집에 새로 이사하여 들어가는 그 날,
 
“아주머님, 망고가 컴퓨터 박사예요”라고 하는 동기형의 언론플레이 덕분에 집에서 생기는 모든 전자기기 관련 문제는 내 담당이 되었다. 이따금씩 생기는 문제들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다행히도 증상을 네이버에 치면 해결방법은 나와있었기에 그동안 생긴 크고 작은 전자제품 문제들은 제법 수월하게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가장 큰 고비가 왔다
 
“망고야, 갑자기 인터넷 뱅킹이 안되는데, 초롬으로 하라는데 이게 뭔지 모르겠어, 니 혹시 아나?”
 
초롬…?

나름 컴퓨터를 오래 써오고 한때는 이런저런 프로그램도 제법 만졌는데 초롬이라니, 일단은 알아보겠다고 말씀드린 뒤 전화를 끊고, '초롬'이라는 것이 혹시 컴퓨터 전공 언어인가 싶어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영 마음에 드는 답변은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우리 집 컴퓨터 박사인데,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 급박한 시간을 보내며 주위 사람들에게도 물어봤지만, 그들도 역시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여전히 해답이 없는 채로 어느덧 집 앞에 도착했고 나는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컴퓨터 앞에 가서 문제의 화면을 보았다.
 
‘현재 브라우저로는 접속이 불가능합니다. Chrome으로 접속하세요’
 
크롬이라니, 세상에.
초롬의 정체가 크롬이었다니, 약간의 허탈함과 조금의 안도감이 같이 밀려왔다. 문제가 크롬이라면 이건 쉬운 문제다. 덕분에 잘 해결하고 방으로 올라가는 길, 아직은 컴퓨터 박사의 타이틀을 지킬 수 있어 조금은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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