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휴직 잘 보냈어?”
복직을 하고나서 첫 비행을 하는 날, 친한 기장님께서 나에게 요즘 시국에 인사말 대신 으레 물어보는 질문으로 안부를 대신하셨다. 지난 달 휴직에도 나는, 자격증을 취득한다든지,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 본다든지, 요즘 남들 다 하는 골프나 테니스를 배워본다든지 하는 어떤 특별히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의지 없는 백수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대답했다.
“아, 기장님. 저 이번에는 유투브와 밀린 넷플릭스 보면서 푹 쉬었습니다.”
내 대답을 들으신 기장님께서는 한 3초정도 생각을 하시더니,
“아무것도 안 했네?”
“예 기장님 사실 맞습니다.”
기장님께서도 이번 휴직때는 특별히 하신 일 없이 시간만 보내신 것 같다며, 이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주기적으로 와버리는 휴직 달에,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잘 보냈다고 소문이 날지 고민 중이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나 또한 기장님 말씀에 공감하며 다음번 휴직 때는 무엇을 하면서 보내면 조금 덜 백수처럼 느껴질지에 대한 나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온 우리의 결론은, 무언가를 하고 싶긴 한데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였다. 프랑스어를 잘하고 싶은데 책을 펴서 아뻬쎄떼부터 외우기에는 귀찮고, 새로운 취미를 찾고는 싶은데 딱히 흥미가 느껴지는 종목은 없으며, 요리 수업이라도 들어볼까 싶지만 월화수목금 매일 출근해야하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졌다. 잘 하고싶은 것은 많은데 배우기는 귀찮아진 요즘, 이 박약한 의지부터 어떻게 먼저 해결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뾰족한 결론 없이 우리의 대화는 끝났고, 나는 그렇게 다음 휴직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상황인 사람들에게 물어보다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와 상황이 비슷한 타 항공사를 다니는 주원이형에게 연락을 했다. 크고 작은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잔소리란 잔소리는 다 해주는 형이었기에, 이번에는 휴직을 의미있게 보낸다는 해결책만 찾는다면 그 잔소리라도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형 회사도 휴직하죠?”
“휴직 하지.”
“형은 휴직 때 뭐해요?”
“애기 봐야지.”
물어볼 대상을 잘못 골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형의 말.
“빨리 골프 배워.”
“골프요?”
아직 골프를 배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조만간 시작될 골프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에둘러대는데 형이 물었다.
“너 여행 좋아하잖아. 캠핑 장비 빌려줄까?”
그래, 역시 아뻬쎄떼보단 몸으로 부딪히는 취미가 나에겐 훨씬 잘 맞는다. 미국에서 살 때도 시간이 날때마다 자고있는 룸메이트였던 명재형을 깨워 국립공원들을 트레킹 했었고, 온갖 동네 뒷산은 다 다니며 내 국산 무릎 연골을 혹사시켰음에도 즐겁지 않았는가. 마침 형이 사회 초년생 때 친구들과 한창 캠핑을 다녔어서 필요한 장비는 다 있었고 요즘은 자주 다니지 못하니 그 장비를 빌려주겠다는 말이었다.
휴직 때 침대에 누워서 가끔 캠핑 영상을 봤을 때는 우중 캠핑을 하며 추적거리는 소리를 배경음으로 하여 따듯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어떤 유투버의 모습이 참 낭만적으로 보였으며, 오프더 로드를 달리며 뒤뚱거리는 차 안에서 신나는 음악을 크게 들고 캠핑을 다니는 어느 커플의 모습도 부러웠었다.
형의 제안과 함께 옆에 계신 형수님께서도 캠핑이 나와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맞장구를 쳐주셨고, 칭찬에 신이 나서 뒷일은 생각도 하지 않고 형에게 대답했다.
"형 장비좀 빌려줘요.”
형에게 장비를 빌려 다음날 바로 예약한 캠핑 장소로 출발을 했다. 캠핑 장소를 선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전기차를 타고 있던 나는 전기차 충전소가 있는 캠핑 장소를 찾아야 했고, 우리나라에 전기차 충전소를 갖고 있는 캠핑 장소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 캠핑장에 가서 220V로 충전할 수는 있었지만, 캠핑 장소에서 220V로 내 자동차를 충전하다가 부하가 걸려 캠핑 장소의 모든 전력을 내린다면 인터넷에서 내가 너무 유명해지지 않겠는가. 블로그는 물론이고 유투브에 올라올 수도 있다. 그건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래서 전기차 전용 충전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부여에 있는 어느 한 캠핑 장소였는데, 다행히 평일이라 예약할 수 있는 장소는 여유로웠다. 부여로 운전하는 내내 오랜만에 야생으로 여행을 한다는 생각에 내내 가슴이 설레는데, 남쪽으로 내려가는 하늘이 심상치가 않다. 당시 6월이었는데, 집중 호우가 자주 발생하는 달이라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 한 것이다.
게다가 도착 예정 자동차의 잔여 배터리 양이 3%라고 나와있다. 출발이 늦어서 중간에 어디를 들렀다 갈 시간이 없어서 최대한 배터리를 아끼며 가기 위해 우선 에어콘을 껐다.
자동차 매뉴얼을 읽어보니 창문을 열면 전비가 좋지 않다고 나와있어서 창문도 닫고 주행을 했고, 내가 자동차에서 삐질삐질 흘린 땀의 양만큼 도착 예상 잔여 배터리 양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회색이었던 내 옷이 점점 검은색으로 변해가는 더러움을 다른 사람들은 다행히 보지 못하고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나는 7%의 잔여 배터리로 캠핑장에 도착을 했고, 다행히 비는 오지 않고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나오셔서 예약한 스팟으로 나를 안내해주셨고, 그곳에는 큰 나무 데크 하나가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화장실, 샤워실, 캠핑이 끝났을 때 쓰레기 처리 방법등을 안내 받고나서 트렁크에 있는 모든 짐을 내려 놓았다.
내용물들을 하나씩 펼쳐가며 장비들을 보는데 식은 땀이 흐른다. 그 큰 텐트를 치는 설명서라곤 텐트에 붙어있는 그림이 몇 개 그려지지 않은 천쪼가리 하나 뿐이었다. 이런 나의 식은땀을 보신 구름신은 내가 더울까봐 염려가 되었는지 슬금슬금 비를 뿌려주시기 시작했고, 나는 감사한 마음에 내 눈에서 흐르는게 눈물인지 빗물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진짜 X됐다.’
아, 그래도 예전 유투브에서 우중캠핑을 하며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어떤 분의 영상을 봤기에 텐트를 치기만 하면 좀 낭만적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 본능적으로 지금 안치면 진짜 여기까지 와서 자동차 안에서 자고 가겠구나하는 걱정도 들었다.
텐트 안에 붙어있는 설명서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그림 몇 개로는 택도 없었기에, 형이 빌려준 텐트 브랜드를 유투브에 검색하여 텐트를 치는 방법을 검색했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텐트는 어떤 텐트인가. 형이 무려 10년 전에 샀던 텐트 장비지 않은가. 유투브에는 어떤 사람이 나와서 내가 빌린 텐트와 공통점이라곤 색깔과 브랜드밖에 없는 어떤 최신식의 텐트를 앞으로 축 던졌고, 그 텐트는 자동으로 촤악 펼쳐지면서 매우 간편하게 설치가 되었다. 유투버는 본인의 던지기 실력에 만족을 하며, “자, 참 쉽죠?”같은 밥 로스 아저씨가 할 만한 대사를 외쳤고, 그 사이에 빗줄기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정말 집에 가고 싶었지만 여기서 집에 간다면 다음 복직했을 때,기장님의 "휴직 잘 보냈어요?”라는 물음에, “캠핑 하러 갔다가 텐트도 못 치고 돌아왔습니다!” 같은 넷플릭스만 보면서 휴직을 보냈다보다 더 한심한 대답을 할 것 같아서 일단은 참고, 텐트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기 위해 펼쳐봤다.
텐트를 처음 쳐본 사람은 알겠지만, 텐트를 땅에 펼쳐 놓으면 얘가 정말 텐트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냥 땅에 찰싹 붙어있다. 텐트를 고정시키는 폴대는 왜이렇게 많은건지, 빨강색, 은색, 검은색, 이걸 어디에 어떻게 꽂아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아마겟돈에서 빨간선을 자를지 파란선을 자를지 고민하는 어느 조종사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그래, 나도 하나 찍어서 무작정 연결부터 시켜보자 싶었고, 가장 무난한 색인 은색 폴대를 골랐다.
결과적으로는 빨간색부터 꽂았어야했다. 은색은 텐트의 입구에 꽂는 폴대였고, 따라서 은색을 텐트 코어에 꽂았을때는 텐트가 흐물거릴 정도로 빳빳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흐물거림이 잘못 꽂아서 그런건지, 빗물에 젖어서 그런건지 알 턱이 없는 나는 사진을 찍어서 주원이 형에게 보냈다.
“밤에 집에 오겠네.”
형의 문자에 잘못된 것을 다시 파악하여 폴대를 전부 빼고 빨간색 폴대로 교체했다. 피칭을 하기에 조금 뻑뻑하긴 했지만 텐트가 점점 빳빳하게 펼쳐지는게 대충 모양새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텐트 코어를 올리고 나니 그 후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남아있는 폴대로 입구를 만들고 데크에 고정을 시켰다. 두시간정도 아등바등 거린 결과 얼추 모양새가 나쁘지 않은 텐트가 완성이 된 것이다. 하늘도 이런 나의 노고를 축하해주듯 텐트 칠 때 내린 비를 거두어 주시며 나의 완성을 축하해주었다.
텐트가 완성이 되었으니 이제 즐길 일만 남았다. 캠핑의 꽃은 무엇인가. 바로 불멍 아니었던가.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한끼도 먹지 못한 오늘, 고생한 나를 위해 라면 한봉지를 꺼냈고 나는 캠퍼답게 불멍을 하는 화로위에 냄비를 그대로 올려서 라면을 조리하기 시작했다. 라면 물이 끓으면 끓을수록 은색이었던 냄비를 점점 검은색으로 변해갔지만, 나는 “캠핑은 역시 장작 맛이제!”하면서 집에가서 열심히 설거지를 하면 해결될 일이라 생각했다.
첫 우중 캠핑의 첫 음식, 라면이 완성되었고 먹는데 정말 너무 맛있었다. 내 앞에는 은색 냄비마저 검은색으로 변하게 할 정도로 강한 장작맛으로 끓인 야생의 라면과 내 뒤에는 두시간동안 허우적거리며 만든 생존용 텐트가 있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자연의 소리는 그대로 들리고, 옆에는 고양이가 경계심을 푼 채로 돌아다닌다. 너무 평화로웠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캠핑을 오는구나. 형이 빌려준 장비 덕분에 휴직 때 이런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며 라면 사진을 함께 보내니,
“이제 저 냄비는 짜이찌엔이구나.”
“형 냄비 씻으면 색 돌아오는 거 맞죠?”
“망고야, 형이 여러번 썼지만 냄비가 왜 은색이었을까 잘 생각해봐.”
잔소리가 곧 시작될 것만 같아서,
“형 진짜 고마워요. 덕분에 휴직 때 좋은 경험도 해보고.”
“형이었으면 다 치기전에 밥 안 먹지. 하여튼 안맞아 나랑.”
다음날 텐트안에서 나를 깨운건 빗소리였다.
후두두두두둑.
물론 거세진 빗소리만큼 내 눈에서 눈물도 같이 흘렀다. 이걸 진짜 어떻게 다시 가져가지. 빗물에 젖어서 들기조차 버거운 텐트가 접어지지가 않는다. 어제는 펼쳐놓았을 때 텐트인지 모를정도로 땅에 찰싹 붙어있던 녀석이 이제는 부풀어 올라서 잘 접어지지도 않는다. 날씨만큼 변덕스러운 이 텐트를 겨우겨우 트렁크에 쑤셔넣고 집 근처 공원 주차장에 가서, 관리인의 허락을 맡고 두어시간 말렸다.
절대로 우중캠핑은 다시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그래도 나름 의미 있었던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나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캠핑 사진을 올렸는데, 형수님의 댓글이 달렸다.
“덕분에 그 날 우리가족 즐거운 저녁 식간 보냈어요. 아! 냄비는 버리래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여행은 끝나고 사진을 남긴다. 다음 복직 때, 기장님께서는 여느때처럼 나에게 “휴직 잘 보냈어요?”라고 물으셨고, 나는 당당하게 캠핑 사진을 보여드리며 말했다.
“기장님! 저 이번 휴직 때 캠핑 다녀왔습니다.”
내 사진을 보시더니,
“혹시 조난 당했었어요?”
이 글을, 우중캠핑을 하는 전국 모든 존경스러운 캠퍼분들에게 바친다.